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로랑생과 기욤 아폴리네르의 사랑 속에 피어난 예술
5년간의 불타는 사랑 후에도 서로를 원하고 서로에게 녹아 있었고…
‘미라보 다리’라는 아름다운 시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폴리네르 (Guillaume Apollinaire, 1880-1919)와 피카소와 샤넬을 그린 화가, 야수파와 입체파의 도도한 물결 속에서도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해 수많은 작품들을 남긴 마리 로랑생 (Marie Laurencin, 1883-1956)의 사랑은 20세기 초 세기의 사랑이라 불리며 여전히 우리에게 회자된다.
01_서로의 예술 스타일 발견, 격려, 성장해나간 그들
주로 여인들의 초상화나 소녀상을 파스텔톤의 칼라를 사용해 독특하고 감각적인 화풍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여류화가 마리 로랑생과 프랑스의 천재적인 시인이자 비평가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사랑은 서로의 예술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로의 예술 스타일을 발견하고 격려하며 함께 성장해나간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은 고스란히 작품 속에 남아 우리의 감성을 일깨운다.
(마리 로랑생의 ‘자화상‘ 1905, 유화) | (아폴리네르의 사진) |
마리 로랑생은 20세기 초 피카소, 브라크와 함께 새로운 미술사조 운동에 참여한 유일한 여성화가인 동시에 서양화 역사에서 오로지 여성의 미와 감성을 추구한 화가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겪을 만큼 격동적인 시대를 살아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들은 여성만이 느낄 수 있는 여성 특유의 부드러운 감성을 담고 있으며 분홍과 보라, 파랑, 녹색, 회색의 파스텔 톤이 어우러져 만드는 직관적이고도 황홀한 색채의 그림은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고 어루만져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기욤 아폴리네르 역시 피카소, 브라크, 앙리 루소 등이 시도하는 새로운 미술 경향을 알아보고 입체파 시대가 열릴 것을 예견함으로 미술계 전반의 전위운동을 주도하고 상징주의와 초 현실주의 등 현대시의 모든 개념과 형식을 아우르며 모더니즘 운동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해 20세기 초의 시대정신을 구현한 시인이자 비평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캘리그램 (Calligram)의 창시자로도 유명한데 문학적 전위의 이론과 실천의 실례를 보여주는 ‘상형시집’을 통해 그림과 글자를 섞고 텍스트와 이미지를 혼합하는 실험으로 문학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02_피카소의 소개로 시작된 운명적인 만남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 전성기)라 불리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파리는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새로운 사상이 출현하고 실험적인 예술기법이 선보이는 그야말로 문화와 예술과 사랑이 꽃피는 젊은 예술가들의 이상향이었다.
유럽 각국에서 모여든 열정에 가득 찬 화가, 시인, 비평가들이 그들 내면의 잠재성을 폭발적으로 표현함으로 기성 예술의 관념이나 형식을 부정하고 선구적이고 실험적인 창작을 시도하였다.
마리 로랑생 역시 화가가 되겠다는 꿈에 부풀어 조르쥬 브라크의 소개로 피카소와 만나게 되고 급진적인 젊은 예술가들의 아틀리에 ‘세탁선’에서 입체파와 야수파를 대표하는 미술계의 이단아들, 시인, 문학가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피카소가 그의 대표작 ‘아비뇽의 여인들’을 완성한 입체파의 기념비적인 장소이자 20세기 초 가장 유명한 창작공간으로 알려진 몽마르트의 아틀리에 ‘세탁선’은 센강 근처의 낡고 퇴락한 건물을 개조해 무명의 아방가르드 화가들과 시인들의 공동 작업실로 사용되었는데 피카소, 앙드레 살몽, 피에르 르동, 막스 자코프, 모딜리아니 등이 함께 모여 살며 작업을 하였다.
여기에 드나들던 로랑생과 아폴리네르 두 사람을 모두 알고 있던 피카소가 그들을 소개해 로랑생의 첫 개인전에서 아폴리네르는 운명의 여인 로랑생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예술가들‘ 가운데 아폴리네르와 붉은 꽃을 든 로랑생이 있고 좌우로 피카소와 그의 연인이 있다. 1908, 유화) | (‘파블로 피카소‘ 1908 유화) |
03_아폴리네르 ‘그녀 이상으로 사랑할 여인은 없다’ 단언
1907년, 스물일곱 살의 천재적인 젊은 시인과 예술가를 꿈꾸며 이제 막 현대미술의 문턱에 선 스물네 살 여류화가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에 빠진 아폴리네르는 ‘그녀 이상으로 사랑할 여인은 없다’고 단언하며 그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열심히 시를 쓰기 시작했고 후에 유명한 시인으로 명성을 날리게 될 시집 <알코홀>을 이루는 시들이 이때부터 씌어져 그의 시적 재능은 그녀로 인해 활짝 피어나게 되었다.
로랑생 역시 이때부터 우울하고도 슬픈 그녀의 감성을 표현한 검정과 흰색이 주조를 이룬 평범한 사실주의 화풍에서 벗어나 인물의 특징을 중점적으로 묘사한 뚜렷하고 부드러운 곡선과 보다 밝고 단순한 색상으로 이루어진 개성 강한 화풍으로 화단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아폴리네르가 비평지 <타협자>에 “마리 로랑생의 섬세한 기술은 오늘날 가장 뛰어난 독창적 예술의 하나이다. 그림은 구성도 색상도, 혹은 데생도 다른 것을 모방하지 않았다. 그녀의 그림에 영감을 불어넣는 그녀만의 감정과 감각을 볼 때 그녀의 작품세계는 르네상스 혹은 여타의 감정과도 유사성이 없는 독창적인 세계임을 느끼게 된다”고 그녀의 작품세계를 열렬히 지지했듯이 그들은 서로의 예술세계에 매혹 당하고 함께 사랑하며 흐르는 시간만큼 서로를 향한 마음도 깊어져 청춘의 찬란한 빛을 피워냈다.
이들은 이 사랑 넘치는 시기에 가장 왕성하고 스스로의 개성이 빛나는 작품 활동을 하였는데 아폴리네르는 ‘썩어가는 요술사’, ‘이교의 교조와 그의 일파’, ‘동물시집’을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시집 ‘알코홀’의 대부분의 시가 이때 씌어져 마리 로랑생은 ‘시인의 뮤즈’로 불리게 되었다.
마리 로랑생의 대표작 ‘아르테미스’, ‘예술가들’, ‘피카소의 초상화’ 등 역시 이 시기에 그려져 조각가 로댕은 그녀를 ‘야수파의 소녀’라고 찬사를 보내고 장 꼭토 (프랑스의 영화감독, 시인, 극작가, 화가. 장 콕토는 문학, 미술, 공예, 영화, 연극 등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많은 업적을 남긴 프랑스의 예술가)는 ‘야수파와 입체파 사이의 덫에 걸린 불쌍한 암사슴’이라고 표현하는 등 미술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앙리 루소의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인 화가
마리 로랑생과 시인 아폴리네르의 모습.
1909, 유화)
04_어린 날의 불우한 환경에서 받은 고통에 대한 동질감도
거부할 수 없는 화살처럼 달려와 가슴 깊은 곳을 뒤흔들고 폐부 깊숙이 들어 닥친 거대한 파도와도 같은 사랑. 무엇이 이토록 그들을 이끌었을까?
물론 이성으로의 강렬한 끌림, 예술에 대한 열정과 서로의 재능에 대한 존경과 찬미도 큰 몫을 차지하겠지만 아마도 그들을 끈끈히 맺어준 것은 어린 날의 불우한 환경에서 받은 고통에 대한 동질감이 아닐까 싶다.
명망 있는 아버지의 숨겨진 여인의 딸로 태어나 홀어머니 손에 자라고 그로 인해 우울하고도 슬픈 날들을 보낸 마리 로랑생과 로마에서 미혼모의 사생아로 태어나 멸시 어린 세간의 시선 속에서 출생의 비밀이 평생의 콤플렉스로 작용해 불우한 나날을 보냈던 아폴리네르.
이들이 고독과 아픔을 가슴에 묻은 채 예술을 향해 달려나가던 중 서로를 만났을 때 끝없는 사막 속의 작고 외로운 섬이었던 그들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고 무의미한 사막에서 의미를 만들어내게 되었으리라.
05_5년 만에 열렬했던 그들의 사랑은 끝이 났고…
그러나 행복은 잠시 왔다 돌아가는 손님처럼 사라져버리고 5년 만에 열렬했던 그들의 사랑은 끝이 났다.
이별 후 아폴리네르는 또 다른 여인들을 만났고 로랑생은 어머니를 잃고 독일 남작 오토 폰 바트겐과 결혼하는 등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전쟁으로 인한 삭막하고 피폐한 현실뿐이었다.
1914년 결혼하자마자 신혼여행 중이었던 로랭상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독일과 프랑스의 대치된 상황 속에서 남편으로 인한 독일 국적 때문에 프랑스로 돌아가지 못한 채 유랑자가 되어 유럽을 떠도는 신세가 되었고 아폴리네르는 보병 소위로 입대해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였지만 1916년 머리에 총상을 입고 제대하게 되었다.
1918년 11월, 로랑생은 동시에 두통의 전보를 받는데 하나는 머리의 총상으로 죽음의 위기를 느낀 아폴리네르가 보낸 ‘당신은 너무 멀리 있습니다. 나는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나는 죽을 것 같습니다’ 라는 내용과 또 다른 하나는 그가 이미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06_거센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그녀를 지탱해줬던 것은 사랑
천재적인 시인의 뮤즈였던 마리 로랑생.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후회와 상처 속에서도 변치 않는 예술에 대한 열정은 그녀가 일생에 걸쳐 단 한번 그토록 열렬히 사랑했던, 그 사랑에 대한 추억이 밑거름이 되었던 것 같다.
그녀의 작품을 대하면 현대미술의 한 축을 긋는 무거움이나 소녀성을 나타내는 가벼움 보다는 거대하게 몰아치는 야수파와 입체파의 거센 물결 속에서도 그녀 내면의 사랑과 상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솔직하게 표현해 감성적이고도 몽환적인 작품세계를 이루어낸 한 여인의 삶이 느껴진다.
그녀의 작품에서 사랑을 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전쟁과 망명, 결혼, 대공항 등 거센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그녀를 지탱해 주었던 것은 사랑이었다.
아폴리네르와 5년간의 열렬한 사랑 속에서 그들은 서로의 뮤즈가 되었고 예술혼은 더욱 불타올라 로랑생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고 더욱 성장해 미술계에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그 불 같은 사랑은 이후 수 십 년 간 그녀의 내면 깊숙이 자리잡아 화면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세명의 젊은 여인들‘ 1953, 유화)
07_’마드무아젤 샤넬의 초상‘은 스스로의 일생 드러내는 작품일지도
그녀의 작품 ‘마드무아젤 샤넬의 초상’에서 보여지는 옅은 회색과 녹색이 어우러져 빛과 어스름의 경계에 선 것처럼 모호하게 처리한 배경 속에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 있는 나른해 보이는 여인의 모습은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흔들리는 갈대처럼 무심해 보이지만 끝내 알 수 없는 그리움에 젖어 먼 곳을 바라보는 여인의 시선 속에는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뜨거운 생명이 담겨 빛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 그림은 차라리 마리 로랑생 그녀 자신의 지나온 일생을 드러내는 작품일지도 모른다. 샤넬 (Gabrielle ‘CoCo’ Chanel)은 자신을 진취적이고도 독립적인 신여성상으로 표현해주길 바랐겠지만 로랑생은 드러난 겉모습보다는 샤넬의 내면,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이루고 있는 여성성과 감성의 흐름을 더욱 중요시한 것이 아닐까?
샤넬이 작품 수정을 요구하자 이를 거부하고 후에 미술관에 기증해 이 작품이 로랑생의 대표작이 되었다는 건 유명한 일화이다.
또 ‘입맞춤’은 옅은 회색 빛에 둘러싸인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두 소녀 사이에서 일렁이는 미묘한 감성이 비껴진 시선으로 드러나고 입술과 의상의 핑크 빛이 부드럽게 자리 잡아 설렘을 표현한다. 굵은 선으로 처리된 검정색이 리본과 배경의 부분이 자칫 희미할 수 있는 색상의 배열에 포인트를 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작품의 시그니처인 감미롭고 부드러운 여성성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으로 보여진다.
(‘마드무아젤 샤넬의 초상화‘ 1923, 유화) | (‘입맞춤‘ 1927, 유화) |
08_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와 로랑생의 ‘잊혀진 여인‘
그들의 결별 후 떠나간 사랑의 그리움과 이별의 아픔을 담은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는 전 세계 연인들의 로망이 되었고 로랑생의 시 ‘잊혀진 여인’ 역시 그 화답의 시로 널리 읽혀진다.
5년간의 불타는 사랑 후에 남은 시간 속에서도 그들은 서로를 원하고 세월을 탓하며 그렇게 서로에게 녹아 있었고 로랑생은 죽음에 이르러서도 아폴리네르의 시와 편지와 함께 묻혔다.
이 크나큰 세기의 사랑은 오늘날 그들의 작품 속에 살아 숨쉬며 우리로 하여금 그 아름답고도 황홀한 몽환의 세계를 엿보게 하고 그들이 남겨 놓은 시와 그림 속에 찬란하고 아름답게 피어난다.
미라보 다리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그러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손에 손을 잡고서 얼굴을 마주 보자.
우리들의 팔 밑으로
미끄러운 물결의
영원한 눈길이 지나갈 때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흘러간다.
사랑은 흘러간다.
삶이 느리듯이
희망이 강렬하듯이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날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
가버린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만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잊혀진 여인
-마리 로랑생-
쓸쓸한 여자보다
좀 더 가엾은 것은 불행한 여자다
불행한 여자보다
좀 더 가엾은 것은 병든 여자다
병든 여자보다
좀 더 가엾은 것은 버림받은 여자다
버림받은 여자보다
좀 더 가엾은 것은 의지할 데 없는 여자다
의지할 데 없는 여자보다
좀 더 가엾은 것은 쫒겨난 여자다
쫒겨난 여자보다
좀 더 가엾은 것은 죽은 여자다
죽은 여자보다
좀 더 가엾은 것은 잊혀진 여자다.
* 다음 호는 색의 미술사 샤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글 / 미셀 유 (글벗세움 회원·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