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삼을 입은 곰이
두 눈을 뜨고 잠수를 한다
작은 물방울 우르르 따르며
날 선 털들 물을 밀고 들어서는
얼음보다 깊은 한지의 허기
장작을 패고 버섯과 나물을 말려
산골의 긴 겨울을 채비하던
행자승 마른 눈빛
떨어진 감을 줍던 새벽 발자국
눈을 떠
불경소리 따라 흘러나온
터진 감 냄새 맡는다
곰의 불전은 빈속의 바닥
심장 뜯기는 빙처의 예불 위해
어금니로 목탁을 치는
숨길마다 터지는 담즙 내
우리는 왜 살려고 할 때마다
숨을 참아야 할까
탁발하고 돌아가는 장삼자락
작은 물방울 우르르 따르며
날 선 털들 물을 털고 일어서는
허기짐보다 깊은 빈 길의 구도
시에 대한 해석
‘모니터 속의 흰곰에게’ 붙여 “모든 건축가는 반드시 훌륭한 시인이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 독창적인 해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한 말이다. 이 문장을 조금 뒤집으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들어있다. 모든 시인은 반드시 훌륭한 건축가이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한 독창적인 글집을 지어 누구든 깃들어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거대 담론을 감히 옮겨보았다. 느지막이 시작한 글쟁이의 포부라고 보는 것이 더 맞는 말이다. 가까이는 가족과 일상에서 만나는 친구들 더 멀리로는 바다 건너까지, 실로 나는 맑은 유리창이나 달빛 스미는 창호지 문이 되어 세상을 같이 듣고 내다보는 즐거움을 나누고 싶다. 글의 처마를 너르게 내어 그늘에서 쉬어가라는 선배시인들의 발자국을 떠메며 닮고 싶은 것이다. 그들은 글의 건축 재료를 주로 어디서 찾을까. 다들 나름대로 몇 개의 글 창고가 있을 법하다. 오래된 재료를 뒤적거리다 마땅한 것을 찾으면 등피를 닦고 심지를 돋아 희미한 불을 조심스럽게 자판 위로 옮기는 작업, 꿈에서도 그리하였을 터니 얼마나 다양한 재료들이 쌓여 있을까. 그 중에는 수백 년이 지난 골동품과 다름없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어느 더운 여름날 우물 속 냉한 수박을 건져 쟁반 위에 가지런히 쪼개어 놓기까지 눈이 고른 손길과 기쁨도 당연히 있을 법하다. 어린 날 인근 산에는 절에서 크는 어린 중이 있었다 잔심부름을 하면서 마을 학교를 다니다가 중학교에 진학하자 세속과 다름없이 도시락을 싸 들고 버스나 기차를 타고 다녔다. 돌아가는 집이 산속에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어른스님과 나많은 보살님들이 엄마 아버지를 대신했다. 절이라고 부르기엔 몹시 아담해서 예불 올려드리는 법당 한 칸을 빼면 남은 공간은 여느 민가처럼 단출하고 오래된 한옥이었다. 주말이나 방학이 되면 탁발을 하기 위해 읍내나 한적한 마을에 조용히 내려오곤 한다. 그럴 때면 한 달에 한 번쯤 성당에 나가는 우리 집에도 꼭 들렸다. 얼굴이 익숙해질 무렵, 사월 초파일 연등행사가 있었다. 작은 읍은 한 달 전부터 꽃등으로 들썩거린다. 동네 사람들은 봄놀이 겸 높은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굵은 물을 보자고 떼를 지어 절에 올라갔다. 더러는 성급한 물맞이도 했다. 절밥을 맛있게 축을 내고 산으로 동네로 뿔뿔이 헤어지는 시간에 절 마당을 어슬렁거리다 푸른 중과 마주쳤다.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 금새 친해졌다. 학교가 파하고 긴 오후에는 혼자 절에 올라가곤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손에 뭔가를 들려주셨다. 복을 비는 마음이었을 텐데 내려갈 때도 나는 빈손이 아니었다. 산채나 버섯은 귀한 반찬이 되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버스를 타고 서너 정류장을 지나 바로 오르는 도서관 같은 절이었다. 사람 드문 절집 좁은 툇마루에서 숙제를 하거나 등을 기대어 오래 이야기하곤 했다. 아담한 절 마당에 여럿 서 있는 감나무 진한 그림자 아래 고이는 서글픈 눈빛과 낮은 돌담 위로 숭숭 구멍 뚫린 바람이 드나드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늘 진 뒤란엔 귀퉁이가 나간 크고 작은 독들 시골 할머니처럼 들쑥날쑥 앉아있던 것이 선하다. 노구의 보살님들은 사춘기에 눈을 뜨는 아이들이 그저 밤톨 같다 생각하셨는지 내버려두셨다. 밥상에 같이 앉아 밥을 먹고 내려오기도 했다. 방학이 되면 성적표를 보여주거나 책을 바꿔가며 읽기도하고 오랫동안 보지 못할 때는 독후감을 써서 마루에 두고 돌을 올려놓고 오기도 했다. 조금씩 더 자라 어느 해 여름방학 때였을 것이다. 보살님 방에서 책을 읽다가 낮잠이 들었다 깨보니 사위가 어두워져 부랴부랴 집에 가는 버스를 놓칠까 산길을 뛰어내려왔다. 워얼래? 그만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시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없어 파초 잎사귀 밑에 쪼그리고 앉아 비를 피했다. 옷은 이미 다 젖어 입술이 파래지는지 떨리기 시작하는데 어린 누이 부르듯 이름을 크게 부르며 허겁지겁 뛰어내려오는 발소리. 지우산을 두 개 들고 그 비를 다 맞고 내려온 것이다. 반가운데 화가 치밀어올랐다. 건네는 우산을 땅바닥에 팽개치며 쓸데없는 짓은 왜 했느냐고 꽥 소리를 지르고는 빗길을 뛰어 내려왔다. 멍하니 오랫동안 서 있었겠지…. 그 이후로 절에 올라가지 않았다. 탁발하러 들리지도 않았다. 들리는 소문에 장학생으로 열심히 공부해 큰절로 갔다고 한다. 어딘가의 좋은 풍경이 되어 계실 것이라 생각한다. 낡은 고리짝 기억이지만 그때 파초 잎사귀 아래 쫄딱 비 맞은 계집아이는 훌쩍 커버려 막막한 자판기 앞에 마중물처럼 고여 있곤 한다. 퇴근 길 아버지를 단숨에 마중 나가던 딸아이나 한복집 따라갔다가 헝겊쪼가리가 탐이 나 주머니에 몰래 넣어가지고 오던 아이, 내 글에 자주 나오는 설익은 계집아이들이다. 유년을 열어놓고 사는 서너 개의 자화상이다. 내 시 구석마다 외가 집 식구나 감나무나 절 마당이 가끔 묘사되는 건 따뜻하고 좋은 마음이 그 벽에 아직 훈훈하게 걸려있기 때문이다. 시를 짓는 일은 집을 짓는 거나 다름이 없다. 여행을 떠나면 문학냄새보다는 건축향기에 관심을 가질 때가 더러 있다. 돌아와 기억을 더듬으면 그 면면에 새겨진 자국들과 굵고 가는 선들에게서 끊임없이 부수고 짓는 어떤 수고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복원사처럼 한 겹 한 겹 벗긴 것을 입어보고 걸치며 내가 들어 사는 마음의 풍경을 치유하고 더러는 글감으로 다진다. 맑은 작가의 글이나 따뜻한 문장들이 힘든 시절의 누군가에게 두터운 벽이 되어준다면 그보다 더 좋은 바람막이가 어디 있을까. 건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받은 독창적인 건축가들을 무척 존경한다. 허나 시집을 잘 짓는 시인을 더 부러워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글 쓰는 일이 더구나 좋은 시를 쓰는 일이 만-만-치 않는 먼 길이기 때문이다. 윤희경 (시동인 캥거루 회원 / 미네르바 등단 / 시와표현·미네르바· 한국동서문학 다수 발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