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3학년 봄에 일요일과 방학 때 캐디아르바이트를 하려고 서울컨트리클럽골프장에 찾아갔다. 캐디가 되기 위해서는 골프 룰, 캐디의 자세를 익혀야 한다며 먼저 연습장에서 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연습장에서는 골퍼가 연습 공 한 박스 값을 내면 골퍼 앞에 쭈그리고 앉아 티 위에 공을 놔줘야 했다.
어느 날 스무 살쯤 돼 보이는 여자가 와서 연습 공 몇 개만 치겠다고 했다. 나는 몇 개를 치든 한 박스 값을 내라고 했다. 곁에 서있던 연습장 감독이 말없이 열댓 개의 공을 무료로 갖다 줬다.
여자는 내게 티 위에 공을 놓아줄 것을 요구했다. 무료로 치는 공이므로 나는 티 위에 공을 올려놔 줄 이유가 없었다. 나는 “니가 올려놓고 치라”고 했다. 여자는 얼굴이 붉어지더니 공치는 걸 포기하고 가버렸다.
잠시 후 나는 사무실로 호출돼 ‘고객에게 무례했다’는 이유로 실장으로부터 심한 욕설을 듣고 잘렸다. 등뒤에서 실장이 고함쳤다. “야, 이 새끼야! 그 분은 국회의원 따님이야!”
박근혜 전 대통령을 조종했던 최순실은 제 돈 한푼 안들이고 재벌을 등쳐 제 딸내미에게 수십 억짜리 말을 사줬다. 그런 불공정이 말이나 되느냐고 분노하는 청춘들에게 딸내미는 “억울하면 니들도 능력 있는 부모 만나면 될 거 아니냐”고 일갈했다.
전 대통령 전두환은 아직도 미납 세금이 1000억원이 넘는다. 그는 통장에 29만원밖에 없다면서도 골프를 즐긴다. 올해도 그를 경호하기 위한 예산이 2억원 넘게 편성돼 있다. 그의 아들 딸들도 배 뚜드리고 잘산다.
전 법무부차관 검찰출신 김학의는 스폰서를 자처하는 음험한 인간의 별장에서 뇌물로 돈봉투 받고, 고가의 그림도 받고, 성접대도 받았다. 한 맺힌 여배우가 자살하면서 폭로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아무나 붙잡아도 범법자로 만들 수 있다’는 무소불위의 검찰은 두 눈만 껌벅이면서 성접대 뇌물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를 날려버렸다.
국회의원들이 자녀들의 유무선통신그룹 KT와, 강원랜드 채용 비리에 얽혀 줄줄이 법정에 불려갔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기획된 정치적 음모’ 라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미래통합당 전 국회의원 나경원은 비영리공익사단법인 스페셜올림픽코리아 회장이었다. 이 단체에는 세금 30억원이 지원됐다. 이 단체에서 직원을 모집했다. 직원1명 채용에 28명이 지원해 그 중 3명을 1차선발했다.
1등 합격자가 스스로 입사를 포기하자 2, 3등에게는 연락을 취소하고 애당초 지원자 28명에도 없던 사람을 채용했다. 특혜 부정채용이다. 이 합격자는 나경원 남편의 대학 선배의 딸이다.
나경원은 부정채용으로 검찰에 고발됐다. 거기에다 나경원의 아들 딸이 대학입학과정에서 불공정의 특혜를 받았다면서 검찰에 고발돼 있지만 검찰은 마냥 뭉개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장모가 투자를 위해 은행잔고증명서를 위조하고 사기 행각을 벌였다. 문제가 되자 증인에게 거짓말을 시켰다. 증인교사 혐의다. 윤 총장 부인도 개입돼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헌데도 검찰총장 부인은 불기소 처리되고 장모는 불구속 기소됐다. 그나마 이 사건을 서로 맡지 않으려고 서울중앙지검과 의정부지검이 핑퐁을 했다.
전형적인 불공정의 법칙들이다. 우리의 세상에 익숙해진 불공정을 더 열거하고 싶지만 정말이지 술 취할 것 같아 참는다. 비정상이 정상으로 굳어져 항의마저 낯설어지는 도착된 현실이 끊임없는 분노를 토해내게 한다.
억겁의 시간이 흐르며 카르텔화 된 불공정이 견고한 특권의 성벽을 쌓았다. 권력으로 얽혀진 혈연, 지연, 학연의 악순환이 끝없이 되풀이된다. 깨부숴야 한다. 그것이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의 테제가 돼야 한다.
‘엄마 찬스 아빠 찬스’라는 말이 있다. 부모 잘 만난 자식들은 놀면서 밥 먹고, 놀면서 대학가고, 놀면서 대기업에 입사하고, 놀면서 부자가 된다. 밤늦도록 식당에서 식품점에서 배달업체에서 고된 아르바이트에 시달리는 청춘들은 가슴이 메어진다. 일 끝내고 새벽에 돌아오는 그들의 지친 발 소리에 못난 애비는 잠결에 귀로 운다.
마침내 검찰을 포함한 고위공직자비리를 처벌할 수 있는 공수처가 머잖아 첫발을 내딛는다고 한다. 이제 정말 그 질긴 불공정의 법칙이 끊어져 내가 살아왔던 그 세상이 맑아질까? 생각만해도 가슴이 설렌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