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아이들

참 고맙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일입니다. 맨 안쪽에 훈이가 자리를 잡았고 한 자리 건너 봄이가 앉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아내가 두 녀석 사이에 들어갔고 저는 봄이 옆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맞은편으로는 지 엄마아빠 그리고 삼촌이 앉았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앉고 싶어하는 두 녀석에 의해 완성된 최종 자리배치였습니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뭐가 그리 좋고 할 말이 많은지 훈이는 할머니와 쉴새 없이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깔깔댔고, 봄이는 그야말로 밥 먹는 시간 내내 저한테 착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습니다. 계속 제 밥그릇에 이런저런 것들을 올려주며 어릴 적 훈이가 하던 짓을 이어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봄이는 요즘 들어 저를 부쩍, 아주 티 나게 많이 좋아해주고 있습니다.

지난주 일요일 Father’s Day 가족외식을 위한 식당 주차장… 차에서 내리면서 할매할배를 발견한 두 녀석은 마치 백 만년 만에 만난 것처럼 우리에게 달려와 와락 안겼습니다. 우리도 녀석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게, 정작 내 자식들한테는 “어, 왔어?” 하며 메마른 인사만 건네고는 남의(?) 자식들과는 엉겨 붙어 한바탕 난리를 쳤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1학년에 다니고 있는 두 녀석은 다른 집들의 경우를 보면 어지간히 우리를 데면데면 대할 때도 된 것 같은데도 녀석들의 할매할배 사랑은 여전히 깊고 넘쳐나기만 합니다. 더 희한한 것은 아침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난다고 한껏 들떠 있었던 두 녀석이 할머니 할아버지 집으로 가는 게 아니라 식당에서 만난다는 이야기에 적잖이 섭섭해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임시로 나와서 살고 있는 지금 이 집이 영 불편하고 못마땅하기만 한데 녀석들은 이곳이 할매할배 집이라서 좋은가 봅니다.

에이든과 에밀리는 작고 앙증맞은 쇼핑백을 저에게 내밀었습니다. 녀석들의 코 묻은 돈으로 장만한 예쁜 선물과 카드가 들어 있었는데 쪼끄맣던 녀석들이 언제 이렇게 컸는지 대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봄이의 ‘Grandpa, happy Father’s day wish you have the best Father’s day today’라는 축하인사도 고마웠지만 훈이의 ‘Dear Grandpa, Happy father’s day, I hope you would stay with us forever’라는 문구에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잠시 우리 집에 들렀던 봄이는 카드 한 켠에 ‘I love you grandpa’라는 문구를 하트 표시와 함께 슬그머니 추가해놨습니다.

그날, 녀석들은 외식이 끝나고 기어코 우리 집에 가기로 했습니다. “나는 할아버지 차 타고 갈래!” 하는 에이든의 말에 에밀리가 “나도! 나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 부스터 시트 (booster seat)가 필수인 에밀리는 엄마 아빠와 함께 차를 탔고, 에이든은 옛날(?) 아기시절 즐겨 탔던 그 자리에 이제는 부스터 시트 없이 늠름한 자세로 앉아 안전벨트를 맸습니다.

두 대의 차가 나란히 주차를 마치자 에밀리가 쏜살같이 달려와 제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씩씩한 걸음으로 할매할배 집을 향했습니다. 녀석들은 좁고 답답하기만 한 뒷마당과 거실을 오가며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깔깔대며 즐거워합니다. 정말이지 녀석들에게는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꿀단지라도 묻어놓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 엄마아빠는 ‘잘 됐다’ 싶은 표정으로 두 녀석을 우리 집에 버려(?)두고 볼 일을 보러 나갔는데 두 녀석 모두 엄마아빠가 나가든 들어오든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동안을 할머니 할아버지와 놀던 두 녀석이 할매할배 집에서의 슬립오버 (sleepover)를 전격 제안했습니다. 다음 달, 봄방학 기간 동안 그렇게 하자는 우리 이야기에 두 녀석은 ‘너무 멀다.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리느냐?’며 항의 아닌 항의를 했습니다.

드물게 갖는 녀석들과의 슬립오버 기회도, 할매할배를 향한 두 녀석의 깊은 사랑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옅어져 갈 것임에는 틀림이 없을 겁니다. ‘녀석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좋아해줄 때까지 두 녀석과 최대한 많은 것들을 함께 하자’는 게 아내와 저의 생각입니다. 이번 슬립오버 때는 녀석들과 바비큐파티도 하고 좋아하는 김밥과 짜장면도 함께 만들어 먹어야겠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프로그램들을 추가해야 녀석들에게도 우리한테도 잊혀지지 않는 좋은 시간이 될지 벌써부터 가슴이 설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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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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