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힘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작품들… 마티스의 뱃속에는 태양이?
20세기 표현주의 화가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1869-1954)는 순수하고도 강렬한 색조, 단순한 선과 구성을 토대로 삶의 충만함과 행복을 표현한 아름다운 작품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화가이며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현대 미술의 주축을 이루는 위대한 작가이다.
01_원색의 강렬한 색채에 중점 둔 색채의 마법사
색채의 마법사로 불릴 만큼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방법으로 색을 사용한 그는 원색의 강렬한 색채에 중점을 두고 대상의 선을 단순화시켜 주제를 더욱 극적으로 다가오게 하는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대표작인 모자를 쓴 여인, 삶의 기쁨, 댄스, 재즈 등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 색감과 형태의 조화에 우리의 마음까지도 순수하고 깨끗해짐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생동감은 우리의 일상에서 잊혀져 가는 삶에 대한 열정과 환희를 일깨워 주는 것만 같다.
1869년 프랑스 북부 르 카토 캉브레지에서 태어난 마티스는 법학을 공부하고 변호사 자격증을 따는 등 미술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다.
법률사무소에 다니며 평범한 삶을 살았던 그가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어찌 보면 너무 단순할 수도 있는데 맹장 수술로 병원에 누워 있을 때 심심함을 이기려 풍경화를 모사한 단순한 취미생활이 그 시작이었다.
이성적인 삶에 길들여진 그가 감성의 세계인 예술의 길로 들어선 것은 보잘것없는 계기에서 시작됐을 수도 있지만 그의 안에 숨겨져 왔던 자기표현의 욕구는 끊임없이 확대되어 갔다.
자신의 길을 향한 확고한 의지로 꾸준한 끈기와 용기를 가지고 색채의 혁명과 형태의 단순화에 의한 반추상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예술을 향한 기나긴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1891년 안정된 직업인 변호사의 길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반대를 뒤로 한 채 화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간 마티스는 장식미술학교에 입학해 귀스타브 모로의 문하생이 되고 1896년 국립미술협회가 주관하는 살롱전에 작품 4점을 출품하여 성공을 거둠으로 비교적 순탄하게 화가의 길을 닦아나갔다.
고흐와 고갱에게서 격렬함을, 세잔느에게서는 색채의 대비와 조화를 본받았지만 끊임없이 노력하고 탐구해 그들과는 완전히 다른 자신만의 예술을 창조한 마티스는 항상 변화를 추구하고 점점 성숙해져갔다.
02_20세기 초반 야수파 운동 주도, 유럽화가들에 큰 영향
또한 마티스는 20세기 초반 야수파 (Fauvism) 운동을 주도하며 피카소 및 많은 유럽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초 사진술의 발달로 사실 묘사의 기능이 축소되자 젊은 예술가들은 회화의 새로운 존재 이유를 대상의 단순 묘사를 넘어서 예술적 기능에서 찾기 시작해 사실적 실체의 표현보다 작가의 주관과 독창성을 중요시 여기게 되었다.
1905년과 1908년 사이 마티스를 중심으로 한 야수파는 원시적인 강렬한 색채와 강한 터치로 형태를 변형시키고 단순화시켜 회화가 사실주의적 표현으로부터 벗어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억압되었던 색채의 자유분방한 표출로 20세기에 다양하게 나타난 현대미술 신사조들의 태동을 연 야수파를 대표하는 화가 마티스, 그는 야수주의가 쇠퇴한 이후에도 계속 야수파의 화법을 유지 발전시키며 그만의 예술세계를 완성해나갔고 그의 이러한 현대적인 화풍과 예술이론은 본격적인 모더니즘 미술을 꽃피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03_색과 색이 만나 연출하는 화음, 조화, 질서…
그의 야수파 시절의 대표작인 모자를 쓴 여인 (1905, 유화), 마티스 부인의 초상: 녹색선 (1905, 유화), 삶의 기쁨 (1906, 우화)은 그가 색채의 혁명을 시도해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들이다.
마티스에게 있어 이미지는 색채를 겹쳐 쌓아 형태를 이룬다는 것인데 이러한 개념을 증명하듯이 ‘모자를 쓴 여인’에서 모델의 얼굴은 색채, 선, 면, 형태의 조화를 만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 같다.
그는 세잔느의 견고한 구조적 형태와 고갱의 원시적인 색 면에서 받은 영감을 극대화시켜 형태에 묶여있던 색채를 해방시킴으로써 색과 색이 만나 섞이고 충돌하면서 연출하는 색들의 화음과 조화, 그들이 이루는 구조적 질서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작품의 모델인 마티스 부인의 자세는 전통적인 초상화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인물에 사용된 강렬한 원색과 원근법의 무시, 빨강과 초록, 주황과 파랑 등 보색이 주는 효과가 차가운 색과 따뜻한 색의 대비와 함께 강렬함을 극대화시켜, 그 현란한 색채가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다.
04_추상적 개념 사용해 색채만으로 형태, 입체감, 그림자, 내면까지
또한 ‘마티스 부인의 초상: 녹색선’에서는 자기 부인의 초상화를 짙은 파란색의 머리아래 얼굴에는 가운데 녹색선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분홍색, 오른쪽에는 노랑색으로 칠해서 녹색선을 중심으로 얼굴과 화면을 둘로 구분하고 빨강과 녹색, 노랑과 보라를 대비시켜 얼굴의 입체감과 모델 내면의 긴장감을 표현했다.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를 교묘한 균형으로 조화시킨 이 작품은 단지 감각적인 색채를 터트린 것만이 아니라 그 색들을 능란하게 다루어 색채의 주인으로서 색채로 나타낼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를 보여준다.
자신만의 추상적 개념을 사용해 색채만으로 형태와 입체감, 그림자, 모델의 내면까지 표현해낸 그의 예술적 감각은 현대의 우리가 보아도 놀라울 정도인데 여태껏 사실주의적 회화만을 접해 오던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고 느꼈을 경악과 낯설음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05_평생 바쳐 추구한 가치 ‘생명력을 색채로 표현한다’
‘삶의 기쁨’은 마티스가 지중해에 있는 콜리우르라는 작은 해변 마을에서 햇빛 가득한 여름을 지낸 뒤 만들어진 작품으로 뜨거운 태양 아래 자연이 준 선물을 만끽하는 인간들의 자유롭고 나른한 모습,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된 것 같은 목가적인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그가 평생을 바쳐 추구한 가치인 생명력을 색채로 표현한다는 명제가 작품 속에 뚜렷하게 들어날 뿐만 아니라 찬란한 색채를 발산하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생한 삶의 환희가 작품 전체를 감싸고 있어 우리를 감동시킨다.
마티스 특유의 색감인 평면적이며 강렬한 색채, 물결치는 듯한 윤곽선으로 독자적인 양식을 구축한 이 작품은 1906년 앙데팡당전 (무명 예술가들의 독립 전시회)에 출품해 큰 주목을 받았다.
‘삶의 기쁨’에서 마티스는 눈에 보이는 현실과 화가가 상상하는 아름다운 이상향을 색채의 리듬으로 표현했는데 가장 마티스적인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걸작이자 그의 야수파적인 화풍을 꽃피우게 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06_지친 사람에게 휴식처 제공하는 무구한 그림 추구
1908년 이후 그는 색과 모양의 배합이 이루는 긴밀한 질서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가구, 꽃, 꽃병, 카펫 등 모든 대상이 화면에서 균등한 비중을 가지고 조화를 이루는, 다양함 속의 단일함으로 질서와 조화를 창조했다.
“나는 균형이 잡힌 무구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 지쳐버린 사람에게 조용한 휴식처를 제공하는 것과 같은 그림을…” 이라고 말한 마티스는 그가 창조한 질서와 조화 속에서 우리에게 순수하고 깨끗한, 청량한 감성을 주고 있다.
1911년 그려진 ‘뻐꾸기, 푸른색과 분홍색의 카펫’은 푸른색과 분홍색의 카펫 위에 노란 꽃다발이 넘치듯이 꽂혀있는 푸른색의 꽃병이 놓여있는데 바탕의 진한 하늘색과 한쪽 빨간 기둥의 보색을 이용한 색의 대비가 눈에 띄고 카펫, 커텐 등 섬유가 지닌 무늬와 화려한 색상을 극적으로 이용해 구도를 잡고 전체적인 톤을 만들었다.
그의 야수파적인 성향과 두 번의 아랍 여행에서 얻은 오리엔탈리즘이 주는 장식성이 절묘하게 어울려 그가 전성기에 들어섰음을 알려주는 작품이다.
2009년 파리 크리스티 경매에서 이브 생 로랭의 유품으로 나와 3590만 유로 (482억원)라는 최고가로 낙찰된 사실로도 이 작품이 후대에도 얼마나 사랑 받고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07_활기 가득 찬 화면 안에 낙천주의적 인생관 살아 숨쉬고
작품이 성숙해 감에 따라 마티스는 차츰 강렬하고 개성 있는 색채 효과의 표출을 절제하기 시작하고 화면은 조화와 평온을 추구하게 되었다. 1910년 뮌헨에서 열린 이슬람 미술전과 두 번의 모로코여행의 영향으로 통일된 색채의 장식적인 요소, 특히 아라베스크나 꽃무늬를 배경으로 한 평면적 구성의 독특한 화풍을 창조했다.
전성기 시절 그의 그림에는 원근법이 무시된 평면화 된 공간이 넓은 영역에 걸쳐 밝고 얇게 칠해진 색채로 나타나고 굵은 윤곽선으로 처리된 형태는 세부적 묘사 없이 단순하게 표현되고 있어 자유분방하고 장식적이며 지중해 특유의 활기가 가득 찬 화면 안에 그의 낙천주의적 인생관이 살아 숨쉬고 있는 것 같다.
1910년 그려진 ‘춤’은 빨강, 녹색, 파랑, 단지 세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마티스 예술의 진수인 단순성과 강렬함이 극대화한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춤과 음악이라는 인간의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내적 표현을 표현하려 한 이 작품에서 푸른 하늘과 언덕은 극도로 단순화되어 강렬한 붉은 색으로 그려진 무희들을 돋보이게 만들고 있고 색과 색이 만나 이루는 상호작용과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평면화 시킨 화면은 우리에게 단순함이 줄 수 있는 가장 강렬한 느낌을 선사한다.
이 작품을 보면 모든 가식과 체면을 벗어던지고 오직 근원적인 본능에 끌려 서로 손을 잡고 돌아가는 무희들의 몸짓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원초적 에너지와 삶의 환희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08_붓 대신 가위, 물감대신 색종이 택해 새로운 작업
1941년 나이 70이 넘어 십이지장암 수술을 받은 후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다시는 붓을 잡을 수 없게 되었지만 그는 결코 좌절하지 않고 붓 대신 가위를, 물감대신 색종이를 택해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
화려한 색의 종이 조각들이 화면 위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나타내며 추상적이고 소박한 양식의 새로운 미술 형식이 태어난 것이다.
색종이 콜라쥬라는 이 새로운 장르는 그의 불타는 창작욕을 만족시켰고 3-4년에 걸쳐 작업한 결과 1947년 마침내 색감과 리듬이 경쾌하게 조화를 이루는 <재즈>라는 한정판 책을 만들어내었다.
이 책의 본문에서 마티스는 “색채를 직접 자르는 것은 돌을 깎아내는 조각가의 직접적인 행위를 연상시킨다. 나는 색채 자체 속에서 데생을 한다. 그래서 색채는 움직일 수 없는 결정적인 절도를 갖는다. 색종이의 단순화는 결국 하나의 선과 색이라는 두 가지 수단의 결합 속에서 정확성을 보증해준다. 이것은 출발이 아니라 도달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그의 색채에 대한 관점은 <재즈>에 실린 ‘이카로스'(1947년)와 ‘블루 누드'(1952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카루스’는 푸른 바탕에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려 날개짓 하는 검게 타버린 몸이 검정 색종이로 표현되고 가슴에 오려 붙인 붉은 원으로 펄떡이는 붉은 심장을 상징했다.
노란색 섬광처럼 날카롭게 잘라진 날개 깃털이 하늘에서 흩어지는 모습에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동경을 느끼게 된다.
죽음을 뒤로 한 채 태양을 향해 날아간 이카로스의 열정과 불가능을 넘기 위한 도전은 죽음을 곁에 두고 고통 속에서도 창작의 열정을 불태운 마티스 자신의 모습과도 같지 않을까?
‘블루 누드’ 역시 단순한 형태가 색종이 작품의 효과를 극대화시킨 작품으로 나부의 유동적이고 대담한 포즈가 푸른색 색종이로 입체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그의 종이작업은 색이 가지고 있는 강도로 입체감을 표현하고 있는데 진한 푸른색이 흰색 화면에서 더욱 도드라지게 보인다는 색깔 자체의 성질과 배치를 이용해 나부의 포즈가 더욱 역동적으로 보여지게 했다.
그의 수많은 색종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색깔의 구성과 형태 속에 숨어있는 다양한 감성과 에너지, 삶의 환희를 느낄 수 있어 이 모든 것들이 단지 몇 개의 색종이 조각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이 경이로울 뿐이다.
09_“내가 쓰는 모든 색은 한데 어우러져 노래한다. 마치 합창단처럼”
그의 수많은 업적 중 1948년에 시작해 1951년에 완성한 남프랑스 니스의 방스성당 장식은 마티스 예술의 집약이라 할 수 있는데 명쾌하고 단순함이 넘치는 조형으로 세계 화단의 새로운 기념물이자 20세기 최고의 모뉴먼트로 자리매김했고 1952년에는 그의 출생지에 마티스박물관이 설립되었다.
마티스는 색면의 배열과 색채의 보색, 한색, 난색이 이루는 상호관계에 의한 새로운 감각을 개척했을 뿐만 아니라 소재를 자연적 대상에서 찾음에도 불구하고 색감의 창조와 형의 단순화에 의해 새로운 회화의 장르를 개척했다.
마티스가 말한 “초록색을 칠했다고 해서 풀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파란색을 칠했다고 하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쓰는 모든 색은 한데 어우러져 노래한다. 마치 합창단처럼”이라는 말은 그가 이룬 색채의 혁명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말이 아닐까?
만년에는 색도 형태도 단순화되어 밝고 순수한 색, 명쾌한 선에 의해 단순화된 형태와 완벽하게 구성된 평면적 화면은 ‘세기의 경이’라고까지 평가되고 있다.
피카소가 “마티스의 뱃속에는 태양이 들어있다” 라고 말했듯이 마티스는 삶의 환희로 가득 차 있었고 그 내면의 힘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많은 작품들을 남겨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가치 있게 만들어줌에 감사할 따름이다.
* 다음은 인상파 화가 모네의 빛이 흐르는 화폭 속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글 / 미셀 유 (글벗세움 회원·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