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 WHO KNEW INFINITY
막연하고 어렵기만 한 수학의 세계를 살짝 열어놓은 영화
수학을 꼭 배워야 하나? 어떤 아이가 왜 수학을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러자 옆의 아이가 쓸모가 있으니까 배우는 거 아닐까? 라는 대답을 한다. 그러자 또 다른 옆의 아이가 조용한 목소리로 그건 진짜 이유가 아니란다. 수학은 진리와 아름다움에 관한 공부라고 한다.
01_수학자들이 가진 열정은 어디서 오는 걸까?
책 <아름다움이 왜 진리인가>에 나오는 이야기다. 왜 수는 아름다운가? 이것은 왜 베토벤 9번 교향곡이 아름다운지 묻는 것과 같단다. 이상한 것은 베토벤의 교향곡이 아름다운 것은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는데 비해 수학에 관해서만은 수학자들이 가진 열정이 어디서 오는 건지 짐작할 수 없어 답답하다.
수학은 정말 아름다울까? 아름답다면 뭐가 아름답다는 건가? 대한민국에서 70년대 중고등학교 교육을 받은 나는 일찌감치 수학을 포기한 많은 문과생 중 한 명이었다. 그런 사람을 ‘수포자’라고 부른다는데 요즘도 대학입시를 위해 난해한 수학 공부 대신 다른 과목에 시간을 쓰겠다는 학생들이 70% 이상이라고 한다.
수학을 잘 하면 사람을 이성적으로 만들며 사고력을 길러 실질적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지만 나는 수학의 아름다움이나 수학의 논리적 접근이 삶에 적용되는 기쁨을 느껴보지 못한 채 그것과는 영영 이별한 셈이다.
그렇게 막연하고 어렵기만 한 수학의 세계를 살짝 열어놓은 영화가 있었다. 열어놓았다고 보일까마는 인도의 천재 수학자 라마누잔은 내게 수학의 세계에 호기심을 갖게 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02_통계학, 그리고 성심을 다하여
근무 실적이 형편없는 사원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라고 했더니 열심히 할 계획이란다. 어이가 없지만 다시 어떻게 열심히 할 거냐고 묻자 성심을 다해 열심히 하겠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크리미아 전쟁은 40만 명이 넘는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았다. 실려 오는 부상병들을 향해 성심을 다하는 마음으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이리 뛰고 저리 달리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환자들을 돌보았다면 그 마음이야 갸륵하지만 40%가 넘는 환자의 사망률을 3% 이하로 떨어뜨리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그녀에게 있었던 수학적 능력은 전체적 숫자와 구체적 숫자를 머리에 그려 넣을 수 있었다. 병원에 들어온 전체 군인의 어느 정도가 얼만큼의 기간 치료를 마치면 퇴원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그림, 곧 숫자다. 그런데 수가 맞아 떨어지질 않았다.
개업한 주인이 첫 달엔 3불이 손해가 나겠구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40불이 비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녀는 군인들이 전투에서 얻은 부상보다는 병원 안의 불결함으로 사망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병원의 위생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그녀가 다음으로 해야 할 다급한 과제였다.
나이팅게일이 고안한 로즈 다이어그램은 사실적 데이터의 분석을 시각화시켜 관계자들을 설득할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적극적 협조를 얻어 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 보이는 것과 정말 그런 것과의 차이를 구별하는 수학의 힘을 내게 쉽게 이해시켜 준 예화였다.
‘세바시’ 프로에 출연한 박형주 수학과 교수는 수학과 무관하게 살기로 한 청소년들에게 수학의 의미를 묻는다. 학생들이 수학을 포기하는 것은 어려워서가 아니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고 어디에 쓰는지 모르기 때문이란다.
그는 우리의 미래에 수학의 의미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읽고 논리적 사고를 길러 문제의 본질을 보고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기 위해서라고 한다. 더 쉽게 말하면 그 논리적 사고의 재료가 수와 방정식이라는 이야기다.
03_자연계 속의 수학
라마누잔의 아내가 남편의 수학공책 안에 빼곡하게 적힌 기호와 공식을 보며 이것들로 도대체 무얼 하는 거냐고 묻는다. 라마누잔은 그것을 그림 그리는 일과 비슷하다고 말해준다. 단지 색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라며.
자기 이름조차 쓸 줄 모르는 그의 아내에게 수학공식 안에 숨겨져 있다는 색의 신비로움이 보일 리 없다. 보이지 않는 색을 설명하기 위해 라마누잔은 한 움큼의 모래를 집어 든다. 작은 입자로 된 알갱이들이 모여서 어떤 형태를 이루고 있다.
빛에서 뿜어내는 색깔이나 물 위에 비취는 무늬 혹은 번개나 강줄기, 나무, 뇌의 표면 등 세상의 모든 것엔 작은 입자들이 모여 일정한 패턴 즉, 규칙적인 무늬가 있다고 한다. 일부 작은 조각이 전체와 비슷한 기하학적 형태 즉, 한 단어로 말하면 프랙털이다.
프랙털이란 단어가 생소하다면 한 덩어리의 브로콜리를 연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러시아의 전통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큰 인형 속에 작은 인형들이 순차적으로 들어 있듯이 브로콜리 안에 자기복제의 신비한 규칙이 있다. 불규칙해 보이는 자연 속에서 프렉털은 놀라운 규칙성으로 그 모양새를 드러낸다.
04_피보나치 수열
내 친구에게 3, 5, 8, 13, 21, 34, 55, 89… 숫자를 보여주며 이 안에서 어떤 규칙이 느껴지냐고 물었더니 숫자는 보기만 해도 벌써 울렁증이 생긴단다. 그러나 피보나치라는 수학자의 이름을 딴 피보나치 수열 3, 5, 8, 13, 21, 34, 55, 89…을 조금만 관심 있게 들여다보면 간단하면서도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3+5=8, 5+8=13, 8+13=21, 21+34=55, 34+55=89라는 공식이 성립하는데 앞의 두 수를 더한 합이 다음 수로 이어진다. 꽃잎의 수가 이 숫자를 벗어나는 경우는 드물며 파인애플이나 솔방울의 마주 보는 변을 따라 연결된 나선의 수가 피보나치 수이고 해바라기 씨의 나열도 마찬가지란다. 이런 신비한 수의 공식은 훨씬 더 복잡하고 오묘하게 연결된다.
05_황금비
울던 아기도 예쁜 여자가 쳐다보면 방긋 웃고 웃던 아기도 노인이 쳐다보면 울음을 터트린다는 말이 있다. 아름다운 것을 선호하는 성향은 인간의 본능 속에 있다고 한다. 그 아름다움의 기준은 그 조화가 매우 오묘하고 이상적이어서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에 안정을 준다는 황금비였다.
이웃하는 피보나치 수열의 비를 살펴보면 5÷3=1.6, 8÷5=1.6, 13÷8=1.6, 21÷13=1.6, 34÷21=1.6… 이렇듯 우리가 흔히 말하는 1.6이라는 황금비가 나온다.
피보나치 수열로 이루어진 사각형을 따라 곡선을 그리면 황금 나선의 비율이 나오는데 황금비율이라는 정의가 수학에 머무르지 않고 예술과 음악 같은 다른 분야에서도 끊임없이 발견된다. 이것만으로도 ‘수학은 자신의 패턴을 스스로 드러내는 경이롭고 대단한 것이다’는 라마누잔의 수의 세계로 조금 가까이 다가선 느낌이 든다.
06_고독한 수학의 길
당시 인도에서는 라마누잔의 수학적 천재성을 펼칠 만한 장이 없었다. 자기가 발견한 수학공식이 세상에 알려지지 못하고 자신 안에서 사장될까 봐 노심초사하던 그에게 영국으로 가는 길이 열린 건 기적이었다.
케임브리지대학의 하디 교수가 그의 수학공식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수학자로서의 어려움은 그때부터가 시작인 셈이다. 하디와 리틀우드 교수 외에는 케임브리지에서 라마누잔의 수학적 능력을 인정해주고 싶은 교수들은 거의 없었다.
그는 공식을 발표하고 그것을 논문으로 출판하려는 명백한 목적을 가지고 영국에 왔지만 이방인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여러 수학자의 즉각적인 반감을 산다. 교수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수학 강의실에 부득이 앉아 있는 라마누잔에게 왜 자기의 강의를 노트에 적지 않느냐고, 네가 그렇게 잘났으면 칠판에 적힌 문제를 나와서 풀어보라고 윽박지르는 교수도 있다.
칠판 한 면을 자신의 수학공식으로 가득 채우는 라마누잔 때문에 학생들 앞에서 체면을 구겼다고 생각한 교수가 그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사용해 억지를 부린다. 그 일은 그의 고독한 영국에서의 삶에 그저 자그마한 예일 뿐이다.
07_어떻게 하는 거죠? 그냥…
김연아 선수가 밴쿠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 훨씬 전이었다. 마루 위에서 트리플 점프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기자가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었다. 스케이트를 신지 않고 ‘호로록’ 소리가 날 정도로 공중에서 연거푸 몸을 돌리는 것이 놀라워서 묻는 말이다.
연아 선수는 ‘그냥…’ 자기도 어떻게 하는지 신기하다며 깔깔 웃었다. 하디 교수는 라마누잔에게 왜 수학을 하느냐고 묻는다. 라마누잔의 대답은 어느 천재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모차르트에게 그냥 교향곡 전체가 들리는 것처럼, 미켈란젤로가 영감 속에서 그냥 붓을 움직이는 것처럼 수많은 수학 공식들이 라마누잔에게 스스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이다.
그러나 라마누잔은 자신이 기록하는 수학공식에 오류가 없다는 것을 거꾸로 증명해내야 했다. 천재에게 겸손은 위선이라고 쇼펜하우어가 말했다는데 모차르트에게 도레미의 과정을 차곡차곡 밟아 오라는 말이다. 그것이 얼마나 지루하고 고된 일일까.
이 과정은 인도인을 무시하는 오만한 수학자들의 텃새와 겹쳐져 라마누잔의 몸과 마음을 기진하게 했다. 천재에게 어울리지 않는 겸손을 가르치려고 천재 수학자를 그렇게 홀대하고 있었다. 세상이 라마누잔을 대하는 방식은 코끼리가 그림을 그린다는 신기한 정도였는지도 모른다.
라마누잔이 뉴턴에 버금가는 수학자인 것을 그들이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하는 말이다. 그는 폐렴에 걸린 데다 타향살이의 고달픔에 절망하면서 전철에 몸을 던졌다. 운전자가 먼저 보고 전철을 멈추어 타박상에 그쳤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08_증명
라마누잔이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야 하디 교수는 그가 고향에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이역만리 타향살이를 하는 외로운 청년이란 걸 인식한다. 병원으로 찾아간 하디는 맘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자기가 타고나길 내성적인 데다 사람들과 관계하는 것이 어렵기만 하단다.
자신의 인생 자체가 수학이라는 말은, 좀더 따뜻하게 대해 주지 못했던 미안함의 표현이다. 그런 교수에게 우정을 느낀 라마누잔은 자신의 수학적 능력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싶으냐고 묻는다. 궁금증으로 귀를 기울이는 하디 교수에게 ‘잠들어 있는 동안 신이 다가와 입 속에 공식을 넣어 주곤 한다’며 친구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소년처럼 진지하다.
당신이 나의 진정한 친구라면 자기가 하는 말이 거짓말이 아닌 것을 믿을 거라는 말도 덧붙인다. 그러나 하디는 철저한 무신론자다. 라마누잔의 수학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 재능을 신에게 받았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말이다.
09_수학의 아름다움
증명할 수 없는 어떤 것도 믿지 않는다는 하디 교수의 대답에 라마누잔의 고유한 수학적 명제가 탄생한다. ‘신의 사색을 표현하지 않는 방정식은 저에게 무의미합니다.’
내게 수학이란 단순한 공식의 반복이 아닌 위대하고 아름다운 그 어떤 세계라는 걸 느끼게 해준 장면이다. 학창시절에 불필요한 공포와 거부감 없이 수학이 아름답고 재미있는 걸 알았더라면… 하지만 끝내 무관심했을 수학의 세계를, 이제라도 마음을 열고 대한다면 그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더 느껴 볼 수 있지 않을까….
글 / 박해선 (글벗세움 회원·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