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소재로 세계적 명성 쌓은 화가 로이 리히텐슈타인

팝 아트 쌍두마차로 불리며 전후 현대미술 한 획 그어

현대미술에 대한 지식이 없는 보통의 사람들이 유서 깊은 유명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뜬금없이 미키 마우스나 60년대 미국 만화의 한 장면이 거대한 캔버스에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아마도 작품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이전에 이것이 진짜 예술이라고? 하는 의구심과 경악에 휩싸일 것이다.

 

01_평생 미국서 살며 가장 미국적 예술 선보인 화가

꽃모자를 쓴 여자 1963년

20세기에 교육을 받고 전통적인 미술이 눈에 익은 사람들에게 팝아트는 받아들이기 힘든 장르인 것 같다. 아마도 모나리자의 미소에서 시작해 피카소의 기괴한 여인들의 초상화까지가 한계이지 않을까?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이제 21세기를 살고 있고, 만화나 벽의 낙서가 예술작품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이미 지난 세기에 2차 대전 후 유럽을 딛고 올라선 미국에서 싹터 벌써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람들의 호응 속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만화를 소재로 해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화가 로이 리히텐슈타인 (Roy Fox Lichtenstein 1923년-1997년)은 미국에서 태어나 평생 미국에서 살며, 가장 미국적인 예술을 선보인 화가이다.

앤디 워홀과 함께 팝 아트의 쌍두마차로 불리며, 전후 현대미술의 한 획을 그은 그는 미국의 풍요와 물질주의의 바탕 위에서 한없이 가벼운 날개짓으로 권위와 전통 따위의 가치관을 송두리 채 박살내버리고, 예술이라는 정의를 확장시키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만화를 소재로 예술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과연 이러한 작품을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팝아트의 세계에서는 하등의 필요가 없는 물음일 것이다.

 

02_도시화된 1960년대 미국사회 대표하는 미술사조 팝아트

꽝! 1962년

1, 2차 세계대전으로 사람들은 그 동안 절대적이라고 믿어왔던 모든 가치의 붕괴를 경험하였고, 예술가들 역시 절대가치의 부정 위에서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다. 붕괴 후의 세상은 마치 흰 도화지와도 같아서 무엇을 써나가든 한계 없이 마음껏 자유로운 발상으로 예술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모든 형식에서 벗어나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으로부터 출발한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작이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기존의 예술과 문화가 지닌 절대성과 진실성을 부정하고, 상대성과 다양성을 강조하는데 그 기반을 둔다. 다양한 형식과 기법을 혼합하고 대중과의 경계를 허문 포스트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운동으로 팝아트, 개념 미술, 해체주의 등이 있다.

팝아트는 Popula art의 줄임말로 대중예술을 의미하며, 매스 미디어와 광고 등 대중문화적 시각 이미지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운동이다. 팝아티스트들은 대중적 요소를 예술에 차용해 예술의 접근하기 어려운 고고한 아성을 허물고, 그것이 누구에게나 오픈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저렴한 가격과 상업성, 대중적이면서 매력과 위트를 가지고 임팩트있게 다가와야 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면서도 현 시대의 문화와 정치, 사회를 담을 수 있어야 한다’는 개념으로 무장한 팝아트는 베이비 붐과 경제적 성장이 급격히 이루어져 도시화된 1960년대 미국사회를 대표하는 미술사조가 되었다.

 

03_“아빠는 이런 그림도 못 그리지?” 하는 아들 말에 자극 받아

모발의 반사를 위한 콜라쥬 1989년

리히텐슈타인은 1923년 뉴욕 맨하튼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집안은 중산층 유대인 가정이었다. 디자인과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미술을 배우고, 1940년 오하이오주립대학 미술학부에 입학해 미술을 전공했다.

그는 1949년 이곳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강사로10여년간 미술을 가르쳤는데, 수입이 적어 생계를 위해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며 화가의 길을 모색했다. 그는 1950년대에는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그렸지만, 1960년에 앨런 캐프로의 영향으로 팝아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61년작 ‘이것 좀 봐 미키’는 디즈니 만화의 한 장면을 커다란 캔버스에 그린 작품으로 리히텐슈타인이라는 화가를 세상에 알리게 한 작품이다. 어린이들의 우상인 미키 마우스와 도날드 덕이 노랑, 진청, 빨강의 단순한 색과 굵은 윤곽선으로, 만화에 나오는 그대로 그려져 있다.

추상표현주의의 그림을 그리던 리히텐슈타인은 어느 날 아들이 만화책을 펼쳐 들고 “아빠는 이런 그림도 못 그리지?” 하는 말에 자극을 받아 만화와 똑같은 그림을 그려보리라고 결심을 했다고 한다. 결과는 매우 훌륭해서 별 기대 없이 걸렸던 그의 작품은 대중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 1962년 뉴욕의 유명한 미술상 레오 카스텔리의 갤러리에서 열린 리히텐슈타인의 첫 개인전에서는 오프닝 전에 모든 작품이 팔려나가는 기염을 토할 정도였다. 앤디 워홀이 리히텐슈타인의 만화작업을 본 뒤 자신의 만화작업을 접고, 유명인의 초상 쪽으로 선회한 유명한 일화도 있다.

 

04_확대해서 사용한 망점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

빅 페인팅 No 6 1965년

리히텐슈타인 작품의 커다란 특징은 망점의 확대 사용이라 할 수 있겠다. 신문이나 잡지를 인쇄할 때 색과 농도를 결정하는 미세한 점을 벤 데이 닷 (망점)이라고 하는데, 1879년 삽화가 벤자민 데이라는 사람이 전부터 내려오던 방식을 개량하여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사실 우리가 만화나 신문의 그림을 볼 때 이 점을 들여다 보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의 그림이 좀더 만화가 지니고 있는 특성인 조잡한 인쇄 퀄리티를 드러냄으로 더욱 대중적인 이미지를 드러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당시의 사람들이 환호하는 인쇄기술의 한계를 보여주고, 한낱 인쇄물이 고고한 순수미술의 영역을 침범하는 쇼크를 대중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것도 같다. 그가 의도를 가지고 확대해서 사용한 망점은 그의 작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리히텐슈타인은 만화에서 기계로 찍어내는 망점을 일일이 손으로 그려내었다. 초기에는 알루미늄판에 구멍을 뚫어 붓으로 칠하기도 하고, 탁본을 실험하는가 하면 연필로 금속망 위를 문지르기도 하였다. 마침내 켄버스에 오버헤드 프로젝트로 망점을 비추고 거기에 구멍을 뚫은 판을 맞춘 후 물감을 칠하는 등 완벽한 망점을 구현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하였다. 이러한 노력들이 기계로 찍어낸 기성품과 구별되어 작품의 가치를 높이는 것 같다.

 

05_만화작업의 주제는 로맨스와 전쟁

아를의 침실 1992년

1963년작 ‘익사하는 여자’는 1960년대 DC코믹스의 시리즈 만화 ‘ Run for Love’에서 물에 빠진 여자가 나오는 장면을 확대해 그린 작품이다. 만화의 특징인 검정색의 굵은 윤곽선으로 이루어진 인물 묘사와 망점으로 이루어진 색상의 표현 등 만화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온 이 작품은 만화를 예술로 승화시킨 그의 대표작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만화와 같은 질감을 내기 위해 그는 망점을 일일이 손으로 그려 작가가 의도적으로 망점의 효과를 내려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흔한 로맨스 만화의 한 장면으로, 물에 떠내려가는 여인은 “상관 없어, 브래드에게 살려달라고 하느니 차라리 빠져 죽겠어.”라는 말풍선을 달고 있다.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에서 말풍선은 종종 작품의 제목이 되기도 한다. 과장된 감정과 진부한 설정으로 범벅이 된 이 만화는 리히텐슈타인에 의해 예술이라는 영역으로 진입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대중들에게는 자신이 매일같이 접하는 일상 속의 존재가 예술이라는 옷을 떨쳐 입고 있어도 친근한 내용으로 인해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물감이 흩뿌려진 추상표현주의나 수많은 부호로 이루어진 추상화를 보며 골머리를 썩히던 그들은 이제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그림 앞에서 뿌듯함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리히텐슈타인의 만화작업의 주제는 로맨스와 전쟁으로 그 당시 대중들이 환호하고 소비하던 흔한 주제이다. 그의 만화작업에서 여인은 거의 눈물을 흘리거나 남자에 의존하는 여성상으로 그려지고, 남성은 대부분 군인이나 전쟁 속 이미지로 나타난다.

1962년작 ‘꽝!’은 비행기가 폭탄을 맞고 폭발하는 장면을 그렸다. 꽝이라는 붉은색 글자가 폭발하는 노란색 불길 속에서 커다랗게 쓰여있고 적국의 비행기는 뒤집힌 채 추락하고 있다. 지금 보면 소년들의 유치한 감성일 것 같지만, 바로 얼마 전 직접 전쟁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실감나는 장면일 것이다.

 

06_‘행복한 눈물’로 한국서 가장 유명한 팝아티스트 돼

안개 속의 풍경 1996년

‘행복한 눈물’ (1964년)에는 빨강머리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한 여인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다. 굵은 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단순한 색채로 표현된 이 인물에서 우리는 예술가의 고뇌가 담긴 어떤 미적 감각을 찾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단조롭고 가벼운 형태는 우리가 손쉽게 뒤적이는 만화책에서 만나는 흔한 그림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가치는 오로지 팝아트라는 개념, 대중미술을 순수미술화 했다는데 있는 것 같다.

특이한 사실은 이 작품이 스캔들로 리히텐슈타인을 우리나라에 알리게 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2007년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을 때였다. 삼성그룹의 미술품 구매를 담당했던 갤러리가 2002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이 작품을 86억 5000만원에 낙찰 받은 사실이 밝혀져 그 놀라운 가격으로 온 국민이 놀라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히 리히텐슈타인이라는 화가에게로 옮겨갔고, 그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팝아티스트가 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가장 대중적이고 저렴해야 할 팝아트의 본질은 어디로 사라져 그의 작품이 그렇게 고가에 팔려나가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07_‘도라 마르의 초상화’로 리히텐슈타인 위상 세계에 떨쳐

익사하는 여자 1963년

1963년작 ‘꽃모자를 쓴 여인’은 피카소의 작품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피카소는 언제나 내게 큰 영향을 미쳤다. 만화 그림을 그리면서 피카소에게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피카소의 그림을 내 스타일로 그리는 작업도 사실은 나에게 남은 그의 영향을 지우기 위한 작업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그가 평소에 품은 피카소를 향한 경외와 존경을 담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원본은 ‘도라 마르의 초상화’로 피카소는 그녀의 본질을 입체적으로 분해한 후 재조립하는 형식으로 표현하였다. 피카소의 연인이었던 도라 마르는 스페인 출신의 지적이고 개성적인 사진작가로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그리는데 많은 역할을 한 여인이었다. 피카소는 그녀의 강하고 정열적인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녹색과 빨강, 파랑 등 강렬한 원색을 사용하였고, 얼굴의 왜곡과 중첩된 시각은 도라 마르의 복잡한 내면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다.

리히텐슈타인의 도라 마르는 입체주의적인 형태를 지녔지만 좀더 평면적인 형태로 단순화 시켰다.  배경의 회색과 흰색의 기하학적 분할 위에서 순수한 노랑이나 빨강이 주는 강렬함이 굵은 윤곽선과 함께 재해석 되어 팝아트의 정석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2013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588억 8000만원이라는 놀라운 가격에 팔려나가 리히텐슈타인의 위상을 세계에 떨쳤다.

 

08_모든 복잡한 감정 분출 팝아트화 시켜

키스 1961년

리히텐슈타인은 종종 대가들의 작품을 오마주해 그리곤 했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재해석해 도시의 배경에 망점을 이용해 그린 후 말풍선을 달아 놓기도 하고, 고흐의 ‘아를의 침실’을 인쇄물 프린트와 같은 무늬가 가득한 방에 단순한 형태로 현대적인 침대와 의자들을 그려 놓기도 했다. 또 몬드리안의 추상화에 망점을 가득 찍어놓은 작품 등 이런 스타일의 많은 작품들이 있다.

만화작업 이후 대가들의 재해석 작업 외에도 그는 여러 가지 주제로 많은 연작 작업을 하였다. 추상표현주의를 상징하는 자유분방한 붓의 궤적을 그는 굵은 선으로 일일이 그려서 붓터치의 질감을 표현하였다. ‘빅 페인팅 No6’ 그리고 ‘붓질’ 등 그의 작품에서 추상표현주의 화가가 했음직한 화가의 내면의 격정이나 고뇌와 열정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이러한 모든 복잡한 감정의 분출을 팝아트화 시켰다. 1950년대를 풍미한 추상표현주의를 넘어선 팝아트의 위상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현대미술에서 팝아트가 차지한 현주소를 알 수 있는 연작들이다.

 

09_만년에는 중국 풍경을 그린 동양화에 심취

행복한 눈물 1964년

흥미로운 연작으로 황소 시리즈가 있다. 리히텐슈타인은 1973년 ‘황소1’에서 검정 줄무늬로 이루어진 사실적인 형태의 황소를 그렸는데, 이것은 점점 진화해 황소 2, 3, 4로 그림이 반복될수록 황소는 점점 기하학적인 형태로 변화해서 ‘황소6’에서는 마치 몬드리안의 추상화를 보는 것 같다. 서양미술사에서 사실화에서 추상화로 넘어가는 과정을 황소라는 작품을 통해 나타내려 한 것처럼 느껴진다.

한동안 리히텐슈타인이 가장 집착한 주제는 반사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그는 1970년에서 1972년 사이 거울에서 반사되는 빛의 궤적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그려나가며 작품 하나하나에서 이 ‘리플렉션’이라는 주제에 얼마나 몰두했는지 보여준다. 1989년작  ‘모발의 반사를 위한 콜라쥬’에서 그는 단순히 중첩되는 거울의 반사작용을 그린 작품들과 달리 굵은 망점으로 가득 찬 거울의 이미지와 그의 만화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여인의 노란 머리칼을 배치해 거울 시리즈의 완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만년에 이르러서는 중국의 풍경을 그린 동양화에 심취해 여러 작품들을 남겼는데, 1996년작 ‘안개 속의 풍경’은 동양화 특유의 심플한 선과 여백의 미를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망점과 결합해 독특한 풍경화를 창조하였다.

 

10_가장 뉴욕적이며 뉴욕 대표하는 화가

황소 6 1973년

리히텐슈타인은 1997년 뉴욕대 메디칼센터에서 폐렴 합병증으로73세의 나이에 사망할 때까지 계속해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발전시켜 나갔다. 만화에서 시작해 추상표현주의의 붓자국, 대가의 작품에 대한 재해석, 중국 산수화에 대한 연구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열정과 호기심으로 새로운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그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등 전 세계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우리를 만나고 있다. 그는 가장 뉴욕적이며 뉴욕을 대표하는 화가로 불리는 팝아트의 거장으로 많은 젊은 화가들이 그의 뒤를 이어 팝아트의 세계를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그는 말한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 어떤 의구심도 갖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비평에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남이 안 가본 길을 개척하며 논란과 비판에도 꿋꿋이 자신의 예술세계를 고집한 화가의 변이 마음에 와 닿는다.

 

 

* 다음은 사실주의에 새로운 지평을 연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세계와 만나보겠습니다.

 

 

미셸 유의 미술칼럼 (27) 상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환상적 원시회화 창조한 앙리 루소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미셸 유 (글벗세움문학회 회원·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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