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부끄러움

젊은 시절 명동성당 앞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똑같이 생긴 두 명의 남자가 늘 기타를 둘러메고 노래를 불렀던 풍경을 기억한다. 명동에 나갈 일이 있거나 근처를 가면 일부러 찾아가곤 했다. 때론 제법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신나게 그들의 노래를 듣기도 했지만, 때론 한두 명만 뎅그러니 서서 쓸쓸히 들을 때도 있었다.

 

누구든 그곳에 가면 그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고, 그들은 그렇듯 늘 그곳에 있었다. 나도 그러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누구든 언제나 찾아가면 늘 있는 그런 존재로 소식이 끊겼던 옛 친구를 우연히 만나듯 반갑게 맞이하는 그런 곳에서 말이다. 명동성당 앞 쌍둥이 가수처럼 늘 한결같은 곳에서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고 싶었다.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염치 있는 사람으로 살면서 그저 기다리다 보면 스스로 그러해질 수 있을까.

 

하루 일을 마치고 기차를 탔다. 노을이 내리는 창밖을 본다. 어제의 내가 있던 그 자리에 앉아 있다. 남은 시간은 흩어지는데 나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익명의 모르는 사람들 틈에 묻혀 짧은 안부를 전한다. 때론 창 밖 먼 곳에 시선을 던지며 더듬더듬 마음을 옮긴다. 시작은 지금 내 마음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행간에는 지나간 나의 모습과 추억으로 가득 차 간다.

 

이미 답장은 필요 없어져 버렸다. 안부는 기도가 된 지 오래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 가마니 가득 담겨 있는데, 막상 풀어 놓은 건 한 됫박도 채 꺼내지 못했다. 꺼내 봤자 뭐 대단한 건 하나도 없지 만 말이다. 배도 나오고, 주름도 늘고, 피부도 거무스레 변하면서, 세월과 함께 내 모습도 내 생각도 변한다.

 

육십이 넘어서까지 젊은이들 틈바구니에서 같이 부대끼며 일하고 살아보는 경험을 거치고서야 겨우 배울 수 있었다. 마음의 평화를 얻는 기술들. 나직나직한 말소리와 가만가만한 발걸음. 섭섭함이 마음에 찾아오면 잠시 생각을 멈추고 겸연쩍은 미소를 짓고 부끄러워하는 것만으로도 족한 나를 부끄러워한다.

 

어떤 하루를 보내도 저녁만 먹고 나면 궁금해진다. 오늘 야구 결과는 어떻게 될까. 마음은 밤마다 치고 달리고 막고 던진다. 경기가 끝나면 곧바로 어제 신문과 같이 세상에 쓸모 없는 게 되고 만다. 그래도 본다. 어제처럼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야구 경기는 있을 것이고 텔레비전은 이를 중계해 줄 것임이 분명한 이 사실에 뜬금없이 위로 받는다.

 

익숙했던 것이 변함없이 계속된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넘어 위로를 준다는 사실에, 그냥 삶이 헛헛해진다. 그럴 때면 여지없이 또 어색하고 부끄러운 표정을 감출 수 없다. 사람들 틈에서 어딘가 좀 서툴고 어설퍼 보일 때, 눈길이 더 가고 마음도 더 기우는 건 나의 취향일 뿐인 걸까.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뢰가 더 생기는 것은 오래된 나의 편견이자 신념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 오늘도 부끄러워하며 산다. 부끄러워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 또 부끄러워지면서 말이다.

 

 

안동환 (문학동인 캥거루 회원·2010년 문학사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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