삼성그룹계열 주간지 편집장 자리에 있던 그는 광고영업을 자원해, 1년 남짓 그쪽 일을 했다고 합니다. 기자가 광고영업을 한다? 결코 흔치 않은 일이지만 그에게는 그만의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훗날 내 회사를 가지게 될 때 올바른 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광고영업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겁니다. 실제로 나중에 그는 여섯 개 여성지를 발행하는 자타공인 ‘여성지왕국’을 이루며 그야말로 한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기자들은 광고니 영업이니 하는 쪽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런 건수가 있으면 해당부서로 토스해주는 정도가 최선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일찌감치 그 같은 ‘혜안’을 가지고 자칫 부족할 수 있는 부분들을 스스로를 던져가며(?) 채웠던 겁니다. 흔히 ‘기자출신이 사업을 하면 십 중 팔구 망한다’고들 합니다. 취재하고 글 쓰는 일에는 뛰어나지만 그보다 훨씬 험난한 분야에 대해서는 노하우가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장이 만물박사가 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전공인 취재와 글 쓰기는 기본이고 관련분야 이것저것들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회사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 같습니다. 기자시절 저는 후배들에게 ‘최소한 사진과 편집디자인에 관한 실력을 갖출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야만 훗날 편집데스크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광고나 영업에 대한 건 그 다음 단계였습니다.
제가 2001년 9월 13일, 한 매체의 초청으로 시드니에 왔을 때 저에게 주어진 타이틀은 ‘편집인/사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말이 그렇지 실제로 제가 가장 큰 비중을 둬야 했던 부분은 광고영업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생면부지의 타국에서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기’였지만 마냥 넋을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상황… 저는 곧바로 두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하나는 기존 교민매체들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었습니다. 기사는 물론, 광고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샅샅이 훑어가며 공부했습니다. “지난주에 OO신문, XX잡지에 광고를 냈던데 그걸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싶어 한번 만들어봤습니다.” 24년 전, 당시만 해도 교민매체들에 실린 광고들의 대부분이 핵심을 짚어주는 일 없이 복잡하고 많은 내용들을 나열식으로 늘어놓고 있었는데 그걸 헤드카피도 만들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한 겁니다. 제가 소속된 매체의 디자이너에게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게 해 한 곳 두 곳 찾아 다니며 명함을 내밀었습니다.
처음에는 키만 멀대 같이 큰 낯선 친구가 새로운 광고시안이랍시고 다짜고짜 들이미는 행태가 낯설었을 테지만 저의 새로운 시안을 좋아하는 광고주가 하나 둘씩 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광고의 광자도 모르던 제가 두 달도 채 안돼 회사매출을 세 배 이상 크게 늘려놨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대견(?)합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철칙으로 삼은 건 ‘어떠한 경우든 타 매체에 대해 험담을 하거나 깎아 내리지 않는다’는 원칙이었습니다. 이를 테면 ‘잘한다 청군, 더 잘한다 백군’의 전략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이 같은 방식은 제가 다른 두 곳의 매체를 더 거쳐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을 인수하고도 변함없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물론, 다른 스타프들에게도 이 두 가지 원칙을 강조했고 거기에 더해 ‘코리아타운은 광고주를 찾아가거나 전화로라도 광고 좀 내달라는 식의 영업은 일절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밥상을 들고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가장 맛있는 밥상을 차려놓고 찾아와서 먹게 한다’는 전략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 저의 이 같은 생각이 잘 맞아떨어져 코리아타운은 채 6개월도 안돼 ‘전교1등’을 차지했고 이후 계속 맨 앞에서 달릴 수 있었습니다. 164페이지로 두툼해진 코리아타운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앞다퉈 식품점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도 부족함은 존재했습니다. 일찍부터 예상은 했지만 온라인쓰나미가 그렇게 과격하게 몰려올 줄은 몰랐고 세기의 불청객 코로나19의 급습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인정사정 없이 물고 뜯는 하이에나들에 대한 대책을 선제적으로 세우지 못한 것도 저의 큰 실책이었습니다. 이전과는 많은 것들이 달라진 교민매체 환경… 지난 수요일(6일) 코리아타운 창간 26주년 기념일을 맞아 ‘헛똑똑이’였던 제 자신에 대한 뼈아픈 반성의 시간을 스스로 가져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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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생. 한국 여성지 <여원> <신부> <직장인> <젊은엄마> 기자 및 편집부장, 호주 시드니 <코리아타운>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일함.


김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