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울려 퍼지는 소리는 비디오를 통해 나와서 인지 운동장에서 들리듯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나 눈에 들어오는 모든 점들이 사람들의 머리라는 설명에 갑자기 무서웠다. 마스게임과 카드섹션으로 만들어지는 그림들이 모두 사람들의 손과 발로 이뤄지는 인간그림이다. 수 만 킬로미터 떨어진 시드니 한복판에서 작은 화면을 통해 보는 그 순간에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해전술, 말로만 듣던 ‘사람들의 바다’로 이뤄진 힘을 보여주는 그들의 술수에 시청자들은 넋을 놓고 있다.
북한에 다녀 온 친지가 보여준 몇 가지 경축일 행사 비디오를 보면서 놀랍고 두려운 감정이 전신을 휘돈다. 멋지다는 생각보다 어쩜 사람이 저렇게 기계처럼 움직일 수 있을까 싶어, 보고 있는 우리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실수를 하면 사람냄새가 나는 법이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들은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가 실수를 해도 너그럽게 봐주는 사람들이 좋다.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선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아서인지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 이는 나만 느끼는 것일까.
고등학교 2학년때였다. 무려 반년 동안 땡볕에서 마스게임 연습을 했다. 전국체전이 춘천에서 열리는 탓에 최고의 작품을 만들고 싶어하던 사람들의 아이디어였다. 여고생이라는 이유로 하기 싫다는 우리를 담임선생님은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며 설득했다. 10월에 들어서는 거의 오후 수업을 전폐한 채 마스게임에 열중했다. 당시 1만명 정도 들어가는 공설운동장에서 여고 1, 2학년 학생들이 거의 다 참여했다.
우리, 1600여명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한 사람은 겨우 대학교 4학년 체육과 교생선생님이었다. 그는 친구 오빠였다. 미남의 그에게 모두가 호감을 가졌다. 바람이 불어도 웃는 낭랑 18세 들은 그의 눈밖에 나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그가 내뿜는 마성의 힘이었는지 그의 호령 하나에 우리의 손과 발은 기계의 일부가 되었고 우리의 머리는 색을 맞추는 도구가 되었다.
친구 집으로 가면 그는 어느새 친구의 잘난 오빠로 돌아와 있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우리들을 보고 ‘정부의 기계’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벌거지라고 불렀다. 참 자조적인 말이었다. 마이크를 잡고 스탠드가 좁다고 움직이는 그의 지도력도 개인으로 돌아오면 젊은 청년일 뿐이었다.
한창 세상을 향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던 대학생에게 여고생들을 가르치라고 명령한 교장선생님 이하 선생님들의 발상을 일개 교생선생님은 무기력하게 발아들이며 체제에 길들여 갔던 셈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렇게 우리는 삶의 요령을 터득해가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전체주의에 길들인 박정희 대통령시대여서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했었다. 그 몇 년 전, 중학교 1학년 담임이 하루 저녁, 친구들과 술 마시며 한 말이 잘못되어 간첩으로 연루되었다. 그도 또한 중학교의 우리에겐 우상이었다. 하지만 ‘정부 비방은 간첩죄’라는 등식에 길들였던 우리는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다.
정부가 하는 것은 무조건 잘하는 것으로 여기던 흑백이론의 결과물들이었다. 그러기에 한창 사춘기에 자신을 감추고 비밀주의로 세상을 훑어볼 나이의 여학생들에게 비키니와 흡사한 붉은 색의 마스게임 복은 모멸감까지 들었다. 치마 길이가 무릎 위로 올라가면 정학을 주던 당시의 세태에서 팬티라인의 마스게임 복을 본 우리는 눈을 의심했다. 우리의 반발은 엄청 심했다. 행사 일주일을 앞두고 마스게임을 보이콧 한 회장과 부회장, 각반 반장들은 이 일로 사흘을 내리 소양교육을 받는 등 정권의 하수인으로 교정되었었다.
그러한 마스게임이 88올림픽을 끝으로 사라졌는지 잘 모르겠다. 한국을 떠난 이래 한번도 그 같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기에 말이다. 이곳은 그런 일이 거의 없다. 요즘에는 자발적으로 학생들이 퍼포먼스를 위해 자신들이 만들지만 아주 소수의 인원들이 참여하기에 거대한 그림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북한의 마스게임을 보면서 온 팔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경험하곤 집단의 파워에 전율하였던 거다. 지난 반세기 동안 잊고 있었던 과거의 흑백사진들을 보는 느낌이었다. 획일적인 잣대로 세상을 편가르고 우위에 선 자들이 지배하려는 사회에 대한 회의가 나를 떠나게 했음을 기억했다.
그 자리를 떠나는 내 등뒤로 여전히 비디오에서는 북한사람들의 기계화된 율동들이 이어지고 다양한 그림들이 로켓을 만들어 쏘는 장면까지 만들어낸다. 그네들 인생도 어쩌면 색색의 다른 종이로 벌이는 그들만의 마스게임이 아닐까? 혹시 내가 그것을 그리워하고 있지나 않는지 두렵다.
장미혜 (수필동인 캥거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