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부터 야심 차게 준비했던 빅토리아주 하이컨트리 14박 15일 연말연시 여행계획이 졸지에 꽝이 돼버렸습니다. 그 동안 꾸준한 안정세를 유지해왔던 시드니의 코로나19 방역망이 노던비치에서 갑자기 뚫리더니 확진자 수가 계속 늘어났고 여행 출발을 불과 일주일 앞둔 상태에서 빅토리아 주정부가 NSW주를 향해 주경계를 굳게 닫아버렸습니다.
멘붕… 시간적, 금전적, 정신적 손해와 더불어 우리 네 부부, 여덟 명은 한 동안 망연자실한 상태로 지냈습니다. 그러던 며칠 후 “황금 같은 휴가기간을 이대로 흘려 보낼 순 없다. NSW주 남쪽지역이라도 짧게 다녀오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고 급하게 새로운 여행계획이 수립됐습니다.
그렇게 전격적으로 이뤄진 베이트먼스베이와 이든에서의 5박 6일 여행… 말 그대로 꿩 대신 닭이었지만 그 기간 동안 우리는 충분한 휴식과 힐링과 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본시 여행이라는 게 떠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행복한 것이지만 어렵게 재창출된 여행이었기에 순간순간이 우리에게는 하나같이 고맙고 소중했습니다.
마음이 통하는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함께 얘기하며 웃고 떠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즐거움이었습니다. 5박 6일 동안의 1400킬로미터가 넘는 긴 주행거리가 결코 지루하지 않았고 모두 거기서 거기일 것 같았던 바다의 모습들도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어복도 넘쳐나서 회를 질리도록(?) 먹었고 기름에 튀기고 오븐에 구워낸 물고기도 먹다 먹다 지칠 정도였습니다. 낚싯대로 잡기는 쉽지 않은 돌문어도 얼떨결에 두 마리나 건져 올렸고 전복이며 소라, 성게도 어지간히 먹을 수 있었습니다. 직접 따지는 못했어도 굴 농장에서 갓 캐낸 굴 또한 우리의 식탁을 감사와 풍요로 가득 채워줬습니다.
여행의 즐거움… 서로를 위하고 챙겨주는 마음이 있기에 어디를 가든 무엇을 먹든 항상 즐거움과 행복이 넘쳐날 수 있었습니다. 서로서로 앞장서서 준비를 하고 너나 할 것 없이 소리 없이 뒤에서 이런저런 궂은 일들을 해내기 때문에 함께 하는 즐거움은 더더욱 커질 수 있는 것입니다. 얼른 코로나19가 완전제압 돼서 언제 어디로든 기분 좋은 여행을 맘껏 떠날 수 있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다릴 떨릴 때 말고 가슴 떨릴 때….
정작 내 새끼들 예뻤을 때는 모르고 지냈으면서 남의(?)새끼들한테는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루하루가 다른 두 녀석은 그야말로 보고 또 봐도 보고 싶습니다. “든이 뽐이 차일드케어 끝나고 잠깐 들러서 얼굴 좀 보여주고 가.” 가끔 딸아이에게 하는 주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딸아이 차가 우리 집 앞에 잠시 멈춰 섭니다. 이른바 ‘드라이브 스루’ 만남… 그렇게 잠시 잠깐 동안 녀석들과 얘기를 나누고 손을 맞잡는 것만으로도 보고픔의 갈증은 어느 정도 해소됩니다.
며칠 전에도 녀석들이 보고 싶어 똑 같은 주문을 넣었고 그날은 할머니 할아버지 집 앞에 도착한 에이든과 에밀리의 강력한 요구로 두 녀석이 차에서 내려 우리에게 달려왔습니다. 뭐가 그리도 좋은지 쉴 새 없이 재잘재잘… 두 녀석은 번갈아 가며 할머니 할아버지 무릎을 차지했습니다.
이제 37개월이 돼가는 에밀리는 지 엄마를 닮아서 무인도에 갖다 놔도 걱정이 없을 정도로 당당하고 멋진 여장부(?)의 기개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제 3개월 남짓 후면 여섯 살이 되는 에이든은 다음 달에 우리 동네 초등학교 킨디에 들어갑니다. 파란 셔츠에 빨간 모자를 쓴 귀여운 녀석의 모습이 벌써 눈에 선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더 놀고 싶은, 가기 싫은 눈빛으로 우리 집을 나서는 녀석들에게도 30분이 채 안 되는 시간은 우리처럼 턱없이 짧기만 했을 겁니다. “에이든 에밀리, 또 놀러 와!” 소리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빠이빠이를 하는 두 녀석은 분명 우리의 가장 큰 행복입니다. 2021년 한 해 동안에도 우리는 기회가 되는 대로 많은 여행을 다닐 것이고 에이든 에밀리와 함께 하는 시간도 최대한 많이 만들 것입니다. 2021년 우리의 두 가지 행복 키워드는 바로 에이든과 에밀리 그리고 여행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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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