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리의 개가 우리 집에 머물게 된 이유

‘Of course’는 그녀가 보여준 존중과 신뢰에 대한 본능적인 대답이었고…

우리 가족이 시드니에서 와가와가로 이사 온지 일 년하고 이 개월이 지나던 며칠 전이었다. 가족이 집을 비우는 석 달간 자기가 기르고 있는 두 마리의 개를 우리 집에서 돌봐주기를 부탁하는 A의 전화를 받았다. 집으로 와서 개를 돌봐주기로 했던 이가 갑자기 사정이 생겼고 이런저런 이유로 당장 사람을 구하기에는 시간이 없다고 하길래 나는 “물론이야”라고 대답했다.

 

01_우리 집을 데코레이트 해주고 싶다고 제의했던 A가…

시드니의 방 두 개 유닛에서 두 딸과 10년을 렌트로 살았던 우리 부부는 진로를 바꾸는 딸의 학업문제로 시드니에서 멜번 방향으로 다섯 시간 거리인 와가와가에 생각지도 않았던 집을 구입하게 되었다.

시드니에서 우리 형편에는 가질 수 없는 집을 온갖 머리를 짜내어 마련하고는 우리 부부의 탁월한 선택과 용기에 스스로 감동받으면서 지내왔던 터였다.

물론 경제적인 수입과 언어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긴 했지만 어딘들 그 고민을 벗어날 수 있었겠는가? 이곳은 단지 조금 더 불편할 뿐이리라.

그런데 이렇게 이곳으로 이사 오기 일 년 전에 우리 부부가 했던 홈 청소의 고객 중 한 집이었던 A가 어느 날 우리 집을 데코레이트 해주고 싶다고 제의했던 적이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실내장식을 전공했다는 A는 그 동안 자신의 삶의 부분들을 나에게 많이 보여주었다. 아껴 쓰던 자기의 가구를 비롯해 다양한 것들을 나에게 주기도 했으니 나의 집을 꾸며주고 싶어 하는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02_와가와가는 아발론에서 자동차로 6시간이 넘는 거리였지만

그러나 거실 한 켠에 커튼을 치고 자리한 큰 딸의 침대, TV, 식탁으로 비좁아진 그곳을 보여도 될 만큼 나는 편하지가 않았다. 또 그녀가 내게 주었던 의자와 가구들은 우리 유닛에는 커서 맞지 않아 차고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중이라 그 모습도 A가 베풀었던 호의에 짐짓 실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기에 집을 옮기게 되면 부탁하겠다며 당시의 위기를 모면했었다.

그리고 이사하기 한 달 전, 일을 그만 두겠다는 말을 건네면서 예전에 그녀가 나에게 했던 제안은 아예 잊어버렸기를 바랬다. 또 기억을 한다고 해도 와가와가는 그녀가 살고 있는 아발론과는 자동차로 6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그러나 자신의 말에 그다지 책임질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나의 예상을 넘어 그녀가 우리가 이사하기 하루 전 날 전화를 해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일주일 뒤에 자신의 남편과 우리 집을 방문해서 집을 데코레이트 해 주겠다고 하면서 내가 뭐라 말도 하기 전에 와가와가의 호텔을 예약해 놨으니 자신들의 잠자리나 식사는 일절 준비하지 말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03_두 사람은 리빙룸과 다이닝룸을 부지런히 오가면서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남편과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 와가와가까지 오겠다니, 그것도 우리 집에서 자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때문에 와가와가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이 더 불편해서 이사하는 일보다 그 부부의 방문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그리고 그녀는 정확하게 자신이 약속했던 날, 남편과 디스플레이할 다양한 색상의 천들과 인조화초들을 가지고 방문하였다. 두 사람은 리빙룸과 다이닝룸을 부지런히 오가면서 소파와 데코테이블, 책상과 책장의 위치, 화초와 스탠드 촛대들이 창문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옛날 그녀의 리빙룸을 이곳에다 옮겨놓은 듯이 만들어놨다.

특히 남편이 나이 들수록 운동이 중요하다며 만류하는 나와 딸들의 원성을 뒤로한 채 다이닝룸에 신주단지처럼 모셔 놓은 헬스기구를 뒷가든의 파골라 아래로 보내버린 것도 A의 설득으로 내린 명쾌한 결정이었다.

그렇게 집이 꾸며지고 우리는 다이닝룸에 앉아 리빙룸의 창을 통해 보이는 드라이브웨이와 다이닝룸의 유리문을 통해 보이는 뒷가든의 작은 풍경을 바라보며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를 수없이 중얼거리게 되었다.

 

04_녀석들은 내 집 리빙룸에서 여행 떠난 가족을 기다리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그 중얼거림이 지겹지 않은 것은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가구의 배열이 주는 편안함, 그리고 거기서 오는 쉼을 느낄 때마다 지난 날 내가 생각 없이 했던 말들에 나는 얼마나 책임을 다했는가를 어김없이 되뇌어보곤 하기 때문이다.

개를 돌보는 ‘예스’라는 사인을 보내고 작지도 않은 개 두 마리가 우리 가족이 잠자는 공간들을 제외한 온 집안을 다닌다 생각하니 쉬운 일이 아닐 것임을 알았다.

그러나 데코레이트를 마치고 시드니로 돌아가는 A에게 진심을 담아 “네 은혜를 잊지 않을게”라는 인사를 건네면서 막연히 또 이제 만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기억에서 ‘Of course’는 그녀가 내게 보여준 존중과 신뢰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나의 본능적인 대답이었다.

앞으로 A가 생각날 때마다 빚을 조금은 갚았다는 안도감이 들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지만 빚진 마음은 앞으로도 이곳에 살아가면서 관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한 희미한 해답을 얻은 것도 같다.

자기들의 새 옷과 새 목줄, 새 이부자리까지 총동원하여 어제 도착한 두 녀석들… 그 녀석들은 지금 그녀가 내게 만들어준 내 집 리빙룸에서 창문을 바라보면서 여행 떠난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글 / 정혜경 (글벗세움 회원·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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