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뻔뻔함의 극치입니다. 어쩌면 녀석은 “자기야, 저기 저 집 가면 밥 잘 챙겨주는 예쁜 누나(?) 있다!”라고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벌써 4개월 넘게 돈 한푼 안내면서 우리집 하숙생으로 살고 있는 ‘둘기’ 녀석 이야기입니다.
녀석은 지난 3월 초, 우리집에 무단침입(?) 했습니다. 대개의 비둘기들이 회색 털에 다소 뚱뚱한 체구 그리고 지저분한 발가락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 녀석은 날씬한 체격에 깨끗한 발가락 그리고 하얀 몸체와 꼬리부분 군데군데에는 연한 갈색무늬를 지니고 있습니다.
성별은 모르겠지만 우리는 녀석을 여자아이라 생각하고 이름도 ‘둘기’라고 지어줬습니다. 그날부터 녀석은 우리집 한 켠을 점령하고 있었는데 녀석에게서 첫 번째 변화가 시작된 건 두 달 전쯤이었습니다. 우리집에서 삼시세끼는 물론, 잠자리까지 해결하던 둘기가 갑자기 외박(?)을 시작한 겁니다.
어디서 자고 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끼니시간만은 거르지 않던 녀석이 한달 전쯤, 이번에는 낯선 동반자(?) 하나를 데리고 나타났습니다. 녀석과 체구가 비슷한 회색 털을 가진, 역시 예쁘고 깨끗하게 생긴 비둘기였는데 처음에는 둘기가 맛있게 밥을 먹는 동안에도 쭈뼛쭈뼛 밥그릇에 다가오지 못하더니 이내 곁에서 머리를 맞대고 맛있게 먹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둘기 저놈이 물어오라는 박씨는 안 물어오고 이젠 친구까지 데려왔네. 진짜 뻔뻔한 녀석 아니야?” 이렇게 투덜대면서도(?) 우리는 냉큼 더 큰 모이 자루를 사왔습니다. 아내는 새로 온 녀석에게 ‘둘짝’이라는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둘기의 짝’이라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경계의 눈초리를 보이던 둘짝이가 이제는 둘기보다 훨씬 더 적극적입니다. 두 녀석 다 어디서 놀다 오는지 뒷마당에 우리가 보이면 잽싸게 날아들어 ‘얼른 밥 달라’며 우리 뒤를 졸졸 따라 다닙니다. 마음 착한 아내는 녀석들이 혹시라도 배가 고플까 봐 얼른 밥을 챙겨주고 체하지 말라고 물까지 따라줍니다.
이것도 복이라면 복입니다. 뭐랄까… 야생 비둘기들이 우리집을 찾아준다는 것… 분명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둘짝이를 데리고 온 둘기에게서 마치 우리 아이가 조금 더 성장해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를 데리고 왔을 때의 느낌… 그런 기분도 살짝살짝 들곤 합니다.
그렇게 둘기, 둘짝이가 뻔뻔함을 거듭하는 동안 우리집 고양이 ‘해삼이’도 최근 들어 뻔뻔함이 더해졌습니다. 해삼이는 2006년 3월, 태어난 지 채 한 달도 안됐을 때 우리 집에 왔습니다. 제대로 걷지도 못했던, 제 주먹만했던 녀석은 제 옷 속을 파고 들어 왼쪽 가슴에서 자는 걸 참 좋아했습니다.
그랬던 녀석이 커가면서 저를 배신(?)하고 못 말리는 아내의 껌딱지가 됐습니다. 해삼이는 늘 아내 뒤를 졸졸졸 따라다니고 지금도 저보다는 아내를 100만배쯤 더 좋아합니다. 기회만 생기면 몇 시간씩 아내의 무릎 위에 올라앉아 있곤 합니다. 녀석이 제 무릎 위에 앉아있었던 건 딱 한번, 우리가 긴 동유럽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날 10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녀석이 얼마 전부터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둘기, 둘짝이한테 정겹게 구는 게 샘이 난 건지… 아니면 다른 무슨 이유에서인지 녀석이 아지트를(?) 제 무릎 위로 바꾼 겁니다. 한번 올라 앉으면 한두 시간은 물론, 몇 시간을 꼼짝도 않고 앉아 있습니다. 편안하게 잠을 자는 건 물론, 가끔씩은 뜬금없이 제 손을 핥아주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해삼이도 이제 나이가 꽤 들었습니다. 나이로만 따져본다면 열 네 살로, 저보다도 훨씬 윗사람의(?) 위치에 있습니다. 사람이나 고양이나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털도 여기저기 빠지고 윤기도 덜해졌습니다. 근육이 빠진 탓인지 많이 말라 있기도 합니다. 녀석한테 더 잘해줘야겠습니다. 둘기, 둘짝이뿐만 아니라 체감나이는 저보다도 훨씬 형(?)인 해삼이에게 더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드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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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