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중요한 사조 ‘포비즘’ 만든 모리스 드 블라맹크
야수파 화가들 중 특히 격렬하고 열정적 화면 창조
모리스 드 블라맹크 (Maurice de Vlamink, 1876년-1958년)는 우리에게는 그리 친숙하지 않지만 마티스, 앙드레 드랭과 함께 포비즘이라는 현대미술의 중요한 사조를 만든 프랑스의 대표적인 야수파 화가이다. 그는 야수파 화가들 중에서도 특히 격렬하고 열정적인 화면을 창조한 화가로, 가장 포비즘의 기본정신에 충실했던 화가로 꼽히고 있다.
01_규칙이나 전통에 얽매이는 것 혐오하는 자유로운 영혼
자신의 작품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생명력을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블라맹크는 거친 선들로 이루어진 원색의 향연을 펼친다. 화면에 칠해진 강렬한 색들은 각각의 존재감을 외치며 자신을 드러내고, 그 안에서 퍼져나가는 생명력은 보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환희와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블라맹크는 규칙이나 전통에 얽매이는 것을 혐오하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본능이야말로 예술의 기초이다. 양식에 구애 받지 않고, 그림은 심장과 창자로 그리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의 강렬한 색채와 자유분방한 붓 터치는 생경하고도 날것의 생명력으로 우리를 매료시킨다.
02_어릴 때부터 예술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서 성장
블라맹크는 1876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부모는 프랑드르 출신의 음악가였다. 비록 부유하지는 않지만 어릴 때부터 예술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라난 블라맹크는 다재다능 하여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가정 형편상 그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며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는데, 바이올린 연주를 하거나 자전거 경주 선수로 뛰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군인, 엔지니어 등 그가 섭렵한 다채로운 직업들은 자아를 찾으려는 한 청년의 성장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
10대 후반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그는 정규적인 미술교육을 받은 바 없이 독학으로 데생을 공부하고, 여느 화가들처럼 루브르박물관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는 대신 당시 떠오르던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연구하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1894년 18살의 어린 나이로 수잔 벌리와 결혼한 블라맹크는 파리를 떠나 샤투로 이사해 자신의 가정을 이루었다. 낮에는 그림을 그렸지만 밤에는 바이올린 레슨을 하기도 하고, 술집에서 밴드와 연주하기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03_‘샤투 화파’ 결성해 화가로서의 여정 시작
블라맹크가 앙드레 드랭을 만난 것은, 그가 화가의 길을 본격적으로 가게 된 중요한 변환점이 되었다. 1900년 앙드레 드랭과 블라맹크는 의기 투합하여 센강 부근의 샤투 지역에 작업실을 얻고 ‘샤투 화파’를 결성해 화가로서의 여정을 시작했다.
1900년작 ‘파이프를 피우는 남자’는 격정적이고 개성 강한 그의 기질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거칠고도 두터운 질감의 색채들이 화면 전체를 뒤덮고 인물의 묘사 역시 최소한의 디테일로 표현했지만, 담배를 피우는 남자의 강렬한 인상과 퇴폐적인 분위기는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다. 그때까지 그려진 전통적인 초상화의 틀을 깨부수는 혁명적인 작품이 아닐 수 없다.
1901년 파리에서 열린 반 고흐의 회고전에서 본 고흐의 작품들은 블라맹크에게 커다란 영감을 불어 넣었다. 고흐의 휘몰아치는 붓 터치와 생생하게 빛나는 색채들은 마치 신세계를 발견한 것 같이 그를 매료시켰고, 그가 앞으로 만들어 나갈 포비즘 회화의 근본적인 원동력이 되었다.
1905년작 ‘마리 루와의 레스토랑’은 후기 인상파의 빛과 야수파의 색채를 함께 보여주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작품 상단에는 알록달록 예쁘게 칠해진 집들이 정겹게 보이고 황토색으로 칠해진 넓은 길과 왼쪽에 붉은 나무가 푸르고 노란 잎들을 매달고 있다. 색들은 오후의 태양빛 아래 아직 발화되지 못한 불씨를 그 안에 숨긴 듯 원색에서 살짝 비껴가고 있다. 강렬함보다는 조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품인 것 같다.
04_야수파, 입체주의 등장 전까지 유럽미술 주도
앙드레 드랭의 소개로 마티스와 만나 교류하게 된 블라맹크는 그의 덩어리진 원색의 색면과 형태의 단순화에 공감을 해 그들과 함께 야수파를 결성하게 되었다. 이 야수파란 명칭은 1905년 살롱 도톤느에 출품되었던 생경한 칼라로 범벅이 된 그들의 작품을 보고, 미술평론가 루이 보셀이 야수에 비유하며 생겨났다.
애초에 새로운 미술 스타일을 공격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었지만, 이후 이들의 스타일은 많은 이들의 호응을 받고 포비즘이라는 현대미술의 중요한 화파로 인정받게 되어 이후 피카소의 입체주의가 등장하기 전까지 유럽미술을 주도했다.
살롱 도톤느에 출품되었던 1905년작 ‘샤투의 집들’에서, 샤투의 평범한 시골풍경은 현란한 색채와 자유분방한 붓 터치로 인해 마치 다른 세상에 들어온 양 생생한 생명력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뒤로는 붉고 푸른 지붕과 하얀 벽으로 그려진 프랑스풍의 작은 집들이 보이고, 앞쪽 들판에는 좌우에 구불거리며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나무들이 서있다. 붉은색과 노랑, 녹색이 서로 엉키고 섞여 하모니를 이루는 들판의 색채가 아름답다.
05_선명함 위해 물감 캔바스에 짜고 소용돌이치는 거친 붓질로
1905년과 1906년 사이에 그려진 블라맹크의 작품들은 포비즘의 특성이 아름답게 피어난 걸작들이 많다. 이 시기에 그려진 ‘꽃-색의 심포니’는 찬란한 색의 하모니가 한 폭의 추상화를 보는 것 같다.
빨강, 노랑, 초록, 흰색이 함께 모여 빚어내는 색의 선율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음악에 맞춰 춤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꽃이나 잎이라는 분명한 형태가 없음에도 무엇보다 더 꽃의 본질에 가까운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이 후에 그려진 세잔 풍의 정물과는 그 결이 달라 가장 현대적인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센 강 서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 샤투에는 이 마을을 끼고 흐르는 센 강 중앙에 있는 길쭉한 형태의 샤투 섬이 있는데, 1906년작 ‘샤투의 센 강’은 이 샤투 섬에서 본 샤투 마을과 센 강을 그린 작품이다.
왼쪽에는 섬 가장자리에 서있는 두 그루의 나무 기둥이 보이고,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센 강 위로 바지선과 돛단배들이 떠있다. 저 멀리 보이는 샤투 마을에는 빨강 지붕의 하얀 집들이 정겨운 시골 풍경을 보여준다. 센 강과 하늘은 거의 같은 색으로 칠해져 있다. 진청색과 연녹색, 흰색이 어우러져 하늘과 구름, 선박의 그림자와 물결의 흐름을 표현했다.
그는 색상이 가지는 최대치의 선명함을 끌어내기 위해 튜브에서 직접 물감을 캔바스에 짜고, 소용돌이치는 거친 붓질로 이들을 뭉개거나 빗질하는 기법을 사용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독자적인 그의 방식에도 불구하고 반 고흐의 후기 표현 스타일과도 흡사한 효과가 배어 나온다.
6 같은 해 그려진 ‘과수원’에서 불꽃처럼 넘실거리는 붉은 색의 향연은 놀라운 흡입력으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빨강과 노랑, 그린과 블루가 이루어내는 하모니는 너무도 강렬해, 과수원이라는 실체보다는 색깔 자체의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마치 한폭의 추상화를 보는 듯 하다.
또한 ‘빨간 나무가 있는 풍경’에서 보여지는 색들은 그 자체로 빛나고 있어, 풍경이 머금은 색채가 아니라 색채가 풍경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그 존재감이 대단하다. 블라맹크는 나무나 숲에 현실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지만 작가 자신이 느끼는 색으로 입혀 나간다. 그래서 그의 풍경에는 그만의 빨간 기둥을 가진 나무가 탄생하고, 노란색의 숲이 탄생하는 것이다. 거칠고 자유로운 검은 선들이 이루는 사물의 형체는 보다 간결하게 그 자체의 특성을 표현하고, 블라맹크 고유의 색과 결합해 신비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창조한다.
07_하나하나의 붓 터치가 모여 춤추는 듯한 분위기를
그는 수많은 풍경화를 그렸고, 누가 무어라 해도 그의 대표적인 예술작품들은 풍경화임에 틀림 없지만, 초상화나 정물화에서 드러나는 독특한 예술성 역시 좀더 다양하게 그의 예술적 재능과 개성을 보여주고 있다.
1906년작 ‘라 모르의 댄서’는 구불거리는 짧은 터치가 마치 춤추는 듯 여인을 휘감고 있는 특이한 작품이다. 중앙에 다리를 꼬고 시니컬한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댄서가 앉아있다.
금발과 붉은 입술, 하얀 피부의 고혹적인 여인은 검은 스타킹으로 무장을 하고 관중을 유혹하는 듯한 모습이다. 여인의 옷과 배경은 하나로 녹아 들어 여인은 마치 환상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작품의 묘미는 하나하나의 붓 터치가 모여 춤추는 듯한 분위기를 이루어낸 것일 것이다.
또한 한잔의 술을 앞에 놓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결코 아름답다 할 수 없는 여인의 모습을 그린 ‘더 바’ 역시 화가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여인의 붉은 입술에 물려진 구부러진 담배와 앞에 놓인 술잔이 취한 여인의 분위기를 잘 드러낸다. 희화적으로 그려진 여인의 모습은 마치 캐리캐처처럼 순간의 분위기를 잘 잡아내고 있다.
08_아프리카 조각에 매료돼 입체감 표현에 주력하기도
1907년에서 1908년 사이 그려진 ‘부지발 갱쟁 부두’는 이전 작품들과 달리 푸른색이 주를 이루는 작품으로, 그의 뛰어난 색채감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이 그림에서 강물과 나무와 하늘은 배경의 산봉우리의 녹색만 제외하고 온통 블루로 뒤덮여 있다. 산과 나무와 집들의 형태는 보다 단순화되어 상대적으로 짙고 옅은 블루로 이루어진 색채의 하모니가 더욱 돋보인다.
1907년 이후 블라맹크의 작품은 폴 세잔의 영향으로 점점 구성주의적 요소를 드러낸다. 또한 몽마르트의 피카소 작업장에서 함께 작업을 하기도 한 그는 그 당시 유럽 화가들의 호기심 가득한 관심을 받았던 아프리카 조각에 매료되어 입체감의 표현에 주력하기도 했다.
1908년작 ‘빨강 지붕’은 그의 이러한 변화를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사물의 모양들은 세잔의 그것과 같이 넓은 색면을 지닌 기하학적 형상을 하고 있다. 색채도 야수파 시절처럼 살아 날뛰는 것이 아니라 보다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다. 그러나 정면에 보이는 빨강 지붕과 하얀 벽들은 예전처럼 강한 원색으로 표현되어 자신의 기질을 나타내고 있다. .
1911년 런던으로 떠나 템즈강에서 영국의 풍경을 그리던 블라맹크는 1913년 앙드레 드랭과 다시 만나 마르세유와 마르티그에서 함께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평화도 잠시,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군인이 되어 파리에 주둔하게 되었는데, 이때 글쓰기에 심취하여 많은 시들을 썼다. 전쟁이 끝나자 블라맹크는 파리 남서쪽의 작은 마을 루엘 라 가데리에르에 정착하였는데, 이 시기에 두 번째 아내 베르테 콩베와 결혼해 두 딸을 두었다.
09_1920년 이후 다시 표현주의의 품으로 돌아와…
세잔의 구성주의나 피카소의 입체주의가 가지는 예술에 대한 이성적인 접근은 그의 들끓는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는데 거리가 있었다. 1920년 이후 그는 다시 표현주의의 품으로 돌아와 자신의 기질에 맞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시켜 나갔다. 달라진 점은 여과없이 뱉어내던 젊은 날의 색채들이 좀더 채도와 명도가 낮게 변화했다는 점이다.
짙은 청색, 회색, 흰색 등 거의 무채색에 가까운 이 색들은 그 성질이 차분함에도 불구하고, 격정적인 블라맹크의 거친 붓질로 끊임없이 솟아나는 인간 내면의 숨겨진 욕망과 날것의 감정을 더욱 깊이 있게 느끼게 해준다.
그는 겨울날의 눈 덮인 적막한 마을을 즐겨 그렸는데 ‘눈길’, ‘눈 덮인 마을’, ‘눈 덮인 교회’에서 보여지는 분위기는 화면을 뒤덮는 흰색의 바탕 속에 절제된 무채색 계열의 색들이 모여 이루어진 풍경이 얼마나 고요함 속에 숨겨진 격정을 생생하게 표현했는지 보여준다.
1931년 그려진 ‘눈길’은 황량한 거리에 벌거벗은 가로수들이 잿빛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고 있고 지붕 위에 하얗게 눈을 이고 있는 집들이 보인다. 원근법으로 쭉 뻗은 눈 덮인 길 위에는 한 사람이 외롭게 저 먼 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거의 오래된 흑백 사진처럼 보이는 화면 속에 떠도는 적막과 외로움을 거칠고 두터운 터치로 완벽하게 표현해낸 작품이다.
10_“진부한 이론, 고전주의서 해방된 자연의 활달함 보여주고 싶다”
세잔느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블라맹크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프랑스식 표현주의 양식에 의한 풍경화, 정물들을 그렸다. 1925년부터 프랑스 전역을 여행하였지만 주로 그가 평생 사랑한 파리 근처 센 강의 모습들을 즐겨 그렸다.
그러나 그의 가슴 속에 살아 숨쉬는 격정은 만년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아 ‘해양’ 연작의 파도와 함께 춤추고 있다. 특히 1947년작 ‘브르타뉴 어선의 귀환’에서 우리는 그의 힘찬 표현력이 주는 강렬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파도가 몰아치는 검은 바다, 먹구름이 가득한 검푸른 하늘 위로 보이는 구불구불한 구름이 있는데, 캔바스에 얹어진 흰색을 나이프로 슬쩍슬쩍 밀은 듯한 터치로 표현했다.
화면 중앙을 가로지르는 붉은 선이 저 멀리 보이는 노을을 나타내고, 파도를 마주한 어선은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격렬하면서도 시원시원한 터치가 살아있는 이 작품에서, 보는 이는 마치 몰아치는 폭풍우 한가운데 있는 것 같은 착각까지 일으킬 것만 같다.
블라맹크는 1958년 82세의 나이로 뤼에르 라 가들리에르에서 별세했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방면에 재능을 보이고, 결국은 화가로 대성한 그의 진가는 진솔한 감정의 표현에 있었을 것이다. “나는 미풍양속에 혁신을 불러일으키고 싶다. 진부한 이론과 고전주의에서 해방된 자연의 활달함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 그의 바램은 이루어졌고, 그가 현대미술에 기여한 공로는 참으로 커서 아직까지도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 다음은 바로크 미술의 거장 페테르 파울 루벤스와 만나겠습니다.
글 / 미셸 유 (글벗세움문학회 회원·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