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세월을 안다

바람결이 부드럽다. 어느새 10월이다. 새해가 온다고 새 다이어리를 산 것이 엊그제 같은데, 다이어리의 남은 부분이 지나온 부분보다 훨씬 얇아졌다. 모르는 사이에 벌써부터 봄이 와있다. 내가 사는 이곳은 10월이면 봄의 중간이다. 분명한 것은 9월부터 봄인데, 9월은 바람도 하늘도 들도 산도 도무지 봄 같은 빛깔이 아니다. 이곳은 하늘의 축복인지 사람들의 애씀인지 계절에 따라 산과 들과 강과 바다와 하늘은 영락없는 제 빛깔이다.

춘래불사춘 春來不似春)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뜻이다. 절기상으로는 분명히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은 궂은 날씨가 이어질 때 쓰는 말이다. 때로는, 좋은 시절이 왔어도 상황이나 마음이 아직 여의치 못하다는 은유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9월이 딱 그랬다. 고국의 꽃샘추위가 봄을 시샘 하듯이 9월은 바람이 심술궂고 잔비가 쉬지 않고 내렸다. 봄이 왔지만 봄이 아니었다. 그러다 10월이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봄이 봄다운 모습으로 얼굴을 내민다. 10월이 되면 부드럽고, 온화하고, 소곤대는 것 같은 봄바람 냄새가 내 몸뚱이를 감싸고 든다.

시드니도 여기와 같은 봄이다. 거기에 사는 내 친구 글쟁이는 “뒷마당 텃밭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상추며 깻잎이며 각종 모종들이 쑥쑥 자라고 있고 블루베리도 꽃들을 무수히 피우고 있습니다”라고 글을 썼다.

모르긴 하지만, 그는 더운 여름 저녁노을이 질 때 상추 고추 깻잎을 따다가 풍성한 식탁을 차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딸 손자 손녀와 둘러앉아 웃음 꽃을 피울 생각에 벌써부터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을 거다. 그렇게 여름의 풍요를 떠올리며 신바람이 났을 거다. 그는 봄에는 한 해의 풍성함을 위해 텃밭을 건사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 거다. 그는 바람의 냄새를 맡을 줄 아는 거다.

바람은 세월을 안다. 봄에는 따뜻한 봄바람을 보내 씨 뿌려야 한다는 걸 알려준다. 여름에는 넉넉한 여름바람을 보내 풍요로움을 말한다. 가을에는 서늘한 가을바람을 보내 저장의 필요성을, 겨울에는 차가운 겨울바람을 날려 빈곤과 부족함을 알려준다. 그렇게 바람은 우리에게 삶의 흐름을 속삭인다.

하지만 멍청하고 게을러 그 속삭임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귀 막은 여름의 배짱이처럼 아무 생각 없이 되는대로, 무심이 흐르는 세월 따라 그냥 저냥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가 추운 겨울이 오면 가슴을 두드리며 후회할 걸 알면서도.

바람이 봄을 소근거리면 씨 뿌리고 묘목을 가꿀 줄 알아야겠다. 그래야 바람이 여름이 온다고 말해도 후회하지 않고 성급해지지 않을 거다. 당연히 가을이 오면 갈무리해둔 내 곳간은 풍성해질 거고, 바람이 날카롭고 춥고 얼고 어두운 겨울이 온다고 염려해줘도 아무런 걱정이 없을 거다.

고국의 10월은 결실의 계절이라는 가을의 한 가운데다. 산과 들이 붉고 노랗게 단장을 하고 하늘은 파란 치마를 두른다. 헌데 요즘은 미세먼지인지 또 다른 무엇 때문에 붉고 노란 단풍은 선명하지 않고, 세상 풍경들이 회색 물감을 섞어놓은 것 같은 짜증나는 날들의 연속이라고 한다.

파란 하늘은 어쩌다 한번 정든 님 싣고 돌아오는 항구의 배처럼 가끔 보일 뿐이라고 한숨 섞인 푸념들이란다. 이렇게 세월이 더 가면 그런 푸념조차 메말라 버릴까 봐 심드렁하다. 계절이 제 빛깔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고국은 촛불혁명으로 어둡고 몸뚱이 시리던 겨울을 밀어내고 개나리 진달래 사이사이로 노랑나비 호랑나비 하얀나비 어울려 팔랑팔랑 춤추는 봄이 온 줄 알았는데, 아직도 고국은 춘래불사춘이다.

계절도 세상도 봄이 아니다. 나라를 이끈다는 나리들은 백성의 고달픈 삶은 나 몰라라 하며 지들 밥그릇을 위해서만 날마다 시비 걸고 싸운다. 사라져야 할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물러가기 싫다고 아우성치는 꽃샘추위처럼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 기승이 너무 춥다.

바람은 세월을 알고, 내 친구 글쟁이도 바람을 알아 이 봄에 여름의 넉넉한 식탁을 준비하는데, 세월 모르는 내 고국은 언제쯤 돼야 싸움질을 멈추고 풍성한 식탁을 마련하며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을 마련해두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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