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헌디?

“풉!” 저도 모르게 실소가 튀어나왔습니다. 2007년 12월 19일 ‘그분’이 대통령에 당선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꾸려지면서 발표되는 내용을 듣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득의양양한 인수위는 ‘이제부터 대통령당선자 대신 대통령당선인이라는 표현을 쓰겠다’고 했습니다.

갑자기? ‘당선자’와 ‘당선인’ 사이에 무슨 큰 차이가 있어서 굳이 바꾸려는 걸까? 그럼 그 동안 써오던 취업자, 담당자, 범죄자 이런 것도 취업인, 담당인, 범죄인 이렇게 써야 하는 것 아닌가? 하긴, 가만히 생각해보니 당선자 (當選者)에서의 자 (者)가 ‘이 자, 저 자’ 하면서 왠지 좀 막(?) 쓰이는 혹은 좀 저렴하게(?) 쓰이는 표현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습니다.

실제로 한자사전에도 者는 ‘놈 자’로 풀이돼 있었습니다. 명색이 곧 대통령 자리에 오르실 분인데 그런 식으로 하찮게(?) 불리는 것보다는 사람 인 (人)자를 넣어서 당선인 (當選人)으로 불리는 게 좀더 우아해(?) 보일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당선인이 아닌 당선자로 불리던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등 전직대통령들은 조금, 어쩌면 많이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또한 들었습니다.

당선인이 됐든 당선자가 됐든 임기 동안 나라와 국민을 위해 온 마음과 온 몸으로 일하는 게 더 중요했을 텐데…. 영화 ‘곡성’에서의 대사처럼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라는 소리를 들어 마땅할 법한 상황이었습니다. 더 가관인 것은 이후 어떤 한자사전에는 者가 ‘놈 자’가 아닌 ‘사람 자’로 슬그머니 바뀌어 풀이돼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남의(?) 나라 총선에 뭣 때문에 신경을 쓴대?” 이렇게 우스갯소리를 하면서도 우리는 TV 화면에서 계속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난주 수요일(10일) 오후 6시, 투표가 끝나자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달아오른 분위기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평소 정치하는 자들은 극히 일부를 빼고는 죄다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생각으로 마냥 삐딱해져(?) 있었던 저였지만 희한하게도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개표과정에 몰입해 있었습니다. 아무리 먼 이국 땅에서 호주시민권을 갖고 살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어쩔 수 없는 나의 조국이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아무리 썩어빠진 자들이 득실거리는 정치판이지만 조금 나은 사람들, 조금 덜 더러운 사람들이 많이 당선돼 우리나라를 잘 이끌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의도적으로 패어진 영남과 호남의 깊은 골은 매 선거 때마다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었고 이번 총선에서도 ‘우리 지역 사람이니까, 우리 지역 당이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찍어줘야 한다’는 의식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습니다. 물론, 절대 선이나 절대 악은 존재할 수 없겠지만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다수의 사람 눈에 ‘국회의원 배지를 달 자격이 없는 자들, 국회의원 배지를 달면 안 될 것 같은 자들’도 상당수 국회의원당선자 아니, 국회의원당선인의 영광을 안는 걸 보고는 ‘참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묘한 좌절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글쎄… 정치라는 게 워낙 오묘한 것이라서 저 같은 무지랭이는 잘 모르긴 하겠지만 온갖 부정과 나쁜 짓은 다 저질러놓고는 나 몰라라 하는 자들이나 제 밥그릇을 위해서는 의식도 양심도 없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자들은 제발 사라져줬으면 좋겠던데 그 또한 쉽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하… 이 XX는 안돼야 하는데… 저 X은 떨어져야 하는데…’ 하는, 조금은 유치한(?) 감정을 갖고 개표상황을 지켜보다가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저보다 애국심이 더 강한 사람들은 밤을 꼴딱 새며 개표결과를 끝까지 지켜봤다는 사실을 여기저기에서 듣게 됐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승리해 금배지를 달게 된 자들이나 그렇지 못한 자들이나 모두모두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하는 국민들의 ‘소리 없는 외침’을 가슴 깊이 새겨줬으면 좋겠습니다. 정치에서의 당선자 혹은 당선인은 그들만의 축제 혹은 그들만의 리그를 즐기는 사람들이 아닌, 온 몸과 온 마음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매우 ‘소중한’ 타이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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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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