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상징주의 미술의 거목 페르낭 크노프

아르누보 형성에 결정적 역할… 유성수채화 기법 도입

벨기에 상징주의 미술의 거목이자 아르누보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페르낭 크노프 (Fernand Khnopff 1858년-1921년)는 유성수채화라는 특이한 장르의 표현기법과 붉은 색연필, 파스텔을 이용해 많은 이들의 상상력과 내면 깊은 곳의 감성을 끌어올리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좁고도 긴 화면에 몽환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신비로운 작품들을 창조하였다.

 

01_회화, 조각, 디자인, 사진 등 여러 분야서 두각

기억들 1889년, 파스텔화

‘인간이 가진 것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라는 말로 자신의 폐쇄성과 고독을 표현한 그는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성찰하고 끝없는 상상력과 미묘한 디테일로 그 안의 보석을 끄집어낸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폐쇄적이고 비밀스러운, 내밀한 욕망의 고요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꿈처럼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들며 우리를 의문과 부호가 가득한 신비로운 물음표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의 예술성은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디자인, 사진 등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그의 작품은 수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에드바르 뭉크와 구스타프 크림트의 예술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02_상징주의 화가 자비에르 멜러리 영향 받아 화가의 길로

내 마음의 문을 잠그다 1891년, 유화

페르낭 크노프는 1858년 벨기에의 그렘베르겐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판사, 변호사들을 배출한 명망 있는 법조계 집안의 인물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중세 풍의 유서 깊은 도시 브뤼헤에서 7년간 검사로 재직해 크노프는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이때의 기억은 후에 그의 작품 곳곳에서 보여진다.

유복하고 지적인 환경에서 자라난 그는 자연스레 법대에서 법학을 전공하려고 했지만, 상징주의 화가 자비에르 멜러리에게 영향을 받아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 상징주의 화가가 추구하는 ‘미술은 사물의 정신에 숨겨진 의미를 찾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는 명제가 그의 진실을 향한 지적이고도 근원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1876년 브뤼셀의 왕립예술아카데미에 입학해 그림을 배우고, 1877년과 1878년사이 예술의 중심지 파리를 오가며 예술적 분위기와 수많은 화가들의 예술세계를 접했다. 상징주의 문학의 시초인 보들레르와 플로베르의 문학에 심취했던 그는, 특히 1878년 열린 파리 세계박람회에서 만난 귀스타브 모로와 라파엘 전파의 신비롭고 몽환적인 작품세계에 매료되었다.

 

03_상징주의 시인, 상징주의 화가들과 교류

마르게리트 크노프의 초상 1887년, 유화

크노프는 파리와 벨기에를 오가며 상징주의 시인과 상징주의 화가들과 교류하였고, 1883년에는 벨기에에서 20명의 예술가와 아방가르드 미술을 지향하는 ‘20인 그룹’을 창립하였다.

19세기 말 산업의 발달로 인한 물질주의와 과학과 이성의 맹신에 반기를 든 상징주의는 인간 내면의 세계, 상상력의 세계로 꿈과 미지의 영역을 넘나들며 죽음이나 환상 등 세상에 존재하나 어떤 특정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추상적인 존재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려는 움직임이다. 물질적, 사실적 표현이 아닌, ‘분석에 의해 포착할 수 없는 주관적 정서’를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1880년대 후반 보들레르, 말라르메, 랭보등 시인들이 중심이 되어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술계에서도 꽃피워 인간 내면의 정신세계, 꿈, 상상을 표현하기 위해 기호와 상징을 이용했다. 눈에 보이는 사물의 묘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정신세계를 화폭에 담으려는 그들의 의지는 은유와 상징을 통해 상징주의 미술을 꽃피웠다.

1889년작 ‘천사’는 사진 위에 목탄으로 그림을 그린 매우 특이한 방식의 그림으로 크노프의 상징주의적 예술을 잘 대변하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에는 갑옷을 입은 수호천사가 여인의 얼굴과 짐승의 몸을 가진 스핑크스의 머리를 애무하고 있다. 천사는 눈을 감은 채 근엄한 표정으로 서있고, 스핑크스는 그의 애무를 즐기는 듯 눈을 감고 미소를 띄고 있다. 여기에서 스핑크스는 벨기에의 상징주의 운동을 의미하고 수호천사는 그 시대의 이단아인 상징주의를 외부의 비난에서 지켜주던 시인 에밀 베르하렌이라고 한다.

 

04_여동생 마르게리트를 한 사람의 여인으로서도 사랑해

버려진 도시 1904년, 파스텔화

페르낭에게 있어 누이동생인 마르게리트 크노프의 존재는 정말 특별했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여동생인 마르게리트를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이자, 한 사람의 여인으로서도 사랑했다. 피를 나눈 동생을 이성적 감정으로 바라봤던 그는 필사적으로 그 사실을 숨겨야 했고, 내면 속으로 꾹꾹 눌러 담은 감정과 인내의 고통은 오로지 그림 속에서만 분출될 수 있었다.

크노프의 작품에 등장하는 마르게리트는 지적이면서도 우아하고 중성적인 이미지를 가진 여인으로 표현된다. 그녀의 신비로운 눈동자, 곧게 뻗은 코, 사각의 견고한 턱 선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미인상과는 조금 달라 이 여인만의 독특한 개성을 느낄 수 있다.

1887년 ‘마르게리트 크노프의 초상화’에서 그녀는 온 몸을 꽁꽁 싸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단추로 꼭 채워 목까지 올라온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녀는 아무 감정 없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눈 앞의 화가인 오빠의 시선에서 벗어나 얼굴을 돌리고, 미소 한 점 없이 허공의 어느 한곳을 응시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속세의 행복과는 거리가 있어 오빠의 끈끈한 애정을 벗어나고픈 마음이 있는 것도 같다.

 

05_시간과 운동성 배제, 고요하고도 불안한 초현실적 분위기를

예술, 혹은 애무 1896년, 유화

1889년작 ‘기억들’은 7명의 여인들이 잔디에서 테니스를 치고 있는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화가가 인상주의 화가 조르주 쉴라의 작품 ‘그랑 자테 섬의 일요일 오후’에서 영감을 받아 그렸다고 한다. 한 사람을 여러 각도에서 찍은 사진들을 한 화면에 배치해 그린 특이한 작품인데, 여인들은 제각각 다른 포즈로 좌우사방에 흩어져 있어 모두 다른 사람처럼 보이지만, 이들 모두는 마르게리트 단 한 사람을 모델로 하여 그려진 것이다. 여기에서 화가의 누이는 단순한 모델이 아니라 크노프가 생각하는 여인의 이상화된 상징과도 같은 것 같다.

정교하게 묘사된 여인들은 자연스러운 자세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보인다. 발은 땅에서 떨어져 공중을 부유하는 것 같고, 각자는 서로에게 무관심한 채 스스로의 내면에 갇혀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사람 한 사람의 포즈를 떨어뜨려 보았을 때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사실성을 가지고 그려졌지만, 이들이 모여 이루는 분위기는 어딘가 우리의 오래된 기억 속에 드문드문 박제된 단편을 보는 것같이 현실성이 없다.

정확한 데생으로 정교하게 묘사된 인물들과 흐릿한 색채로만 표현된 배경의 괴리감이 더욱 이 그림에서 시간과 운동성을 배제하여, 고요하고도 불안한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06_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금기의 상징은 아닐까

은빛 티아라 1911년, 파스텔화

‘침묵’(1890년)은 파스텔화의 정석처럼 부드러운 색조로 은은하게 표현된 작품이다. 잠옷을 입은 한 여인이 한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쉬’하며 조용히 하라는 싸인을 보내고 있다. 작품 속의 여인은 마르게리트이고, 잠옷을 입은 그녀를 사진 찍어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마치 서로의 비밀을 간직한 채 우리에게 아무 것도 말하지 말고 잠의 세계로 떠나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 같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잠옷 차림의 그녀가 장갑을 끼고 있다는 점이다. 외출시에나 낄법한 장갑을 낀 손으로 침묵을 요구하는 행동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화가는 이 작품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아서 그 진의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마르게리트는 ‘마르게리트 크노프의 초상’, ‘향’, ‘기억들’ 등 대부분의 작품에서 장갑을 끼고 있다. 혹시 크토프는 자신의 누이에 대한 애정을 장갑이란 매개로 한계를 그어놓은 것은 아닐지…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금기의 상징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07_잠의 신 히프노스는 큰 의미… 작품 곳곳에 모습을

죽은 도시 1889년, 파스텔화

영국의 여류시인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시 ‘누가 나를 구원할 것인가’의 한 구절을 모티브로 한 작품 ‘내 마음의 문을 잠그다’(1891년)에서는 마르게리트의 얼굴을 한 여인이 테이블에 두팔로 턱을 고이고 앉아있다. 여인의 표정에서 자신의 내면 깊숙이 침잠해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절대적인 고독과 허무가 보여진다. 그리고 팔 밑에 깔린 짙푸른 테이블보는 마치 일렁이는 밤바다를 보는 듯해, 내면의 바다에서 정처 없이 표류하는 그녀의 마음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녀의 앞에는 누렇게 말라 비틀어진 세 그루의 백합이 희망과 생명이 사라진 죽음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녀의 뒤에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부호와도 같이 알 수 없는 비율로 나뉘어진 벽면과 선반에 올려진 잠의 신 히프노스의 두상이 놓여있다. 그것은 마치 이제 그만 고독과 허무의 늪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잠과 꿈의 세계에서 안식을 취하라고 유혹하는 것만 같다.

크노프에게 있어 잠의 신 히프노스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어 그의 작품 곳곳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푸른 날개’와 ‘흰색, 검정, 금색’에서 히프노스는 여사제의 모습을 한 마르게리트를 잠으로 인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현실에 존재하는 침묵과 고독 속에서 그의 날개를 타고 꿈의 세계로 날아가 한없는 상상력을 펼치게 하는 존재이다.

 

08_내면과 무의식의 그림자 엮어 또 다른 자신만의 세계 창조

천사 1889년, 목탄화

1896년 그려진 ‘예술, 혹은 애무’는 페르낭 크노프 하면 떠오르는 대표작으로, 그리스 신화 속 오이디프스와 스핑크스의 만남을 소재로 하고 있다. 많은 화가가 이 비극적이고도 신비로운 신화를 화폭에 옮겼지만, 크노프처럼 표현한 이는 없어 상징주의 회화의 교과서적인 작품으로 사료된다. 이 작품에서 스핑크스는 여인의 얼굴과 표범의 몸을 가지고 있는 신비로운 괴수의 모습을 하고 있고, 오이디프스는 한 손에 날개 달린 지팡이를 짚고 웃통을 벗은 목동과도 같은 모습이다.

이는 크노프와 그의 누이와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오이디프스에 크노프 자신을, 스핑크스에 마르게리트를 대비해 그렸다. 여기에서 인간과 스핑크스는 성을 초월한 것처럼 보인다. 남성의 얼굴은 여인의 그것처럼 선이 곱고, 스핑크스의 얼굴은 각진 턱에서 강인한 남성성이 보인다. 그들이 남녀의 관계라기 보다는 성을 초월한 관계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을까?

그의 내면을 장악하고 있는 그녀에 대한 경외와 두려움을 나타낸 것인지 오이디프스의 얼굴은 약간 경직돼 보이고, 스핑크스는 눈을 지긋이 감은 채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를 띄고 있다. 얼굴을 맞대고 다정스레 애무를 하고 있는 스핑크스의 모습은 그가 누이에게 바라는 은밀한 바램인지도 모르겠다. 신화를 소재로 했음에도, 그 안에 자신의 내면과 무의식의 그림자를 엮어 또 다른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한 그의 예술혼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는 1892년 파리에서 ‘장미와 십자가’ 살롱전에 전시를 하고, 1895년부터 영국의 예술잡지 ‘더 스튜디오’와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1898년 빈 분리파의 첫 전시회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09_그리움과 허무 공존하는 크노프 감성 잘 드러난 ‘버려진 도시’

푸른 날개 1894년, 유화

1904년작 ‘버려진 도시’는 그가 어릴 때 자란 브뤼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그는 이 풍경화를 그리기 위해 다시 브뤼헤를 찾는 대신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도시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 적갈색의 농담으로 처리된 화면은 거의 단색에 가깝다. 잔뜩 구름을 머금은 하늘은 제 색을 잃고 물이 많이 섞인 수채화처럼 흐릿한 적갈색이 번져있다. 그 아래 서있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의 창은 모두 닫혀있고, 오가는 사람 하나 없이 적막한 광장에는 어떠한 생명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멀리서부터 밀려오는 조수는 광장을 적시고, 건물은 조만간 그 조용한 침식에 함몰될 것 같이 보인다.

이것은 오래 전 아름답고 풍요로운 문화의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쇠락해 스러져가는 도시의 모습이고, 크노프의 어린 시절의 잔재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때 그곳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세월의 파도를 묵묵히 감내하며 서있는 기억 속의 존재이자 세상의 끝이다. 이 단색조의 풍경은 우리에게 인생과 세월에 대한 비애, 고요한 허무를 느끼게 한다.

우리는 이러한 정서를 조르주 로덴바크의 책 <죽은 도시>의 표지 그림(1889년)에서도 느낄 수 있다. 뒷쪽으론 아스라이 먼 하늘과 숲이 흐릿하게 떠있고 죽은 도시 브뤼헤의 고성이 회색 빛으로 음울하게 서있는데, 앞에는 금발의 여인이 비스듬히 턱을 고이고 한 손으로 제단 위의 왕관을 만지며 그리운 표정을 하고 있다. 그리움과 허무가 공존하는 크노프의 감성이 잘 드러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10_디자인과 설계에 자신의 상징주의 미학 담으려 노력

향 1898년, 유화

1911년작 ‘은빛 티아라’는 그가 평생에 걸쳐 사랑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작품 같다. 자신의 기억 속에 저장된 수많은 마르게리트를 그린 그에게 누이동생은 제2의 분신과도 같아 때로는 여성적인 매력이 가득한 여인으로 때로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괴물의 모습으로 다양한 옷을 입고 나타난다.

이는 자신 속에 내재한 무의식 속의 본질일 수도 있다. 자신과 누이를 혼연일체로 여긴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만년에 이르러 그가 그린 마르게리트는 은빛 휘광으로 둘러싸인 아름답고 고결한 성녀와 같은 모습으로 표현되어 사랑의 완성을 보여주고 있다.

1900년부터 크노프는 브뤼셀에 머물며 디자인과 설계에 자신의 상징주의 미학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1902년 그는 브뤼셀에 ‘자아의 성전’이라 이름 진 자신의 집을 완성하여 본인의 그림과 조각들을 전시하였는데, 이젤과 작품들이 하나하나 의도를 가지고 배치된 이 공간은 그의 또 다른 걸작으로 우아하고 신비에 찬 그만의 성이었다. 이 곳에서 그는 ‘버려진 도시’ 등 많은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그러나 고립된 성에서 만년의 고독을 즐기려는 그의 시도는 밀려드는 화가들과 제자들, 교류를 나누었던 친구들에 의해 쉽게 깨졌다. 그는 벨기에 최고의 화가라는 찬사와 함께 기사 작위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은둔을 추구했던 그의 목적과는 다르게 바쁜 삶을 살며 자신의 성에서 1921년 성공한 화가로 일생을 마쳤다.

 

 

* 다음은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마크 로스코와 만나겠습니다.

 

 

미셸 유의 미술칼럼 (27) 상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환상적 원시회화 창조한 앙리 루소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미셸 유 (글벗세움문학회 회원·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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