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셰프?!

“할아버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지 키만한 할머니 에이프런을 두른 봄이가 저를 향해 활짝 웃으며 서 있었습니다. 장난기가 넘쳐나는 녀석은 제 리딩글라스까지 쓴 채 뒤집개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에 멋진 셰프가 오셨네? 그런데 우리 꼬마요리사님, 뭘 만드시려나?” 그러자 봄이는 “히…” 하며 웃음을 한번 날리고는 얼른 지 할머니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아내는 주방에서 새참으로 호박부침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호박 채를 썰 때부터 할머니 곁에 바짝 붙어있던 봄이는 잘 달궈진 프라이팬에 할머니와 함께 호박부침을 얹고 있었습니다. 기름이 튀지 않게 조심하면서 고사리 손으로 할머니를 도와주는 ‘보조셰프’의 모습은 가히 천사의 그것과 다름 아니었습니다. 소파에 앉아서 놀던 훈이도 욕심이 났던지 슬그머니 다가가 호박부침 몇 개를 얹어놓고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호박부침으로 우리는 한낮의 새참을 즐겼습니다. “자기야, 이거 먹어봐. 훈이랑 봄이가 만든 거야.” 아내가 가리키는 울퉁불퉁 삐뚤빼뚤한 호박부침을 제가 집어 들자 두 녀석의 시선이 저에게 집중됐습니다. “우와! 맛있다. 이거 미슐랭 쓰리 스타 맛인데?” 하자 녀석들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번졌습니다.

두 녀석 모두 갓 태어났을 때는 너무도 작고 소중해서 안아 들기조차 조심스러웠는데 어느새 이렇게 커서 이제는 할매할배에게 호박부침을 만들어주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할아버지, 이것도 먹어 봐. 이거 오빠가 만든 건데 되게 못 생겼지?” 제 입에 호박부침을 넣어주며 지 오빠를 향해 혀를 쏙 내미는 봄이의 모습에 우리 모두는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이번에는 녀석들이 ‘보조정원사’로 취업(?)을 했습니다. 우리 집 뒷마당 여기저기에 야채와 꽃 모종을 심는 할매할배를 돕기 위해 훈이와 봄이가 두 팔을 걷고 나선 겁니다. 모종삽과 호미로 열심히 땅을 파고 모종을 옮기고 그 위에 물을 주고…. 어느새 녀석들의 옷 여기저기에는 흙이 묻어 있었지만 그 위에는 녀석들의 즐거움이 덮여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앞마당으로 나갔습니다. 밋밋한 잔디밭 한쪽을 일궈내고 거기에 새 집 입주를 기념하는 오렌지 나무 한 그루를 심었습니다. 그 옆으로는 예쁜 꽃들도 좀 심고 크고 작은 인형들도 아기자기하게 배치해놨습니다. 땅을 파면서 나오는 지렁이들을 여자아이답지 않게(?) 재미있게 갖고 놀던 봄이는 아예 맨손으로 지렁이를 만지며 우리를 향해 찡긋거리기까지 했습니다. 정작 사내아이인 훈이는 기겁을 하며 줄행랑을 치는데도 말입니다.

나무 심기를 끝내고 자갈을 깔기 위해 쪼그려 앉아 있는 아내와 저의 엉덩이 아래로 무언가가 슬그머니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봄이가 할매할배 힘들다고 지들이 앉는 작은 접이식 의자를 갖다 준 겁니다. 저 작은 체구 어디에서 저토록 깊은 배려가 나오는 건지…. 보조정원사 노릇을 훌륭히 마친 두 녀석은 앞마당과 뒷마당에 물을 흠뻑 주는 걸로 그날의 업무(?)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새 집 입주기념 축하파티… 우리 일곱 식구는 뒷마당에 둘러 앉아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샴페인도 터뜨리고 바비큐 파티를 시작했습니다. 불판 위에서 맛있게 구워지는 고기와 풍성한 야채들… 일곱 개의 술잔(?)이 힘차게 부딪치며 우리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했습니다.

훈이와 봄이는 간간히 자리에서 일어나 배드민턴 놀이를 하기도 했고 아까 심어놓은 야채며 꽃 모종에 더 많은 물을 흠뻑 주기도 했습니다. 누구를 닮았는지 장난끼 혹은 괴짜스러움이 가득한 봄이는 통통하고 길쭉한 지렁이 한 마리를 들고 지 오빠 뒤를 쫓기도 했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려서 여러 가지로 힘이 들었던 우리의 ‘따로 또 같이’ 보금자리…. 기다리는 동안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그리고 금전적으로도 많이 힘들긴 했지만 푸른 잔디 위를 맘껏 달리고 있는 훈이와 봄이의 모습이 모든 걸 상쇄시켜줬습니다. 이제, 두 ‘보조셰프’ 겸 ‘보조정원사’와 함께 더 많이 즐겁고 행복한 우리 집을 열심히 가꿔나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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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1956년생. 한국 여성지 <여원> <신부> <직장인> <젊은엄마> 기자 및 편집부장, 호주 시드니 <코리아타운>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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