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역대최고 급’으로 비가 많이 오긴 했었나 봅니다. 여기저기 크고 작은 나무들이 쓰러져있거나 아예 뿌리째 뽑혀 길을 막고 있었고, 개중 몇몇 녀석은 덩치가 제법 산만(?)했음에도 모진 비바람을 견디지 못한 채 길게 누워버렸습니다.
바짝 말라붙었던 시냇물들도 제법 졸졸졸 혹은 콸콸콸 소리를 내며 힘차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조금 높은 지대로 밟고 올라갈 수 있도록 지지대 역할을 하며 물가에 놓여있었던 큰 통나무 하나는 아예 흔적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난주 토요일 아침, 우리 산행팀이 오랜만에 홈그라운드 Berowra로 복귀해 The Great North Walk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출발점부터 이번 비바람에 쓰러진 나무들이 곳곳에서 길을 가로막고 있었고, 여기저기가 질퍽질퍽하고 미끄러워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야 했습니다.
Berowra 지역은 다행이 산불피해는 입지 않았는데 이번 비는 피해갈 수 없었나 봅니다. 몇 날 며칠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된 강풍과 폭우 그리고 천둥번개는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사람들도 사람들이지만 그곳에 사는 새나 짐승들도 엄청난 공포와 추위에 떨었을 겁니다.
한동안은 재난 급 산불이 계속되는데도 비가 안 와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는데 이번에는 주체할 수 없는 비 때문에 또 다른 어려움을 겪은 겁니다. 아무리 센 척, 잘난 척을 해도 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 인간… 무슨 일에서든 모자람도 넘침도 없는 적절함이 딱 좋은데, 그걸 미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해볼 수가 없는 겁니다.
한동안 줄기차게 내린 비 덕분에, 목이 잔뜩 말라있던 우리 집 ‘푸름이’들도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그 동안은 ‘2단계 절수조치’ 때문에 텃밭이며 화단에 호스로 물을 줄 수 없어 직무(?)를 소홀히 했습니다. 오전 열 시 이전 혹은 오후 네 시 이후에 물뿌리개나 양동이로만 물을 줄 수 있는 규정 때문에 물 주기가 쉽지 않았던 탓입니다.
이제 충분한 비가 왔으니 절수조치가 완화될 수도 있겠지만 호스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은 어딘가 효율성이 좀 떨어지는 조치인 듯도 싶습니다. 쪼그리고 앉은 채 물을 양동이에 받아 그걸 다시 물뿌리개에 옮겨 일일이 꽃이나 채소에 줘야 하는 일은 ‘아이구! 허리야!!”를 연발하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물을 주는 건 오히려 호스로 주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물을 쓰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차라리 그런 식 말고 호스를 사용하게 하되 물을 줄 수 있는 날을 홀수 혹은 짝수 날, 아니면 월 수 금 또는 화 목 토 이렇게 정해주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경제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실제로 물 주기가 번거로워 텃밭에서 채소 길러 먹고 꽃 가꾸는 일을 포기한 사람들이 주변에도 적지 않습니다.
한동안 퍼부은 비 덕분에 잔디들도 살판(?)이 났고 각종 잡초들도 제세상(?)을 만났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되겠다 싶어 지난주 금요일 아침, 극성부부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습니다. 한번 시작하면 최소 세 시간은 걸리는 중노동… 우리는 덥수룩하게 자란 앞 뒷마당 잔디들을 모두 깎고 끄트머리까지 다듬은 후 잡초제거 작전까지 모두 수행했습니다. 가끔씩은 “우리도 잔디 깎는 거 돈 주고 맡길까?” 하다가도 아직은 우리 힘으로 해낼 수 있다는데 대해 작은 감사함을 느끼곤 합니다.
그렇게 힘든 노동을 하고도 힘이 남아(?)돌아 아내와 저는 그 길로 GYM을 찾았습니다. 두 시간여를 그곳에서 보내고 돌아오는 길… 둘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우리, 오늘 고생 많이 했는데 오랜만에 와규 먹고 힘낼까?”
불판 위에서 맛있게 익어가는 고기에 술 좋아하는 사장을 위해 코리아타운 사람들이 생일선물로 사준 레미 마르땡 (Rémy Martin) 몇 잔을 곁들이니 절로 ‘아무개 안 부럽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두말할 나위 없는 ‘소확행 (小確幸)’의 시간입니다. 잔디를 깎고 난 후 사방에서 풍겨오는 싱그러운 냄새… 결코 놓을 수 없는 작지만 큰 행복과 감사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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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