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

학원 가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 민수도 그런 아이들 중 하나였습니다. 학교수업을 마치고는 친구들과 게임도 하고 공도 차며 즐겁게 놀고 싶었을 터입니다. 민수엄마 또한 아이를 여기저기 학원에 보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다른 아이들이 모두 다니는데 자기 아이만 안 보내기도 그렇고 해서 가장 기초적인 학원 한 곳만을 정해놓은 상태였습니다.

안 가겠다는 아이를 겨우 어르고 달래서 막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노인정에서 돌아오던 할머니와 마주쳤습니다. “어? 민수야, 너 왜 그래?” 잔뜩 일그러진 표정의 민수는 할머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자기는 학원에 가기 싫은데 엄마가 억지로 떼밀어서 어쩔 수 없이 가는 중이라는 요지의….

잠시 후,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집안으로 들어오는 아이의 모습을 본 민수엄마는 억장이 무너짐을 느낍니다. “어이구, 내 새끼, 내 새끼, 저놈의 엄마가 내 새끼가 싫다는데도 억지로 학원 가라고 내쫓았어요? 예끼, 나쁜 엄마 같으니라구… 내 새끼, 얼른 얼른 들어와요. 할머니가 맛 있는 거 해줄 게요.”

할머니 품에 안겨 낄낄대는(?) 아이를 보는 민수엄마의 속은 까맣게 타 들어갑니다. 아이를 아무리 타이르고 가르치려 해도 늘 저런 식으로 할머니가 초를(?) 칩니다. 실제로 민수에게는 엄마도 아빠도 아닌 할머니가 ‘가장 힘 있는 사람’으로 인식돼 있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무슨 얘기를 하든 할머니가 뒤집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같은 할머니의 파워(?)는 학교에서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학교까지 할머니는 민수를 매일 아침 데려다 주고 교실 입구에서는 실내화까지 신겨줬습니다. 방과 후에 아이 손을 잡고 집까지 데려오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학교에서도 선생님이 민수의 잘못에 대해 꾸지람을 하려 들면 “우리 할머니한테 이를 거야!”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시어머니와 대판 싸워서라도 바로잡고 싶었지만 민수엄마는 꾹꾹 눌러 참고 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대가 엄청 센 시어머니는 집안을 발칵 뒤집어놓기 일쑤였고 그 여파는 퇴근 후 돌아오는 남편한테까지 고스란히 미치기 때문에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 그 민수는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있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손자 손녀에 대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은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깊이가 정상의 범위를 벗어나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게 아내와 저의 생각입니다. 우리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에이든, 에밀리 두 녀석에 대해 늘 한 걸음 물러나 있는 건 그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어찌됐거나 두 녀석은 지들 엄마 아빠가 책임지고 키워야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 원칙에 위배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가족모임이 있던 날, 딸아이 가족이 우리보다 일찍 집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안으로 들어갔는데 에이든이 소파 뒤에 숨어(?) 울먹이고 있었고 에밀리가 그런 오빠를 곁에서 토닥이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에는 녀석들의 과자창고(?)가 있고 두 놈 다 우리 집에 오면 그곳부터 뒤집니다. 에이든은 그날도 기분 좋게 과자를 들고 나왔지만 “과자는 밥 먹고 먹어야 한다”는 엄마의 얘기에 집안으로 들어서던 할머니한테 도움을 청했지만 역시 똑 같은 대답을 얻었던 겁니다.

이번에는 마지막 보루인 할아버지가 나타났지만 “에이든, 밥 맛있게 다 먹고 나면 할배가 과자랑 아이스크림이랑 전부 챙겨줄 게. 우리 에이든, 뽀로로도 줄까?”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훌쩍이던 녀석은 손등으로 눈을 한번 쓱 문지르더니 제 손을 이끌고 장난감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녁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동생과 함께 장난감놀이 삼매경에 빠졌던 에이든은 그날 저녁,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 후 과자와 아이스크림 그리고 뽀로로 음료의 맛있는 세계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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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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