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스마니아에서 두 번 놀랐다. 모나박물관 (MONA)의 규모에 놀랐고 중국인들이 너무 많아서 놀랐다. 몇 년 전 제주도의 외딴 곳에서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을 마주쳤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내가 처음 정착해 살았었던 20년 전의 타스마니아에 아직 갇혀 있어서인지 그들이 낯설었다. 그 당시에는 난민 정책의 일환으로 타스마니아 정부에서 땅을 받아 농사를 지었던 몽 민족이 주 아시아인들이었다. 시내에서는 매주 토요일 살라망카마켓에서 채소를 파는 그들을 볼 수 있었다.
호주의 다른 대도시와는 달리 백인들이 주류였던 호바트에서 다시 한 번 중국인들을 쳐다보게 된다. 이제 타스마니아대학의 유학생 대부분도 중국인 학생들이다.
동부해안 쪽에는 중국인들만을 위한 대규모 실버타운도 조성하고 있다. 중국에서 비행기로 날아와 실버타운 밖으로 한발자국 나가지 않고도 살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좋은 공기를 마시고 죽겠다는 의지에 남은 재산을 쏟아 붓는 것이다. 몇 주 전 타스마니아 정부는 공항 확장에 2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조용히 잠들어있던 섬이 들썩이기 시작한 것이다. 돈이 타스마니아 곳곳을 주물러 깨우고 있다.
호바트공항에는 중국인들이 많았다. 가방 찾는 곳에 설치된 TV에서 안내 물이 중국어로 반복된다. 아무데서나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지 말라는 주의 사항이다. 사고와 교통 체증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걸 보니 씁쓸한 웃음이 났다. 그런데 운전을 하다 보니 도로 반쯤 걸쳐 차를 세우거나 느긋하게 경치를 즐기며 천천히 운전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자주 눈에 띠었다. 매너를 교육시키고 해외로 보내지 하는 짜증이 드는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 땅에 먼저 왔다는 이유로 이들 관광객들을 평가하지는 않는지 의문이 들었다. 사실 누구나 처음 다른 문화와 공간을 접할 때 미숙한 행동이 나올 수도 있다. 한 두 사람의 실수를 한 나라의 책임으로 몰아붙일 수는 없다.
타스마니아 출신이었던 남편과 이곳에 살 때 우리 차에 누군가가 ‘God forbidden racial mix(신은 인종간의 결합을 반대한다)’라는 스티커를 붙여놓은 적이 있다. 이런 적대감은 낯선 것을 경계할 때 시작되는 것이다. 내 것을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중국인들과 함께 돈이 들어오는 것을 환영하는 사람들은 그 혜택을 직접적으로 받는 사람들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자기의 작은 터전을 잃게 될까 봐 불안해한다. 집값이 오르기 시작하고 관광객 수요가 폭등해 에어비엔비로 변한 집에서 세입자들은 내몰린다. 지금 세계적인 관광도시 곳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정부차원에서는 그들이 가져다 주는 교육 관광 수입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래서 호주인들 사이에 복잡하고 다중적인 감정들이 뒤섞이고 있다.
타스마니아붐이 절정인 지금이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타스마니아는 세계의 관심밖에 있었다. 다른 주에 비해 집값이 비교할 수 없이 쌌고 경제적으로 뒤떨어졌다. 주산업은 어업과 벌목업, 목축업이었고 젊은 사람들은 일을 찾아 본토의 큰 도시로 떠났다. 그런 타스마니아를 바꾼 큰 공헌을 한 사람이 바로 모나 박물관을 세운 데이비드 월쉬이다.
타스마니아의 왕이라고 불리는 그는 도박 사업으로 벌어들인 거액을 예술품에 투자하여 호바트에 박물관을 오픈한다. 내 주위 타스마니아 친구들이 거의 그의 사업체에서 일할 정도로 많은 지역젊은이들을 고용하고 있다.
모나는 빌바오의 구겐하임처럼 호바트의 상징이 되어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을 타스마니아로 불러들이는 계기가 됐다. 호바트뿐만 아니라 타스마니아 곳곳에서 예술 행사를 기획하여 세계 예술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모나박물관 입장료와 이벤트 수입의 세배에 달하는 지출이 개인의 돈으로 유지되고 있다. 몇 년에 걸친 아낌없는 투자를 계속하면서도 그는 모나를 세우기전엔 지역 공동체를 위해 자신이 한일이 없었다고 말한다.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었던, 어떤 급진적인 전시를 기획하던 상관없이 그는 보수와 진보 구별 없이 모든 타스마니아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
타스마니아 남쪽 우리 집 근처에 있는 대규모 체리농장을 2년 전에 중국 갑부가 구입했다. 그곳 관계자에 의하면 농장주인은 그 농장에서 오랫동안 일 해온 동네 주민들을 모두 해고하고 중국인 유학생들을 싼 급료로 고용하고 있다고 한다. 또 체리가 크고 깨끗해야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농약을 무지하게 친다며 절대 먹지 말라는 주의까지 했다. 어떤 특정 인종을 지적하며 비난하는 일을 범죄시하는 시어머니마저 근처의 다른 나무들과 농작물들이 피해를 입을까 봐 우려한다.
박물관 주인과 체리농장 주인은 같은 부자이나 돈을 다루는 방법이 다르다. 한 사람은 공동체에 나누고 한 사람은 공동체에서 빼앗아 간다. 한 사람은 나무를 심고 한 사람은 나무를 죽인다. 후손에 예술품을 남길 것인가 땅을 오염시키는 독을 뿌릴 것인가.
나는 가능하면 작은 나무라도 한 그루 심고 싶다. 인종에 관계없이 이 땅에 사는 우리 모두는 큰 신세를 지고 있다.
가끔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거나 연금을 받기 위해 재산을 빼돌리는 사람들을 본다. 내가 발을 뻗고 쉬게 해주는 땅에서 빌려 쓰는 만큼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민자이지만 호주에 살고 있는 나는 호주인이기도 하다. 주인 의식이 있으면 차별을 받는다는 생각도 없어질 것이다.
박지반 (자유기고가·문학동인 캥거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