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 화풍 가미한 사실주의 화가 존 싱어 사전트
디테일한 색감 배치, 풍부한 미장센으로 신비로운 분위기 연출
유럽의 화가들에게 익숙한 우리에게 드물게도 친숙하게 다가오는 미국의 화가 존 싱어 사전트 (John Singer Sargent, 1856년-1925년)는 파리의 인상파 화가들과는 결이 조금 다른, 인상주의 화풍을 가미한 사실주의 화가이다. 그는 인물과 배경에 따른 디테일한 색감의 배치, 풍부한 미장센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해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과 색채로 아름다운 작품들을 창조하였다.
01_미국의 위대한 화가 3인중 1인
사전트는 19세기말 상류사회 인물들의 초상화로 유명하지만,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그곳의 다양한 풍경과 풍속, 인물들을 화폭에 담았다. 특히 풍속화에서 보여지는 현지인들의 초상은 너무도 생생해 마치 우리가 거기에서 함께 사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는 900여점의 유화와 2000점이 넘는 수채화, 셀 수 없는 스케치와 목탄화를 그리며 오로지 미술에만 푹 빠져 살았던 화가이다. 미국의 위대한 화가 3인중에 들어가는 사전트는 파리 화단보다는 영국과 미국에서 더 큰 호응을 받은 화가로 근대 초상화의 최고봉이라 불리고 있다.
02_유럽에서 태어났음에도 미국 화가로 불려
사전트는 1856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미국의 의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 유럽으로 이주해, 사전트는 유럽에서 태어났음에도 미국 화가로 불린다.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부모님과 함께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곳곳을 여행하며 아름다운 풍광을 눈에 담을 수 있었고, 이때의 경험은 그에게 화가의 꿈을 꾸게 하였다.
1874년 사전트가 18살이 되었을 때 그의 집안은 프랑스 파리로 이주를 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당시 유명한 초상화가였던 카를로스 뒤랑의 아틀리에에 들어가고, 에콜 드 보자르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했다. 뒤랑은 마네와 모네의 친구였고, 젊은 신진 세력인 그들과 비슷한 모더니스트의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에 관심이 있어 제자들에게 밑그림 없이 직접 캔바스에 물감으로 스케치 해나가며 그리는 방법을 가르쳤다. 1877년 뒤랑은 룩셈부르크 궁전의 천장화를 그리게 되었는데, 사전트도 천장화의 한 부분에 스승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으로 참여를 하였다.
03_화가로서의 삶, 어려움 없이 순조로운 길 걸어
사전트의 화가로서의 삶은 어려움 없이 순조로운 길을 걸은 것 같다. 그는 1877년 살롱전에서, 전통에 함몰되지 않고 그 틀 안에서 조용히 현대적인 방법으로 변화를 꾀하는 화법으로 외국 화가로는 드물게 좋은 평을 받아내었다.
그는 브르타뉴, 카프리, 스페인, 북아프리카, 베니스 등 여러 곳을 여행하며 현지에서 받은 영감을 캔바스에 표현하였는데, 이러한 풍경화와 풍속화들은 사전트의 독특한 화법과 맛물려 생명력 충만한 아름다운 작품들로 탄생했다.
1878년작 ‘캉깔르의 굴채집가’는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어민들의 생활과 정서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뭉게구름이 떠있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여인과 아이들이 굴을 따러 갯벌을 걷는다. 힘있는 남자들은 고기를 잡으러 떠나고, 여인과 아이들만 남은 이곳에서 끼니를 위해 굴을 채집하는 여인들의 표정은 삶에 찌들어 무겁기만 하다.
아름다운 주위의 풍경과 대조되는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처음으로 대중에게 자신의 풍경화를 선보인 이 작품으로 살롱전에서 입선해, 사전트는 22세의 젊은 무명화가의 이름을 알렸다.
1880년 두 번째 살롱전에서 호평을 받은 ‘용연향 연기’는 북아프리카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국적인 장식을 목에 건채 흰 옷을 입고 흰 천을 둘러쓴 무녀와도 같은 여인이 앞에 놓여진 향로에서 향유고래에서 짜낸 용연향을 태워 그 연기를 마시고 있다.
마치 신에게 드리는 제사를 집전하는 듯 엄숙한 표정의 여인은 곧 접신이라도 해 피안의 세계를 엿볼 것만 같다. 거대한 기둥과 벽은 온통 흰색으로 칠해져 있고 바닥에 깔린 양탄자는 북아프리카의 정취가 묻어나는 문양으로 짜여 있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흰색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흰색의 농담으로 이 모든 감성을 표현한 화가의 역량이 놀랍다.
04_벨라스케스에 심취, 벨라스케스 작품 복사하며 연구
1879년 사전트는 살롱전에 스승에 대한 존경을 담은 카를로스 뒤랑의 초상화를 출품해서 ‘선외 가작상’을 수상하고 한 사람의 독립적인 화가가 되었음을 선언하였다. 사전트는 스승과 마찬가지로 벨라스케스에 심취해 스페인의 프라도로 떠나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복사하며 연구하였다.
우리는 그러한 노력의 흔적을 그의 작품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스페인으로 여행을 했던 사전트는 스페인의 열정적인 춤과 음악에 매료되어 아름다운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그 중 1882년작 ‘엘 할레오’와 ‘스페인 댄스’는 스페인의 정열적인 분위기를 담은 멋진 작품들이다. ‘엘 할레오’는 가로 3.5미터의 대작으로 무대에서 악단의 연주에 맞추어 플라맹고 춤을 추는 집시 여인을 그린 작품이다.
그리고 이 그림을 그리기 전 작품의 중앙에서 춤을 추는 집시를 따로 그린 작품이 ‘스페인 댄스’ (1880년-1881년)인데, 한 팔을 허리에 얹은 채 다른 한 팔을 쭉 뻗어 캐스터넷으로 박자를 맞추며 스텝을 밟는 댄서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잘 표현되어 있어, 스페인의 정열 속에 흠뻑 젖게 한다.
05_초상화라기보다는 스토리 가지고 있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1882년작 ‘에드워드 달리 보이트의 딸들’은 당시의 초상화에서 볼 수 없었던 현대적인 감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파리를 방문한 미국인 화가이자 친구였던 에드워드 보이트의 딸들을 그린 이 작품은 초상화라기보다는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4명의 소녀들은 각각 다른 개성을 가지고 표현되었는데, 맨 앞에 앉아있는 4살자리 막내는 환한 배경에서 인형을 가지고 놀며 순수한 아기의 본성을 드러낸다. 호기심어린 표정의 아이는 화가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무언가를 묻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리고 왼쪽에 서있는 8살짜리 아이는 강한 빛을 받으며 뒷짐을 지고 언제라도 갑갑한 이곳을 벗어나 달려나갈 준비를 하는 것 같다.
뒤쪽 어두운 방안에는 두 소녀가 서있는데, 커다란 꽃병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며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아이는 14살의 첫째 아이이다. 둘째인 12살의 소녀는 자신이 그림의 모델이 된 것을 인지했는지 잔뜩 얼어서 경직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제각기 다른 포즈로 서서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앞으로 펼쳐질 그들의 인생을 예견한 듯 모두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다.
거대한 화병과 상대적으로 작게 보이는 아이들의 대조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기묘한 위화감을 조성하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정교하고 탄탄한 데생으로 모델의 형태를 완벽하게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세계까지 보여주는 걸작인 것 같다.
06_‘마담 X의 초상’은 그의 인생 바꿔놓을 정도로 큰 스캔들
파리에서의 삶을 누리던 사전트가 발표한 ‘마담 X의 초상’은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을 정도로 큰 스캔들을 일으켰다. 1884년 살롱전에 발표한 이 작품의 주인공은 부유한 은행가의 아내로 사교계를 주름잡던 유명인사였다.
블랙과 화이트의 콘트라스트를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사전트는 마담 고트로라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켜 보여준다. 당시 여성들에게 유행했던 푸를 정도로 하얀 살결, 풍만한 가슴과 잘룩한 허리의 곡선은 여성스러운 자태를 한껏 뽐낸다.
작품의 중앙에서 고개를 돌려 옆을 보며 고고하게 턱을 올리고 서있는 여인은 오른손으로 드레스를 잡고 왼손으론 테이블을 짚고 있다. 부드러운 갈색의 배경과 발치의 검은 그림자는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며 피어 오르는 한 송이 꽃과 같은 그녀를 자연스럽게 받쳐준다.
그러나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초상화는 호사가들의 질타를 받고 커다란 스캔들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 이유가 우스운 게 살롱전에 출품했던 원작에서 모델의 오른쪽 어깨 끈을 흘러내리게 그려 귀부인의 체통을 손상시키는 선정적인 표현이라는데 있었다. 아마도 젊은 미국인 화가에 대한 배타심과 그 시대의 초상화와는 다른 새로운 표현법으로 전통을 훼손했다는 거부감이 그들의 안목을 흐리게 하였던 것 같다.
결국 후에 사전트는 어깨 끈을 고쳐 그려야만 했는데, 고트로 부부는 주위의 시선 때문에 인수를 거부했다. 그러나 사전트는 자신의 작품에 애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의 스튜디오에 오랜 시간 걸어두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현재에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2미터가 넘는 크기로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우아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에 최고의 초상화라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07_헨리 제임스 작품에 흠뻑 빠져 글로서 그의 예술성 추앙
어쨌든 사전트는 이 일로 낙심을 하고 영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영국에서 만난 소설가 헨리 제임스는 그가 영국에서 자리를 잡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미 그의 작품들은 영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지만 사실 이 젊은 화가의 입지는 그리 크지 않았다.
제임스는 이 예술가의 작품에 흠뻑 빠져 글로서 그의 예술성을 추앙했을 뿐만 아니라 런던 사교계에 그를 소개해, 사전트는 많은 상류사회 인사들의 초상화를 그릴 수 있었고 그의 작품들은 영국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영국에서의 생활은 순조로워 그는 주문 받은 초상화를 그리는 것 외에도 영국의 곳곳을 다니며 전원생활을 화폭에 담았다.
1886년 그려진 ‘카네이션, 릴리, 릴리, 로즈’는 백합이 만발한 정원에서 두 소녀가 풍등에 불을 켜 꽃밭에 거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여름날 해질 녁 검푸른 하늘색이 노을의 잔해를 머금고 신비로운 보라빛으로 변하는 찰나의 시간을 화면에 캡처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노랑색의 풍등과 어우러져 빚어내는 오묘한 색은 하얀 백합과 분홍색 장미, 흰옷을 입은 아이들의 모습과 어우러져 한편의 아름다운 서정시처럼 다가온다.
화가는 이 작품의 분위기를 담기 위해 1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야 했다. 해질녁의 하늘이 띄는 오묘한 보라빛은 10분이 지나지 않아 사라지기에 그는 매일매일 그 시간에 맞춰 캔바스를 펼쳐야 했고, 꽃이 시들면 화분에 꽃을 내어놓고 그렸다고 한다. 여름이 지나자 그는 다음해 여름이 올 때까지 기다려 기어코 이 작품을 완성하였다.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이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이 작품은 1887년 로열 아카데미전에서 많은 찬사를 받고, 영국 로열 아카데미는 전시가 끝나자마자 이 작품을 구입했다고 한다.
08_세인트 보톨프 클럽서 첫 개인전, 큰 성공
사전트는 1888년 세인트 보톨프 클럽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 수많은 명사들의 초상화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1890년에는 미국 보스턴 공립도서관의 벽화가로 임명되었다. 미국과 영국에서 초상화가로서의 명성은 점점 높아져 명실상부한 국제적인 엘리트의 초상화가로 불리었다.
1889년 파리에서 만난 스페인 댄서 카르멘시타는 사전트의 예술혼을 자극한 몇 안되는 여인이었다. 그녀의 열정적인 춤사위에 반한 사전트는 1890년 뉴욕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녀의 춤추는 모습을 휘몰아치는 붓터치로 신들린 둣 그려낸 ‘라 카르멘시타’와 화려한 무대의상을 입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포즈를 잡고 있는 같은 제목의 작품을 그렸는데, 그 중 짙은 황금색의 의상을 입은 ‘라 카르멘시타’는 그 환상적으로 아름답게 수놓아진 새틴드레스의 질감과 디테일을 정교하게 묘사해 우리를 놀라게 한다.
09_상류사회 초상화가로 최고의 명성 얻게 돼
아마도 1890년대는 그의 생애에서 가장 바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는 미국에서 9개월간 약 40점의 초상화를 그렸을 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많은 작품들을 발표해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1894년에는 로열 아카데미의 준회원으로 선출되고 3년 후에는 당당히 정회원으로 올라섰다.
1897년 그려진 ‘칼 메이어 부인과 그녀의 자녀들’은 명문 로스차일드 가문으로 다이아몬드 회사의 오너인 칼 메이어의 부인 아델 메이어와 아들 딸을 그린, 전형적인 상류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세련되고 기품 있는 작품이다.
부인은 연한 핑크빛의 천과 흰색 레이스가 어우러진 화사한 드레스를 입고 꽃무늬 소파에 앉아 있다. 그녀는 한 팔을 뻗어 소파 뒤로 보이는 아들의 손을 잡고 있는데, 아이는 수줍은 듯 빼꼼이 얼굴을 내밀고 누나는 그런 동생을 뒤에서 안고 있다. 어머니와 자녀는 서로 잡은 손을 통해 그들의 사랑과 연결을 표현한다. 이 작품으로 사전트는 상류사회 초상화가로 최고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10_유럽과 미국 오가며 평생을 보헤미안처럼 떠돌았던 그는…
1904년작 ‘파라솔을 쓰고 있는 사람들’은 알프스 초원에서 파라솔로 눈부신 햇살을 가리고 잠든 사전트의 친구들을 그린 작품으로 빛과 아른거리는 색채의 묘사로 인상주의적 분위기를 풍기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처럼 한낮의 망중한을 잘 표현한 작품이 있을까? 굵직한 터치와 빛과 그림자의 대담한 대비로 화면에 생생한 생명력을 부여한 화가는 우리로 하여금 알프스산 숲 속에 함께 누워 지저귀는 새소리와 싱그러운 풀 냄새에 취하게 만든다.
60세가 되자 사전트는 미국에서 2년을 보내며 플로리다와 록키산맥의 풍경화를 그리고, 명사들의 초상화도 그렸는데, 그중에는 록펠러와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초상화도 있었다. 말년의 그는 수채화에 심취해 곳곳을 여행하며 수채화로 많은 풍경을 그리며 유유자적 살았다.
유럽과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평생을 보헤미안처럼 떠돌았던 그는 돈이나 시간, 가족 등 아무것에도 구애 받지 않고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며 자유롭고 풍족한 삶을 살았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사전트는 가까운 친구 몇과 누이들 가족 외에는 별다른 교류 없이 오로지 그림만을 그리고 산, 그림이 전부였던 화가였다.
사전트는 1925년 런던에서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보스턴, 런던, 뉴욕에서 추모전시회가 열려 그의 미술혼을 기렸다.
* 다음 번에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네델란드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와 만나겠습니다.
글 / 미셸 유 (글벗세움문학회 회원·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