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남자가 권한 담배를 피워 문 토마스의 얼굴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레스토랑 안에는 부인이 입에 넣어준 스테이크 조각을 맛있게 오물거리는 남자가 보인다. 재잘거리는 아이들과 함께 수채화처럼 편안한 가족의 모습이다. 그때 창 밖에서 시커먼 복장을 하고 스키 모자를 쓴 한 떼의 남자들이 식당 쪽을 향해 재빠르게 움직였다. ‘뭐지?’ 남자들이 레스토랑 문을 향해 달려드는 순간 ‘테러구나!’ 순간적으로 사람들은 홀 뒤쪽으로 나있는 비상구를 향해 내달렸다.

 

01_불가항력

입구 쪽에 있었던 아이들의 엄마는 반사적으로 두 아이를 감싸 테이블 밑으로 주저앉혔다. 동시에 그녀는 남편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뒷문을 향해 쏜살같이 내달리는 모습을 보았다.

일초가 영겁처럼 길게 느껴지고 기관총이 레스토랑을 난타하는 순간을 기다리는데 조용한 공간에 라디오가 켜지듯이 일상의 평화롭고도 활기찬 소음이 들렸다.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했던 남자들은 지금 막 축구경기에 이겨 흥겨움을 가누지 못하는 근처 대학의 축구부 선수들이었다.

자리를 떠났던 사람들이 머쓱해져 돌아왔다. 여인의 남편도 슬그머니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포스 마쥬어’는 2014년 ‘올해의 영화’로 선정되었던 스웨덴 감독 루벤 외스트룬드 작품으로, 칸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 상을 받았다. ‘포스 마쥬어’라는 단어는 자연재해를 포함해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해볼 도리 없는 ‘불가항력’을 지칭하는 단어다.

 

02_불리한 진술

영화는 알프스에 스키 휴가를 온 토마스 가족이 기념사진을 찍고 최신 설비로 단장된 고급 호텔의 쾌적함을 만끽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틀째 되던 날, 이들은 커피숍 발코니에서 인공 눈사태를 구경하고 있었다.

정기적으로 굉음 장치를 사용해서 쌓인 눈을 무너뜨리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눈사태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멀리서 벌어지던 장관의 눈사태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발코니를 향해 밀려들었다. 카페에 있던 사람들이 혼비백산해 달아났다.

에바는 그녀의 남편 토마스가 허겁지겁 자신의 핸드폰과 장갑을 챙겨 커피숍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잠시 후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눈 먼지가 말끔하게 가라앉고 사람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다시 제자리를 찾아와 앉았다.

아이들 둘을 껴안고 ‘죽었구나’ 했던 에바는 홀로 피신했다 돌아온 남편에 대한 배신감으로 이미 마음이 싸늘해져 있었다. 갈등의 시작이다. 면목이 없던 토마스는 에바가 이런저런 생각 없이 그저 휴가를 재미있게 보내주었으면 바랄 것이 없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는 남편에 대한 실망감을 주체하지 못해 고통스럽다. 두 사람의 심상치 않은 기류에 어린 아들이 “엄마 아빠가 이혼할까 봐 무섭다”며 신경질적으로 울음을 터트리니 아이들의 휴가마저 망칠 지경이다. 에바는 남편과 이 문제를 풀어야겠다고 대화를 시도하지만 토마스는 한사코 에바가 잘못 기억하고 있다면서 자신 혼자만 몸을 피했던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03_항복

신체적인 위험뿐 아니라 인격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훼손을 당할 입장에 서면 사람들은 즉각적인 방어 태세를 갖춘다.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인간의 생존 본능 증 하나이니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겠다.

그러나 자신의 약점을 순순히 인정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긴 있다. 내게는 명품을 유난히 좋아하면서도 농사에 관심이 있는 직장 선배가 있었다. 노후에 몸빼바지를 입고 밭일을 하면서도 불가리 시계를 찬 자신의 손목을 들여다보면서 즐거워할 거란다.

그 말에 손뼉까지 치며 웃는 날 보면서 선배가 한술 더 뜬다. “내가 속물이잖니.” 자신에 대해 그렇게 솔직히 말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아서인지 지금까지도 선배가 한 말이 삶의 군더더기를 날려버린 통쾌한 명대사처럼 늘 기억에 남는다.

에바는 토마스가 자신의 비겁함을 인정하는 용기라도 보여주면 차라리 후련함을 느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남편과 아빠라는 위치를 지키지 못한 자신의 비겁함을 들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결국 핸드폰에 기록된 영상으로 에바는 남편에게 백기를 들게 했다. 불가항력의 상황에서 인간의 본능을 역설하며 곁에 있던 친구들이 두 부부의 관계회복을 위해 애를 쓰지만 에바의 마음이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

 

04_자백하라고?

호주에 이민 온 지 삼십 년이 넘은 어떤 사람이 한국에 나가면 “이민 간지 육 개월 됐다”고 한다는데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묻는 내게 “호주에 살면 영어 잘하겠네”라는 말이 부담스러워서라고 했다.

영어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친구에게 나도 신경질을 부린 기억이 있는데 “외국에 살면서 그 정도도 모르니?”라는 비웃음이 날아들까 봐 겁이 났다고 털어놨었다.

나와 그 친구는 서로의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면서 자란 사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솔직한 감정 표현에 익숙한 것은 아닐 것이다. ‘연탄길’을 쓴 이철환 작가는 ‘세바시’ 강연에서 두 명의 후배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그 둘은 함께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했는데 불행하게도 한 사람만 합격했다고 한다. 합격한 친구가 실패한 친구를 위로하려 전화를 했지만 몇 달이 지나도 그 친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친구의 전화는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배신감을 느낀 친구는 자기를 따돌리는 친구를 찾아가 “너는 친구를 질투하니? 넌 친구도 아니야!”라는 말을 던지고 결별을 선언했다고 한다. 작가는 나중에 시험에 떨어졌던 후배를 만났다는데 그 후배는 합격한 친구를 축하해 줄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 상처가 아물고 친구의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 들 때 자신이 연락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다. 이렇듯이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꺼내 보이기 어려운 감정이 있다.

 

05_미란다 원칙

형사법에는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진술거부권’이 있다. 일명 ‘미란다 원칙’이다. 법도 각 사람에게 불리한 진술을 피할 권리를 주는데 “당신의 비겁함을 자백하고 항복을 선언하라”는 에바의 고집스러움은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실수나 약점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비겁하며 정직하지 않다고 쉽게 단정 짓는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가 보고 싶은 나름의 모습이 있다. 그러나 때때로 소망하는 자신과는 동떨어진 자기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그런 사실에 실망하고 괴로운 것은 누구보다도 본인 자신일 것이다.

합격한 친구를 질투했던 남자처럼, 부실한 영어실력을 숨기고 싶은 우리 같은 이민자처럼, 누구든지 자기 속의 불편한 감정을 대면하는 일에는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06_안되면 될 때까지?

어른의 서슬에 놀란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듯이 토마스는 계속되는 아내의 싸늘한 표정에 눌려 급기야는 호텔 방에 쓰러져 통곡한다.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은 아빠가 가여워 견딜 수 없다. “엄마 뭐해! 빨리 와서 아빠 좀 달래 봐!” 아이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오열하며 뒹구는 남편의 모습 속에서 에바는 끈끈한 가족애를 느끼고 얼어붙었던 마음을 풀었다.

다음 날, 안개가 짙게 낀 산속에서 선두에 선 토마스는 가족끼리 떨어지면 위험하다고 아내와 아이들을 챙긴다. 그때 안개 속으로 에바가 뒤처지며 사라졌다. 조금 후 멀리서 ‘살려줘요’라는 에바의 구원 요청이 들렸다.

토마스가 영웅적 힘을 발휘할 절호의 기회가 왔나 보다. 서 있던 자리에서 꼼짝 말라고 아이들을 단속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토마스는 에바를 구해 안고 돌아왔다. ‘이제 살았어!’ 하는 말과 동시에 에바는 자기 스키를 가져오려고 천연덕스럽게 다시 산 중턱을 향해 올라간다.

이런 상황극에 어떤 식으로 장단을 맞춰야 할지 몰라 두 아이는 어리둥절이다. 아버지의 역할과 기량을 기필코 아이들에게 확인시키려는 에바의 집념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07_체면

1897년 북극 탐험을 위해 떠났던 사람들의 사진과 기록이 삼십 년이 지난 후에 발견되어 화제가 됐었다. 갈매기와 물개를 잡아먹는 등 세 명의 탐험가는 삼 개월을 혹독한 추위와 싸우다 죽어갔다.

일기에 죽기 전까지 그들의 행보가 적혀 있다. 탐험을 주도했던 에스 에이 앙드레 (S.A. Andree)는 부실한 장비로 모험을 떠났다고 한다. 당시 스웨덴 정부는 러시아를 비롯한 주변국가들에 내세울 만한 무언가를 찾고 있었는데 정부 요직에 있었던 앙드레가 조국의 명예를 위해 최초의 북극 탐사를 강행한 셈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 것은 그가 떠나면서 자신들이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사실이다. 외스트룬드 감독은 한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남자가 겪는 ‘체면’이라는 주제에 늘 관심이 간다고 했다.

인간으로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아픔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 것이며 남자들에게 영웅적 행동을 요구하는 사회가 얼마나 불공평한가를 토로했다. 중산층 가정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안전한 환경에서 자란 토마스 같은 백인 남자가 위험한 상황에서 용감무쌍하게 행동할 거라는 기대 자체가 인간의 본성과는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08_우리 모두는…

‘중국에서 가장 높은 유리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이 유튜브 동영상에 올라와 있다. 난관을 부여잡고 온몸에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이나 다리 위에 드러누워 못 가겠다고 버티는 사람들의 심정이 화면을 통해 절절하게 느껴진다.

스키 휴가가 끝나고 에바의 가족을 실은 관광버스가 알프스산맥의 좁다란 산 중턱에서 기어를 바꾸며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는 중이었다. 운전사가 방향을 틀면서 급정거를 하니 차체가 벼랑 끝에 덜컥하고 걸렸다. 승객들이 내지르는 소리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운전을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예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에바가 항의하지만 운전대와 씨름을 하는 기사는 예바의 항변에 대꾸할 겨를이 없다. 급기야 버스 앞부분이 크게 출렁이며 천 길 낭떠러지로 왈칵 쏠리는 듯하자 그녀의 공포심이 극에 달했다.

그녀는 차 문을 열라며 고함을 지르고 깎아지른 벼랑 끝에서 곡예를 벌이던 운전자는 망설이다 문을 열어 주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퉁겨지듯이 버스에서 내리는 에바의 모습에는 아이들과 남편을 생각할 만한 여유가 조금도 없다.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함께 탑승하고 있던 사람들도 다투어 에바를 쫓아내렸다. 그런 소동에도 개의치 않는 승객 한 명을 태우고 버스는 휭 하니 떠나갔다. 배낭과 겨울 옷을 챙기지 못하고 내린 한 무리의 사람들은 쌀쌀한 날씨 속에서 왠지 허탈하다.

자신의 조급했던 행동을 변명하듯이 “운전사가 정신이 나갔나 봐요. 우리 정말 너무 위험하지 않았어요?” 조심스럽게 운을 띄우는 에바에게 대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모두는 그저 어떤 한 부분에 취약점을 가진 인간이 아니겠나. 영화의 마지막은 산허리를 걸어 내려오면서 옆에 있던 남자가 권하는 담배를 토마스가 여유 있게 피워 무는 장면으로 끝을 냈다. 그의 얼굴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어린다.

 

글 / 박해선 (글벗세움 회원·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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