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일이긴 하지만, 열두 개가 든 양상추 한 박스를 1불을 주고 산 적도 있었습니다. 곳곳에서 남대문시장처럼 박수를 치며 “Have a look! Have a look!” 혹은 “Dollar! Dollar!’를 외치는 상인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고 우리는 그런 곳에서 과일이든 야채든 꽤 쓸만한 것들을 박스째로 1불, 때론 2불, 3불씩에 ‘득템’ 하곤 했습니다.
아내와 저는 플레밍턴마켓에 가면 왁자지껄한 사람들 틈에서 ‘사람냄새’와 함께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싱싱한 과일과 야채, 가끔은 신선한 해산물을 기분 좋은 가격에 사서 좋은 사람들과 나눠먹을 수 있다는 건 우리에게는 또 다른 즐거움이자 말로는 다할 수 없는 행복한 덤입니다.
하지만 요즘의 플레밍턴마켓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차량 한대당 2불씩의 주차료를 받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왠지 좀 야박해졌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트롤리 한 대를 빌리는 가격은 아직까지 4불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민초기에는 한 푼이라도 아껴야겠다는 생각에 그때는 2, 3불쯤 했을 트롤리 빌리는 값을 아끼기 위해 한국에서 살 때 백화점에서 사은품으로 받았던 소형트롤리를 끌고 다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우리는 가끔 금요일 또는 토요일에 플레밍턴마켓을 찾습니다. 금요일은 토요일보다 사람들이 적어 주차나 쇼핑이 편합니다. 다만, 금요일에는 물건들이 토요일보다는 상대적으로 적고 가격도 살짝 비쌀 수 있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 이리 채이고 저리 밀리는 게 싫어서 아내와 저는 문득문득 금요일에 플레밍턴마켓을 찾기도 합니다.
지지난주 토요일에는 산행을 마치고 플레밍턴마켓을 찾았는데 시장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주차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물건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싸지도 않았습니다. 아내와 저는 트롤리 한 대를 빌려서 우선 마켓 안팎을 한 바퀴 쭉 돌았습니다. 우리의 쇼핑루틴(?)입니다. 처음에는 물건을 사지 않고 시장을 한 바퀴 돌며 전체적인 시장상황을 파악하는 겁니다. 같은 물건인데도 가격 차이나 품질 차이가 나는 경우가 적지 않기에 좋은 곳을 눈 여겨 봐놨다가 그곳에서 물건을 사는 게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유독 많이 몰려 있는 곳도 빼놓지 않는데 그런 곳에서 뜻밖의 횡재(?)를 보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그날은 어쩐 일인지 과일이나 야채 값이 생각보다 많이 비쌌고 신선도 또한 썩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즐겨 사는 오이 한 박스가 40불을 호가하고 있었는데 상태도 썩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에는 25불을 주고 아주 튼실한 오이 한 박스를 사서 딸아이네한테도 나눠주곤 했는데 이번에는 가격이 많이 올라 있었던 겁니다.
20불-25불을 주면 쓸만했던 바나나도 한 박스에 35불이 돼 있었습니다. 우리도 먹고 아이들도 좋아하고 해서 우리는 매번 바나나는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꽤 싱싱한 블루베리는 에이든을 위해서, 빨간색 예쁜 딸기는 봄이를 위해서 몇 개씩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날은 호박이랑 양상추가 괜찮은 날이었나 봅니다. 꽤 쓸만한 녀석들을 한 박스에 5불씩에 사서 얼른 트롤리에 올렸습니다.
집으로 들른 아이들에게 이것저것들을 나눠주는 아내의 얼굴에는 어쩔 수 없는 엄마의, 할머니의 사랑이 들어있습니다. ‘한 푼이라도 싸고 좋은 걸 사려고 그렇게 애를 써놓고는 정작 남한테(?) 뭘 저렇게 바리바리 싸주는 걸까?’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혼자 픽 웃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왔다는 사실이 좋아서 마냥 즐거워하는 훈이와 봄이의 모습은 새삼 고맙기가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날 저녁, 아내와 저는 오랜만에 뜨끈한 홍합탕에 소주 몇 잔을 기분 좋게 마셨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전세계적으로 한국열풍, K-Food 인기가 높다는데 플레밍턴 마켓에서도 케밥뿐만 아니라 한국 재래시장처럼 김이 펄펄 나는 순대국이나 맛깔스런 녹두빈대떡 이런 걸 먹을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는 다소 황당한 생각을 잠시 가져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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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