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치?!

“김 기자님, 술 좋아하실 것 같은데 우리, 생맥주 한잔 하면서 얘기 나누면 어떨까요?” 방금 연극무대를 마치고 소극장을 나선 그에게는 어쩌면 시원한 생맥주 한잔이 간절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그와의 인터뷰는 급기야 메뉴가 삼겹살에 소주로 바뀌면서 밤 열두 시를 훌쩍 넘기며 계속 됐습니다.

1980년대 후반, 저에게는 특히 애착을 갖고 있던 취재꼭지가 하나 있었습니다. 전문직업인… 자신의 분야에서 오랜 기간 종사해오면서 나름대로의 실력과 전문성 그리고 명성을 쌓아온 전문가 혹은 달인들을 만나 심층인터뷰를 하는 코너였습니다.

그날 대학로에서 만난 사람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와 ‘관객모독’ 등으로 대표되는 연극연출가 기국서씨였습니다. 그날 밤, 연극에 관해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지만 “사실 연극은 영화에 비해 표 값을 세 배 아니 다섯 배, 욕심 같아서는… 열 배쯤은 받아야 해요”라며 웃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선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NG도 없고 ‘다시’라는 말도 존재할 수 없는 ‘연극’은 여러 편을 똑같이 복제해 뿌릴 수 있는 것 또한 아니기 때문에 아주 작은 실수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실제로 두 시간 이상을 무대에서 라이브 (Live)로 열연을 펼친 연극배우들은 파김치가 되게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연극하는 사람은 배고프다’라는 등식(?)이 아직까지도 성립되는 것은 적지 않은 안타까움입니다.

“들어가…” 경쾌한 음악소리와 함께 꼬마배우들이 무대에 등장하기 전 잠시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들려온 소리입니다. 무대 옆에서 지휘하던 여성 스타프의 헤드셋 마이크가 켜져 있었던 모양입니다. 관객석 여기저기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에 두 시간 반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몰입했습니다. 주인공 역을 맡은 성인배우들은 물론, 일곱 꼬마(?)배우들의 열연도 훌륭했습니다. 감칠맛 나는 감초 역을 멋지게 해준 조연배우들 그리고 무대 뒤에 숨어(?) 또 다른 열정을 보여준 밴드와 스타프들에 이르기까지… 모두모두 하나가 돼 전문연극인 못지 않은 멋진 모습들을 보여줬습니다. 외국인 관객 혹은 우리 말이 익숙지 않은 세대들을 위한 영어자막 또한 세심한 배려였습니다.

잘 만들어진 공연 덕분에 기분도 한껏 좋아졌고 문화사치(?)도 누릴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게다가 그리 큰 도움을 주지 않았음에도 팜플렛은 물론, 무대를 비추고 있는 협찬 로고들 속에도 ‘코리아타운’이 들어 있어 고마운 마음이 더해졌습니다. 공연수준도 높고 함께 하는 사람 기분도 좋게 만들어주는 이 극단과는 꾸준히 어깨동무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얼마 전 이 극단 임기호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공연예술이라는 것이 앞에서는 화려하지만 뒷면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우리 한인사회가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문화적 소양이 더 성숙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멋진 옷을 입고 멋진 공연을 보러 간 기억은 아이들에게 커다란 창조적 자산이 될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가족사랑에 대한 큰 감동을 받아 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라던 이야기가 새삼 떠올랐습니다.

19년 차 시드니 생활이지만 큰맘 먹지 않고는 문화생활을 할 기회, 심지어 시티에 나갈 기회조차도 흔치 않은 게 현실입니다. 지난 토요일 오후에는 호주한인극단의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을 핑계(?)로 오랜만에 시티 나들이를 했습니다.

예쁘고 멋진 공연에 기분도 좋았지만 함께 뮤지컬을 본 지인부부 네 팀도 “이대로 헤어지긴 아쉽다”고 마음을 모아 우리는 늦은 시간까지 소주 잔을 부딪치며 세상 사는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어쩌다 보니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생활… 드물게라도 일탈, 문화사치를 즐길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주말이었습니다.

 

**********************************************************************

 

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Previous article의사소통의 기술
Next article미셸 유의 미술칼럼 (17) 한국현대회화의 여명 밝힌 근·현대 화가 7인 김창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