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역사

소설에 흥미를 잃은지 꽤 되었다. 소설 속 인물들이 하는 선택의 내면에 깔려있는 부적절한 욕망과 무지에 대한 비판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방해하기 때문이었다. 독서모임에서 선택한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는 제목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성 호르몬의 분비가 일찍부터 끊겨서라고 나름 생각한다. 남녀간의 에로스적인 사랑보다는 아가페에 더 끌리는 것이 종족번식의 의무에서 벗어난 나이가 원인일 것이다.

주인공 레오는 뉴욕에서 열쇠수리공으로 일하다 은퇴한 헝가리 이민자다. 학창시절에 만나 사랑하게 된 같은 마을의 소녀와 홀로코스터의 비극 속에 헤어진다. 몇 년에 걸친 노력으로 알게 된 첫사랑의 주소를 들고 뉴욕에 도착하지만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였다.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었던 아들의 사진 한 장만 안겨주며 그녀는 그와 함께 떠나는 것을 거부한다.

자식을 낳아본 적도 가까이서 지켜보는 경험조차 없는 나는 자식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60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들의 성장을 몰래 지켜보는 것이 낙인 그가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가상인물로만 읽혀져 초반에 집중이 힘들었다. 비루한 생활을 묘사하며 내뱉는 유머는 그럼에도 나의 웃음과 부러움을 훔쳐갔다. 오랫만에 책을 읽으며 데굴데굴 구르는 진풍경을 연출할 정도로 말이다.

불행을 안고도 유쾌한 시각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타고난 성격이나 기질이겠지, 나와는 다르게, 라며 한 발만 살짝 걸친 채 끝까지 읽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독서모임을 위한 숭고한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왔다. “나는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항상 노력해왔다. 그게 내 묘비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생을 돌아보며 읇조린 그의 독백은 그 뒤의 글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읽게 만들었다.

불행이 찾아오거나 좌절을 맞닥뜨렸을 때 ‘왜?’라는 질문을 자주 한다.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이유를 알아야 그 무게를 견디며 살아갈 용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대답을 찾는 일이 쉽지 않기에 분노로 아니면 자신을 학대함으로 더 나아가 우울로 치닫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결국에는 포기하거나 트라우마로 남겨두는 등등의 경우도 많다.

레오는 묘비에 새길 정도로 닥친 불행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떠나간 유일한 사랑을 못 잊어서, 자신의 존재 유무조차 모르는 아들을 한번이라도 안아보고 체온을 느끼는 것이 소원인 보잘것없는 늙은이가 아니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불행을 견디며 꺾이지 않는 굳은 의지로 그만의 사랑의 역사를 써 온 남자였던 것이다.

‘암’이 찾아 왔을 때 왜 나에게, 내가 무슨 잘못을 그렇게 많이 했다고, 나쁜 음식은 먹지 않으려 노력했었고 단지 치열하게 살았을 뿐인데 그 정도의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암을 키운 육신이 원망스러웠다. 신은 고집 센 나를 바꾸기 위해 순한 방법은 통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던 거다. 약한 암은 극복하고 난 뒤 다시 교만해지는 것이 뻔해서 공격적인 암세포가 생겨나고 전이가 되도록 욕망을 추구하는 시간을 허락해준 것이다.

투병과정에서 기연이라 할 수 있는 명상과 기공을 배웠다. 친구를 만나거나 TV를 보거나 하는 일없이 매일 5-6 시간씩 수련에만 전념했다. 수도승과도 같은 5 년의 끝이 되는 어느 날 케이크를 사서 콜린과 기념파티를 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고 그 시간을 견디며 달려온 나를 격려하고 싶어서였다.

눈가에 맺힌 이슬과 함께 해준 그의 따뜻한 포옹과 토닥임은 지금도 가슴을 울컥이게 만든다. 이런 날이 오기를, 그래서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날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굳은 의지로 걸어온 시간이었기에 드디어 도착한 그날의 스스로가 대견하고 기특했었다.

힘들었지만 그 경험은 그 뒤의 나를 엄청나게 변화시켰다.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면에서 예전과 너무나 다른 나를 발견한다. 바뀌어가는 내가 점점 좋아진다. 내면의 나를 비판하며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었기에 달라진 시각은 내적 평화를 주었고 감정적으로 안정감을 선사했다.

피나는 끈기로 써 내려간 사랑의 역사가 예기치 않은 우연으로 보상을 받게 되는 대목에서 유치해지고 싶지 않았지만 흐르는 눈물을 어쩌지 못했다. 그렇다. 인간은 신이 설계해놓은 인생의 룰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이해하려고 매 순간 노력하며 살아갈 뿐이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떤 형태로든 대가를 받게 되어 있다. 힘든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글 / Dai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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