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다루지 않는 주제로 신비한 작품 남긴 원시회화의 아버지

원시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앙리 루소 (Henri Rousseau 1844-1910)는 울창한 원시림과 그 속에서 서식하는 동물들이나 사막에 누워있는 집시, 혹은 뱀을 부리는 사람 등 남들이 다루지 않는 주제로 신비하고도 아름다운 작품을 남긴 화가이다. 신비한 상징성과 이국적인 정서로 가득한 그의 작품은 원시림에 둘러싸인 원초적인 생명력과 현실 저 너머에 존재하는 상상 속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01_정규 미술교육 안 받고 화단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아

굶주린 사자가 영양을 덮치다, 1905년, 유화

소박하고도 거친 형태의 표현과 생생한 칼라의 조합은 여태껏 볼 수 없었던 기묘한 하모니를 이루어 앙리 루소의 독특한 세계관을 우리에게 각인시킨다. 나이브 아트 (naïve art: 소박파)의 대표화가인 그는 정규 미술교육도 받은 적 없고 화단의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이룬 화가이다.

아마도 그가 유명한 누군가의 사사를 받거나 아카데미에서 근래 유행하는 미술사조를 공부할 기회가 없었기에 아무에게도 영향 받지 않고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마흔이 다 된 나이에 미술을 시작하여 그림에 대한 넘치는 열정 하나만으로 49세에 20여년 동안 몸 담았던 직장을 뛰쳐나와 전업화가가 된 앙리 루소. 새로운 사조가 난무하던 19세기말 벨 에포크 시대에도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국외자로 지내왔지만 형태의 세부적인 묘사나 입체감, 원근법을 스스로의 잣대로 해석한 표현방식을 추구했고 이러한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현대적인 감성은 시인 아폴리네르, 초현실주의의 거장 앙드레 부르통, 입체파의 대가 피카소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02_“자연 외의 다른 스승은 없다”

바위 위의 소년, 1895-1897년, 유화

프랑스 마옌의 라발에서 가난한 배관공의 자식으로 태어난 루소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앙제에 있는 법률사무소에서 일했는데 20세가 되자 육군에 지원하여 군악대에서 클라리넷 연주자로 근무했다. 군복무 5년 되는 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가장이 된 그는 군대에서 제대해 파리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며 파리세관에서 세관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는 1869년 25세 되던 해 10년 아래인 15세의 크레망스와 결혼했는데 그의 결혼생활은 평탄치 못했다. 7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그 중 5명이 죽었고 아내마저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등졌다.

루소는 어두운 주변환경 속에서 그의 숨통을 틔어줄 돌파구로 그림을 그렸다. 세관에 다니며 주말마다 틈을 내어 파리식물원으로 가서 이국적인 식물들을 묘사하고 파리동물원에서 정글에서나 볼 수 있는 사나운 맹수들과 온갖 동물들을 관찰하고 스케치했다.

“자연 외의 다른 스승은 없다”라고 한 그의 말처럼 그는 파리식물원에서 자신만의 ‘자연’을 발견한 것이다. 또한 식물원은 그의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다. 평생 프랑스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그에게 식물원은 정글이며 밀림이고 한없이 펼쳐진 또 다른 세상이었다.

“파리의 식물원의 온실에서 이국에서 온 낯선 식물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꿈의 세계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든다”는 루소는 이때의 경험을 살려 후에 원시회화를 이룩하게 되었다.

 

03_49세에 세관 퇴직하고 전업화가로

뱀을 부리는 주술사, 1907년, 유화

루소는 1880년경부터 그림을 그렸다. 1884년에는 루브르미술관에서 옛 화가들의 그림을 모사하였는데 미술관에서는 그의 뛰어난 솜씨를 인정해 모사증을 수여했고 그는 아마추어 화가에 불과한 자신이 인정받는 듯한 느낌에 매우 자랑스러워 했다.

1886년부터는 계속 앙데팡당 전시회 (독립화가 전시회)에 출품을 했으나 매번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계속되는 거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출품했는데 이는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어 앙데팡당 전에 대한 그의 애정을 엿볼 수 있다.

마침내 1893년 49세라는 나이로 세관을 퇴직해 전업화가가 된 루소는 연금만으로는 생활이 안돼 공예학교에서 소묘를 가르치거나 그의 화실에서 아이들에게 음악과 그림을 가르쳤다. 여전히 가난과 고독이 그를 따라 다녔지만 그가 원하는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 삶의 희망과 목표를 주었다.

세관을 퇴직한 이듬해인 1894년 앙데팡당 전에 출품한 ‘전쟁, 혹은 불화의 기마여행’으로 화단에 이름을 알리고 이 작품은 그의 최초의 대표작이 되었다. 이 작품은 중앙에 달리는 말을 탄 흰옷을 입은 여인이 검과 횃불을 들고 검게 타버린 나무와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 위로 달리고 있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푸른 하늘에 떠있는 붉은 구름과 부러진 나뭇가지가 전쟁의 불길함을 상징하고 대지 위에 켜켜이 쌓인 시체들과 까마귀가 전쟁의 참혹함을 드러내고 있다. 작품 전체에 전쟁으로 인한 죽음과 고통과 슬픔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04_부조리한 발란스는 기이한 비현실감 일으켜

숲 가에서, 1886년, 유화

1890년 그려진 ‘풍경과 나 자신의 초상화’를 보면 검정색 옷을 입고 수염을 기른 한 남자가 화면 중앙에 우뚝 서있다. 화가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빠레트와 붓을 들고 베레모를 쓴 루소의 모습은 자신이 화가라는 사실에 커다란 자부심을 느끼는 모습 같다.

맑은 눈으로 심각하게 앞을 응시하는 화가의 눈은 자신의 내면과 눈 앞의 현실을 동시에 수용하려는 듯 깊은 생각에 잠겨있고 팔레트에는 일찍 세상을 떠난 그의 첫 번째 아내의 이름 크레망스와 부인의 죽음 이후 10여년의 독신생활 후에 맞은 두 번째 부인 조세핀누의 이름이 쓰여 있다.

아마도 루소는 이 빠레트에 자신의 인생을 담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자신의 인생을 옆에서 지켜준 가족에 대한 고마움도 담겨 있으리라. 예의와 격식을 담아 검은 정장을 입고 꼿꼿이 서있는 모습에서 그가 미술 자체를 대하는데 얼마나 경외심을 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배경을 보면 파리 만국박람회의 깃발이 날리고 하늘에는 비행선이 떠있고 뒤로는 에펠탑과 건물에서 뿜어 나오는 연기가 산업사회의 발전과 문화를 나타내고 있다. 그가 현재 살고 있는 파리의 시대상과 자신의 모습을 적절히 조화시켜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시킨 작품으로 보인다.

보통 화가들이 자신의 초상화를 그릴 때 얼굴이나 상반신에 중점을 두고 화면을 채우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그의 자화상은 배경에 보이는 파리의 모습과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그러나 풍경 속의 인물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커다랗게 표현된 화가의 모습이 중앙에서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데 이 부조리한 발란스는 우리에게 기이한 비현실감을 일으킨다. 앙리 루소 만의 초현실적인 특이한 세계관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05_그가 그리는 동화 같은 세계는 꿈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상

이국적 풍경, 1908년, 유화

1897년 앙데팡당전에 출품한 ‘잠자는 집시’는 가로 2미터가 넘는 대작으로 ‘아무리 사나운 육식 동물이라도 지쳐 잠든 먹이를 덮치는 것은 망설인다’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루소는 1880년대 중반부터 원시적이고 초자연적인 풍경의 ‘아라비안 나이트’ 시리즈를 재창조하려고 시도했는데 이 작품도 그 중의 하나이다.

검푸른 하늘에 뜬 외로운 달이 사막 위에 잠든 집시여인과 그 여인을 바라보는 사자를 비추고 있다. 여인은 류트와 물병을 옆에 둔 채 지팡이를 손에 쥐고 비스듬히 누워 있다. 사자는 정면에서 바라본 옆모습이고 여인은 위에서 내려다 보는 시점으로 그려졌는데 한 작품 안에 존재하는 다중적 시점은 작품 전체에 기묘한 긴장감을 일으키고 이것이 현실의 한 장면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저 멀리 보이는 등성과 달, 전체적인 배경의 색감이 소리가 사라진 적막한 사막의 밤을 느끼게 해주고 사막에는 존재할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다. 공존할 수 없는 잠든 여인과 그를 응시하는 사자의 모습 등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기이한 세계가 펼쳐진다. 그가 그리는 환상과 동화 같은 세계는 우리의 꿈속 어딘가에 존재하는 아름답고도 신비한 또 다른 세상이다.

10년 후인 1907년에 그려진 ‘뱀을 그리는 주술사’ 역시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우리에게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달밤에 숲이 우거진 강변에서 여인이 피리로 뱀을 부르고 있는 그림 속, 왼쪽 하늘에는 창백한 달빛이 사위를 비추고 고요히 흐르는 강물과 강변을 거닐고 있는 훌라맹고가 보인다.

오른쪽에는 하늘을 가리는 울창한 숲과 이국적인 풀들로 가득 차 있고 중앙에 검은 실루엣으로 표현된 여인은 벌거벗은 채 목에 뱀을 두르고 피리를 불고 있다. 온통 검은색 위에서 노랗게 반짝이는 그녀의 눈빛이 섬찟하다. 적막한 밤공기에 오직 그녀의 피리소리만 울려 퍼지는 것 같이 시공을 초월한 환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06_피카소가 찾아낸 그의 재능은 전위적인 현대화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인형을 든 아이, 1896년, 유화

‘굶주린 사자가 영양을 덮치다’는 무성한 나뭇잎으로 가득 찬 원시림 속에서 사자가 영양을 물어 뜯고 있는 그림이다. 길이 3m가 넘는 압도적인 크기와 그 위에 끝없이 펼쳐진 숲은 온통 녹색의 향연이다. 위로 보이는 연푸른 하늘과 붉은 태양이 짙푸른 녹색으로 이루어진 열대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수십 가지의 녹색을 사용해 화면 가득 채워놓은 이국적인 식물들의 모습이 평생 파리를 벗어나보지 못한 화가가 식물원에서 수없이 묘사했던 식물들의 모습이라는 걸 누가 알 수 있었을까? 실제 가보지 못한 풍경을 마치 현실의 풍경인양 그려 놓았기에 그의 정글은 신비로운 또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정글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의 상상력에서 태어난 밀림의 풍경은 환상적이며 원시적이고 어린아이의 상상처럼 순수성을 지니고 있다. 진한 윤곽선, 단순화된 형태, 평면적인 화풍으로 인해 이 작품은 마치 연극무대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잘 꾸며진 세트에서 사자와 영양이 물고 뜯는 연기를 하고 있는 듯도 하다.

이는 그가 붙인 ‘굶주린 사자는 영양을 덮쳐 갈기갈기 찢는다. 퓨마는 자기 몫을 차지할 때를 기다리며 숨죽인다. 맹금은 입에 문 가엾은 동물에서 뜯어낸 살점을 아래로 길게 늘어뜨렸다. 해가 진다’라는 연극 속의 대사와도 같은 부제로 인해 더욱 현실성을 잃는다.

파리의 화단이 그를 국외자로 취급하고 그의 끝없는 노력을 비웃고 조롱할 때 그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본 이들은 그때 막 새로운 미술사조를 지향하는 젊은 아티스트 피카소와 아폴리네르였다. 그들의 주선으로 살롱 도톤느 전, 마티스와 블라맹크의 작품이 전시된 야수파의 방에 루소의 작품을 전시하게 되었는데 이 작품으로 비평가들의 인정과 대중들의 호평을 받게 되고 화상들도 그의 그림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의 출세작이 된 것이다. 드디어 그의 기나긴 미술여정에 빛이 들게 되고 피카소가 찾아낸 그의 재능은 전위적인 현대화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된다.

 

07_그가 그린 인물화는 모델과 닮지 않은 것으로 유명해

잠자는 집시, 1897년, 유화

루소는 또한 많은 인물화를 그렸는데 그가 그린 인물화는 누가 보아도 모델과 닮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그의 초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실제보다 거대하고 그로테스크한 면이 있다. 그가 과연 인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없어서 이렇게 그렸을까?

그의 초기 작품을 보거나 학생들에게 소묘를 가르친 실력 그리고 수많은 세월 동안 식물원이나 동물원, 박물관에서 기른 묘사력을 생각하면 이러한 그의 표현방법은 그의 의지의 소산이었음을 알게 된다.

초기 작품인 ‘숲가에서’ (1886년)의 여인은 자연스러운 비율과 데생으로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고 나무들 역시 흐르는 듯한 곡선과 원근감으로 사실적인 묘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작품성을 인정받고 사람들 뇌리에 각인된 작품은 ‘숲가에서’보다 ‘인형을 든 아이’ (1896년)나 ‘바위 위의 소년’ (1895-1897년)이다.

‘인형을 든 아이’에서 피에로 인형을 들고 서있는 아이의 모습은 천진난만한 아이가 까르르 웃는 모습을 기대한 이들에게 배신감을 안긴다. 아이는 양미간을 찌푸린 채 입술을 앙다물고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고 아이의 팔뚝과 다리는 아이의 것이라고 보기엔 중후하고 뻣뻣한 원통 같다.

차라리 끈에 매달린 피에로의 모습이 더 현실감 있게 보인다. 그리고 평면적으로 묘사된 나무들과 꽃은 마치 현대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하다. 이 모든 것이 화면에 모여 보여주는 것은 결국 사실세계에서 동떨어진, 마치 동화와도 같은 환상세계이다.

또한 ‘바위 위의 소년’은 바위가 아니라 산처럼 삐죽삐죽한 봉우리에 앉아있는 아이의 모습 같다. 배경과 인물이 따로 놀아 아이는 앉아 있는 게 아니라 공중에 떠있는 것마냥 보여지고 배경이 입체감 있게 표현된 데 비해 소년은 이차원적으로 그려졌다.

비례를 무시하고 다중적인 시점으로 대상을 표현한 이 작품에서는 입체파의 향기가 난다. 입체파의 대가인 피카소가 그의 작품에 열광한 나머지 자신의 작품을 판 돈으로 그의 그림을 수집한다든지 그를 위해 파티를 열고 사람들에게 그의 예술세계를 홍보할 만큼 매료됐던 것도 무리가 아닌 것 같다.

 

08_평생의 조롱과 비판 무색케 하는 큰 환호 받은 ‘꿈’

풍경과 나 자신의 초상화, 1890년, 유화

‘꿈’은 루소가 66세의 나이로 죽기 직전인 1910년 완성되었다. 세로 204.5cm, 가로 298.5cm의 대작인 이 작품은 그가 마지막으로 앙데팡당 전에 출품하여 평생의 조롱과 비판을 무색케 하는 큰 환호를 받았다.

울창한 밀림 속 먹음직한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있고, 아름답고 기이한 꽃들이 화면을 수놓고 있다. 나뭇가지 위에서 노래하는 새들과 수풀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기웃거리는 사자의 모습, 나무 사이에 숨어 있는 코끼리, 그리고 어두컴컴한 숲 속에서 뱀을 부르는 듯 피리를 불고 있는 검은 피부의 원주민 여인이 빨갛고 노란 원색의 줄무늬 치마를 두르고 서있다.

이 완벽하게 원시림의 모습을 재현한 장면 속에 이질적인 것은 오로지 붉은 벨벳 소파 위에 누워 있는 소녀 ‘야디비가’뿐이다. 소녀는 팔을 뻗어 눈 앞의 밀림이 사실인지 자신의 환영인지 만져보려 하는 것 같다.

어떻게 정글 한복판에 소파에 누워있는 소녀가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그가 말한 대로 원시림을 꿈꾸는 소녀의 환상세계라는 말로 설명이 된다. 이 생생하게 그려진 상상 속의 밀림과 소녀와의 만남….

상상과 현실의 기이한 조합을 화면 속에 끌어온 그의 시도는 자칫 흔한 원시주의 풍경화로 남을 수 있던 작품에 우리가 언젠가 꾸었던 꿈 속의 세상 같은 신비하고 경이로운 느낌을 부여한다.

루소는 이 작품에 대해 시도 남겼는데 “아름다운 꿈 속에 부드럽게 잠들어 있는 야디비가, 어디서인지 목관악기 뮈제트의 연주가 울리는구나, 꽃과 초록빛 나무 사이에 야생동물과 독사까지도 귀를 기울이는 그 음악이 명랑하구나”라고 노래했다.

 

09_평생 가난과 고독에 시달렸던 늦깎이 화가의 찬란한 비상

앙리 루소 사진

이러한 그의 작품세계는 르네 마그리트나 키리코 같은 초현실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아폴리네르나 앙드레 부르통의 큰 지지를 받았다. 앙드레 부르통은 그의 작품 앞에서 외쳤다. “여기 보아라. 태고의 밀림, 꿈 속을 걷는 루소가 있다. 꿈과 같은 형이상학, 그의 ‘마술 리얼리즘’의 앞에 지금 우리가 함께 있도다!”

또한 기욤 아폴리네르는 이 그림에 대해 “그의 환상적인 작품 역량은 이제 조롱과 논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아무도 이 그림 앞에 웃을 수 없다”고 루소를 찬양했다.

이제 그는 현대 원시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며 아폴리네르나 부르통, 피카소에 영감을 주고 르네 마그리트와 키리코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위대한 화가로 우뚝 서있다.

앙리 루소는 초현실주의부터 현대 애니메이션 영화 ‘마다 가스카르’에 이르기 까지 세간의 조롱과 비판에도 굴하지 않고 홀로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 마침내 정점에 도달한 위대하고도 고독한 화가였다.

생전에 단 한차례의 개인전도 열지 못했던 루소를 위해 그가 죽은 다음해인 1911년 그가 평생 출품했던 앙데팡당 전에서 처음으로 그의 회고전이 열렸다.

그리고 그에 대한 재평가는 1984년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이루어졌다. 올해로 그가 간지 110년이 되었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현대로 올수록 더욱 높아지고만 있다. 평생을 가난과 고독에 시달렸던 늦깎이 화가의 찬란한 비상이 그의 영혼을 달래주길 바라며 아르뛰르 랭보의 시를 그에게 바친다.

 

감각

여름 야청빛 저녁이면 들길을 가리라,

밀잎에 찔리고, 잔풀을 밟으며.

 

하여 몽상가의 발 밑으로 그 신선함을 느끼리

바람은 저절로 내 맨머리를 씻겨 주겠지.

 

말도 않고, 생각도 않으리

그러나 한없는 사랑은 내 넋 속에 피어 오르리니

 

나는 가리라, 멀리, 저 멀리, 보헤미안처럼

계집애 데려가듯 행복하게, 자연 속으로.

 

* 다음 번에는 액션페인팅의 대가인 추상화가 잭슨 폴록과 만나겠습니다.

 

글 / 미셸 유 (글벗세움문학회 회원·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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