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즐거움

물 빠지는 시간도 오후 2시 55분으로 좋고, 물이 완전히 빠졌을 때의 물 높이도 0.19미터에 불과했으니 그야말로 소라잡기에는 더없이 좋은 최적의 조건이었습니다. 3개월 전 지인들과 그곳을 찾았을 때는 엄청난 폭우 뒤끝이라 바닷물까지 온통 커피 색으로 변해 있었던 탓에 단 한 마리의 소라도 만날 수 없어 아쉬움이 무척 컸었습니다.

부푼 가슴을 안고 20여분을 걸어 우리의 소라사냥터(?)에 도착했지만… 이번에는 강풍이 문제였습니다. 거짓말 안 보태고 제대로 서있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바람이 세게 불어 바닷물이 연신 거칠게 출렁이고 있었습니다. 물이 아무리 많이 빠졌어도 파도가 끊임없이 몰아치는 통에 시야가 흐려져 녀석들의 모습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아내와 저는 열심히 바위틈을 뒤졌습니다. 그렇게 건져낸 녀석들 중 법정규격 7.5센티미터가 안 되는 꼬맹이들은 다시 바다에 던져준 후 우리는 소라 스물아홉 마리를 배낭에 챙겼습니다. 소라잡기 후 낚시도 좀 해볼 요량이었지만 바람이 너무 세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년 전 이맘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그루퍼 세 마리를 포함, 물고기 풍년을 이뤘었는데 역시 세상 모든 일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닌 모양입니다.

이번에는 물때도 좋고 물 높이도 좋아 소라랑 물고기를 많이 잡아서 함께 오지 못한 좋은 사람들에게 나눠주려 했는데…. 문득 제 주먹만한 큼직큼직한 녀석들을 수백 마리씩 쉽게 만날 수 있었던 옛날이 그리워졌습니다. 여기도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아니면 수많은 사람들이 녀석들의 씨를 말려버린 탓인지 요즘은 녀석들 얼굴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음 날에도 강풍은 여전했고 오후시간에 우리의 연어사냥터(?)를 찾았지만 바람이 너무 세서 낚싯대를 던지기조차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모래바람이 계속 얼굴을 때려서 바다 즐기기도 이내 포기, 우리는 이틀 동안 먹는 걸로 즐거움을 대체했습니다. 그리고 여행 3일째 되는 날, 그나마 바람이 조금은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낚시하기에는 좋은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야! 저기 좀 봐봐!” 아내의 말에 고개를 들어보니 저만치에서 돌고래 떼가 신나게 놀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닌, 최소 50마리는 돼 보이는 엄청난 무리의 녀석들이 열심히 파도를 타며 놀고 있었습니다. 서핑을 위해 나온 사람들도, 바다 구경을 나왔던 사람들도 모두모두 뜻밖의 돌고래 쇼(?)에 넋을 놓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30여분을 신나게 파도타기를 즐기며 놀던 녀석들이 유유히 그곳을 떠났고 우리는 낚싯대를 펼쳤습니다. ‘안 그래도 바람이 센데 돌고래 떼까지 휘젓고 갔으니 물고기 잡기는 틀린 것 같다’며 낚싯대를 최대한 멀리 던져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낚싯대를 한 대씩 붙들고 의자에 앉아 본격적인 ‘바다 멍’ 즐기기에 들어갔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지평선, 거리에 따라 달라지는 바다의 색깔, 우리 앞에 거의 와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어디로 눈을 돌려도 힐링거리들이 가득했습니다. 우리 바로 옆에는 다섯 살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아빠와 함께 모래성을 열심히 쌓고 있습니다. 가끔씩은 아빠와 함께 하나가 돼서 모래 위를 뒹구는 모습이 참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우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그 또래의 남자아이 하나가 아빠와 함께 연날리기에 열심입니다. 지난 4월에는 훈이와 봄이도 이곳에서 모래성을 쌓고 파도와 밀땅을 하고 연날리기를 하며 즐거워했습니다.

“어?” 조용히 앉아 있던 아내가 힘차게 릴을 감기 시작했습니다. 바람과 돌고래 때문에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뜻밖의 연어를 잡은 겁니다. 그리고 몇 분 후, 이번에는 제 낚싯대가 힘차게 흔들렸습니다. 기분 좋은 릴링 끝에 두 번째 연어가 제 앞에서 퍼덕거렸습니다. 기대 외의 성과를 냈으니 이제 그만 철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비치 위에 꽂아뒀던 낚싯대를 향해 아내가 전력질주를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날 두 시간도 채 안 되는 동안에 세 마리의 연어를 잡았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마음 먹고 계획한 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뜻밖의 즐거움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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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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