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이번에는 애초부터 아무도 안 만나고 오롯이 우리 둘만의 시간을 가지다가 올 생각이었습니다. 3주의 여행기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다른 나라에서 보내고 한국에는 짧게 며칠만 묵게 될 상황인지라 더더욱 그랬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오래 전 스치듯 던졌던 저의 한 마디를 잊지 않고 있다가 끈덕지게(?) 연락을 해왔습니다.

결국 우리는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 종로의 한 순대국집에서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소주잔을 부딪치며 4년 만의 해후를 담아내던 순간 그가 뜬금없이 한 마디를 건넸습니다. “형님, 제가 형님과 형수님을 위해 나팔을 한 곡 불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여기서?”라는 저의 반문에 그는 순대국집 주인은 물론, 열 개 남짓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연주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에이, 설마…’ 했지만 그의 눈빛은 진지했습니다. 결국 협의(?) 끝에 우리는 그곳을 나와 근처의 전통찻집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밤 열 시가 다돼 가는 시간이었고 찻집에는 부부로 보이는 한 팀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는 대뜸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형님과 형수님을 위해 여기서 나팔을 좀 불려고 하는데 허락해주시겠습니까?”라고 손님과 주인에게 양해를 구한 뒤 배낭에서 나팔이며 미니스피커를 꺼내더니 이내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먼저 제 아내를 위해 준비한 곡이라며, 임영웅이 리메크해 많은 사랑을 받은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를 멋들어지게 불었습니다. 터져 나오는 박수갈채와 환호… 이어 저의 영원한 18번 김추자의 ‘무인도’ 나팔연주가 전통찻집을 가득 메웠습니다. 참 대단한 열정입니다. 취미 삼아, 가끔은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나팔을 분다고는 했지만 우리를 위해 낯선 사람들 앞에서 깜짝 연주를 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 후 태국 치앙마이, 치앙라이 여행을 마치고 시드니로 돌아오는 날, 그는 우리가 묵고 있던 호텔 앞을 아침 일찍부터 지키고 있다가 함께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희한하게(?) 생긴 커피 내리는 기계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금빛 찬란한 에스프레소 잔에 세상에 하나뿐인 커피를 우리에게 내려줬습니다.

정길남… 그와의 인연은 30년 전 시작됐습니다. 수석기자와 데스크로 그와 저는 참으로 많은 일들을 해냈습니다. 이후 그는 사업가로 변신했지만 지금도 우리에게 ‘형님, 형수님’이라는 호칭을 쓰는 유일한 후배기자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에게만은 편안하게 말을 놓고 지냅니다.

기자시절 못지 않게 사업능력 또한 뛰어나 한때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했지만 믿었던 후배가 회사 돈을 갖고 달아나 엄청난 손해를 본, 저 못지 않게 찌질함이 가득한 친구이기도 합니다. 오랜 동안 투병생활을 하시던 어머님을 보내드린 지 채 한 달도 안된 상황에서도 우리를 위해 그 같은 이벤트를 마련해줬다는 면에서 저는 무한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이번 여행은 우리의 결혼 40주년을 담은 시간이었습니다. 발길 닿는 곳마다, 눈길 스치는 곳마다가 행복이고 감사함이었습니다. 스위스 융프라요흐 꼭대기에서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의 눈보라를 온몸으로 막아냈던 추억, 늘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며 그리워해왔던 에펠탑을 온몸으로 감싸 안았던 감동 그리고 바티칸시국을 비롯한 이탈리아의 여러 유적지들은 어린 시절 교과서 속 그대로였습니다. 치앙마이, 치앙라이에서 만난 태국사람들의 선한 눈망울과 손길, 예쁜 사원들도 잊지 못할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행복한 순간들을 함께 해줬던 여러 명의 가이드들… 물론, 똑 같은 일, 똑 같은 이야기를 10년, 20년 혹은 그 이상 해왔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그들의 하나 같이 똑 부러지는 일 처리 솜씨는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곳곳의 역사와 이야기를 술술 막힘 없이 상세히 풀어내는 그들에게 박사학위는 절대 무색하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소중한 의미를 담았던 우리의 결혼 40주년 여행은 그렇게 고마운 사람들, 대단한 사람들 덕분에 행복함과 감사함의 크기를 무한대로 늘려줬습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을 통해 우리의 여행중독 증상도 한층 더 심화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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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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