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춰진 이면의 신비한 세계를 시적 이미지를 통해 우리에게 선물하는…

초현실주의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 (Rene Magritte, 1898~1967)는 겨울비, 인간의 조건, 이미지의 배반 등 유명한 작품으로 우리에게도 친근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 현대미술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팝아트와 그래픽디자인, 영화, 문학,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01_사물의 보편화된 인식 속에 숨겨진 면 드러내는

현대의 젊은 미술가들이 어떠한 틀에도 매이지 않고 캔버스를 벗어나 만화, 영상, 설치,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의 예술관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도 르네상스 이후 몇 백 년을 이어오는 사실주의의 흐름에서 벗어나 현실을 무의식의 세계와 접목시켜 의식의 확장을 이루어낸 그의 작품세계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철학적인 움직임과 비논리적인 장면으로 가득 찬 그의 작품은 창조적이고 독특한 방법으로 영감을 담은 아름다운 무의식의 세계 속으로 인도하는데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것들은 다른 어떤 것을 숨기고 있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보는 것들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보고 싶어 한다”라고 그가 말했듯이 그의 작품의 특징은 눈에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에서 벗어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즉, 사물의 보편화된 인식 속에 숨겨진 면을 드러내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02_그의 작품 근간 이루는 건 초현실주의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초현실주의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아야 하겠다.

초현실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24년부터 약 20년간 프랑스를 중심으로 이성과 합리주의로 대변되는 서구문명 전반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예술운동으로서 이성의 지배를 거부하고 의식아래에 깊게 숨겨진 무의식의 세계, 꿈의 세계, 사물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의미를 표현하는 예술운동으로 데페이즈망, 오토마티즘, 콜라쥬, 프로타쥬, 데칼코마니 등의 기법을 사용하여 과거 붓이나 나이프로 그려진 유화나 수채화에 머물렀던 회화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앙드레 브르통은 1924년 초현실주의 선언을 통하여 초현실주의의 목적은 “이전의 꿈과 현실의 모순된 상황을 절대적 현실, 초현실적 상태로 변형시키는 것이다”라고 해석하였다.

이는 많은 다다이즘 (기존의 모든 가치와 질서를 부정하고 비이성적, 비심미적인 것을 지향하는 예술사조) 화가들이 공감하고 참여해서 이후 미술계의 주류를 이루었을 뿐 아니라 현대미술의 초석이 되었다.

 

03_고립된 물체 자체의 숨겨진 이면 이끌어내려 노력

1898년 벨기에 레신에서 태어난 마그리트는 18세부터 브뤼셀 왕립미술 아카데미에서 회화를 배우고 졸업 후에는 상업미술가로 일을 했지만 자신의 일보다는 순수미술에 더욱 흥미를 가지고 그 당시 새롭게 떠오르던 입체파와 미래파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1922년은 그의 삶에 있어 커다란 전환점이 되는데 개인적인 면에서는 소꿉친구 마리 베르제와의 결혼이고 예술적인 면에서는 로트레아몽의 시 ‘말도로르의 노래’를 재해석한 조르지오 데 키리코의 작품 ‘사랑의 노래’를 만난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의 초현실주의적인 순수한 미학에 심취해 초현실주의로 전향했을 뿐만 아니라 1927년부터 약 3년간 파리에 유학해 막스 에른스트,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장 아르프등 당시 파리의 초현실주의를 이끌던 화가들과 교류하며 초현실주의 활동에 참여해 잡지 <초현실주의 혁명>의 창간 동인으로도 활약했다.

그러나 많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자동기술법이나 꿈의 세계에 대한 편집광적 탐구에 집착할 때 그는 보다 논리적이고 철학적으로 사물의 존재론에 의미를 두고 고립된 물체 자체의 숨겨진 이면을 이끌어내려고 노력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이미지를 창조해 나아갔다.

 

04_텍스트와 이미지 한 공간에 배치, 사실주의적 재현의 틀 붕괴

1927년부터 마그리트는 서로 상관없는 사물과 단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을 완성하는데 이러한 논리에서 벗어난 작품들은 기존에 정의 내려진 단어와 사물의 상관관계와 그 상징에 대하여 철학적 의문을 제기하고, 시적인 조형성을 통해 기존의 논리를 거부하고 상식의 틀을 깨기 시작한다.

작품을 하나의 ‘생각의 창’으로 만든 그의 작품세계는 “모든 형태의 예술은 시적인 조형성을 가진다”라는 헤겔의 미학이론에 힘입어 초현실주의 화가로 입지를 다지게 된다.

이 시기에 그려진 ‘이미지의 배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은 흔한 파이프가 그려져 있지만 그 아래에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쓰여 있다.

우리는 관습에 따라 캔버스에 그려진 파이프가 파이프라고 생각하지만 마그리트는 그 관습적 사고방식을 깨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림과 문장을 모순적으로 표현함으로, 화가가 대상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 대상의 재현일 뿐 그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다고 역설한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인 세상에 반론을 제기하고 텍스트와 이미지를 한 공간에 배치시켜 사실주의적 재현의 틀을 붕괴시킨 그의 작품세계는 고정된 인식의 커튼을 걷어내 우리의 갇혀진 시야를 해방시키고 보다 넓은 세계를 향해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커다란 설렘을 안겨주는 것 같다.

 

05_조금 더 열린 시각으로 세상 바라보라는 메시지 은유적으로

그리고 실제의 대상과 그림으로 묘사되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애매모호함을 ‘그림 속의 그림’이라는 주제로 표현한 1933년 그려진 ‘인간의 조건’을 보면, 이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은 단순히 창문너머로 비춰진 아름다운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이젤 위에 놓여 진 캔버스가 유리창 안쪽에 자리 잡고 서있는 것을 보게 된다.

캔버스 속의 풍경과 창문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정확하게 그 위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 둘은 하나의 풍경으로 비춰진다. 창문 우측의 흰 줄처럼 그려진 캔버스의 옆면, 위쪽의 이젤 꼭지점, 그리고 왼쪽 커튼의 미묘한 차이로 거기에 캔버스가 있고 그 위에 그려진 그림이 유리창에 비친 바깥 풍경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그 관계의 모호함에 비로소 고정적 관념에서 벗어나 또 다른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한쪽 눈을 화면 가득히 클로즈업해 각막 위로 구름이 떠있는 하늘을 그린 ‘잘못된 거울’ 역시 그림이 본다는 행위와 직결된다는 것을 강조한 작품으로 여기에서 눈은 사물을 보는 적극적 기능보다 사물을 수동적으로 반사하는 거울의 기능으로 축소시켜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조건’과 마찬가지로 착시를 통해서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 행위가 얼마나 우리의 시야를 좁히고 사고의 영역을 통제하는지를 비판하고 우리에게 조금 더 열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06_만날 수 없는 낮과 밤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한 화면에

마그리트는 또한 평소에는 만날 수 없는 두 가지 사물이나 개념을 한 화면에 두고 이 이상한 만남으로 야기되는 특유의 긴장감과 신비스러운 느낌을 즐겨 표현했는데 우리는 이러한 신비감을 1948년부터 시작해 죽음에 이를 때까지 그를 사로잡은 ‘빛의 제국’ 연작에서 느낄 수 있다.

‘빛의 제국’은 언뜻 보기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 평범한 풍경화 같지만 자세히 보면 서로 다른 개념들이 한 공간, 하나의 시간 속에 공존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 작품의 화면 하단은 어두운 거리와 집의 창문에서 새나오는 불빛으로 표현된 밤의 풍경이고, 화면 윗부분은 푸른 하늘과 흰 구름으로 표현된 낮의 풍경이다.

평소에는 만날 수 없는 낮과 밤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한 화면에 담아놓음으로 낮과 밤이 한 공간에 존재할 수 없다는 기존의 틀을 과감하게 깨버린 이 작품에서 우리는 낮과 밤의 동시성이 주는 심리적 긴장감과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어디엔가 또 다른 세계에는 존재 할 듯한 이 이상한 풍경에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자연의 법칙을 과감하게 무시한 ‘피레네 산맥의 성채’를 보자. 1958년 제작된 이 작품은 요새 모양의 성이 거대한 바위 정상에 솟아있고, 그 바위는 해변 위로 중력의 저항 없이 하늘에 떠있다. 마치 우주의 다른 행성에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영화 ‘아바타’의 공중에 떠 있는 섬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시공간의 개념으로 또 다른 세계가 탄생하는 것이다.

실현될 수 없는 백일몽을 뜻하는 프랑스식 관용어 ‘허공 위의 성곽’을 비틀어 제목을 지은 이 작품은 이후 일본의 애니메이션 ‘하울의 성’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고 디자인, 광고, 회화 등 많은 분야에 영향을 주었다.

 

07_중산모 쓴 평균의 남자는 익명의 보통 사람들

뿐만 아니라 복제와 익명성에 대한 그의 철학을 시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그의 대표작 ‘겨울비 (골콩드)’를 보면 삭막한 건물을 배경으로 평범한 검은 중절모와 외투를 입은 신사들이 공중에서 비처럼 내려오고 있는데, 획일화된 현대 사회 속에서 개성을 잃고 같은 생활의 패턴을 보이는 군상들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회색 콘크리트 벽으로 이루어진 건물, 커튼으로 굳게 닫혀 진 똑같은 창문들을 배경으로 빗방울처럼 내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개인의 상실과 자아의 부재, 소통 없는 현대 사회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시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중절모와 검정 외투는 실제로 마그리트도 즐겨 입은 패션으로 이 옷차림의 자신을 모델로 한 여러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다.

“여기에 수없이 많은 다른 남자들이 있다. 하지만 군중을 생각할 때, 당신을 그 개인을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군중을 암시하기 위해 이 남자들은 모두 가능한 한 단순한 모양의 비슷한 옷을 입고 있다… (중략) 중산모를 쓴 평균의 남자는 익명의 보통 사람들이다” 라고 말한 마그리트는 이 작품에서 현대사회가 주는 획일성 속에서 말살되어가는 개인의 고유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에 깃들인 그의 철학은 아직까지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아 영화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의 복제 장면에 영감을 주거나 신세계백화점의 공사 가림막, 광고 등에 등장 하는 등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08_화가라는 이름 대신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했던

1967년 사망할 때까지 독자적인 초현실주의를 실현하며 수많은 역작들을 남긴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은 단순히 보는 그림이 아니라 생각하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상식의 틀을 깨는 창조적 시각으로 이루어진 그의 작품세계는 우리의 세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고 우리의 의식을 확장시키는 철학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평생에 걸쳐 오브제의 데페이즈망, 이미지와 단어의 겸용, 사물의 고립, 변경, 교배 등의 기법을 다양하게 탐구하고 변형시키며 사색적인 동시에 신비로운 시적 은유로 가득한 예술세계를 표현한다.

기발한 발상과 관습적 사고의 거부, 신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 시적인 조형성으로 이루어진 그의 초현실적 작품세계는 철저한 계산에 의해 만들어진 논리적이며 철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고, 철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그는 화가라는 이름 대신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했고 끊임없이 존재와 세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그림을 통해 시각적으로 재현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철학적인 주제를 딱딱하거나 지나치게 논리적이 아닌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은 그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시적 감수성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림에 가장 적절한 제목은 시적인 것이다. 우리가 그림을 감상하면서 느끼는 다소 생생한 감정에 비교될 수 있는 제목을 의미하는 것이다. 시적인 제목은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치려 하지 않고 우리를 놀라게 하거나 마법에 빠져들게 한다”라고 말한 마그리트는 습관화된 논리체계에서 벗어나 평소 자각하지 못했던 현실세계의 이면을 엿보게 하고 감추어진 이면의 신비한 세계를 시적 이미지를 통해 우리에게 선물한다.

 

 

* 다음은 불행과 역경 속에서도 빛나는 예술혼을 아낌없이 불태운 비운의 화가 프리다 칼로의 이야기입니다.

 

글 / 미셀 유 (글벗세움 회원·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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