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행복

한자어 ‘사람 인(人)’은 ‘사람은 혼자 살기보다는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더불어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혼자서도 얼마든지 씩씩하고 즐겁게 잘 사는 사람들도 많긴 하지만 말입니다.

우리도 10년 전쯤 그런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시드니 근교 듀랄 (Dural)에 5에이커짜리 땅을 사서 속세(?)를 조금 등지고 사는 것…. 실제로 아내와 저는 한동안 그쪽 동네를 샅샅이(?) 훑고 다녔는데 결국 ‘너무 외로워 안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30배 가까이 되는 큰 땅을 직접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도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옆집들과는 왕래나 대화가 많지 않지만 더 나이가 들면 외진(?) 곳에서 말도 안 통하고 더욱 더 외로워질 것이라는 사실이 우리의 꿈을 접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 됐습니다. 요즘 같아서는 천사 같은 에이든과 에밀리를 자주 볼 수 없다는 사실도 크게 한몫을 했을 겁니다.

어쩌면 말이 통하고 문화가 같은 사람들끼리 복닥거리며 사는 게 가장 평범한 행복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내나 저나 사람을 편하게 많이 사귀는 편은 못됩니다. 좋게 표현하자면 ‘좁고 깊게 그리고 한번 정을 주면 아주아주 오래가는’ 스타일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우리는 가끔 ‘저 사람들은 콧대가 높다’는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친하게 지내는 유일한 그룹이 매주 토요일 아침에 산행을 함께 하는 ‘시드니산사랑’ 멤버들입니다. 어쩌다 보니 막내 격인 우리는 그분들로부터 종종 어린아이(?) 대접을 받기도 하고 낯가림이 많은 아내도 그분들 앞에서는 가끔 응석(?)을 부리기도 합니다.

지난 토요일 오후, 시드니산사랑 멤버들 중 열여덟 명이 우리 집에 모였습니다.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몇몇을 빼고는 거의 다 자리를 함께 한 셈입니다. 매주 한 마음 한 뜻으로 산행을 하며 건강을 챙기는 멤버들에게 오랜만에 고기와 술로 한턱 쏘겠다는 생각에서 마련한 자리였습니다.

멤버들도 모두 음식 한 가지씩 혹은 과일이나 음료수를 들고 왔고 어찌 알았는지 한 분은 가마솥(?)만한 생일 떡을 맞춰 오셨습니다. 바로 다음 날이 아내의 생일이라서 그 기쁨도 슬그머니 함께 한다는 의미를 담은 자리였는데 그분 덕에 예기치 않게 ‘Happy Birthday to Teresa!’가 자카란다 꽃잎이 가득한 뒷마당에 크게 울려 퍼졌습니다.

특별한 이슈가 없더라도 좋은 사람들끼리는 맛있는 음식 먹고 즐겁게 웃고 떠드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넘쳐납니다. 네 시간 넘게 이어진 유쾌한 자리가 파해지는 과정 또한 좋았습니다. 여성회원 아홉 명이 너나 할 것 없이 설거지에 달라붙었고 남성회원들도 이런저런 정리에 발벗고 나섰습니다. 실제로 모두가 돌아간 후 우리가 따로 해야 할 일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한껏 흐드러졌던 기분 좋은 자리는 다음 날, 아내의 생일을 맞아 우리 아이들에 의해 다시 이어졌습니다. 회를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피시마켓에 가서 맛있고 싱싱한 회들을 종류별로 챙겨오고 특별한 맛의 알탕을 만든다고 딸아이 부부가 주방을 점령했습니다.

아직 짝이 없는 아들녀석은 에이든 에밀리의 다정한 친구가 돼줬고 할머니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아 든 에밀리와 에이든은 기쁨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이제 55개월이 된 에이든은 평소 갖고 싶어하던 ‘헬로카봇 메디헌트’를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23개월짜리 에밀리는 여자아이답게 소꿉장난 세트에 정신이 팔렸습니다.

딸아이 부부와 아들녀석은 엄마가 갖고 싶어 하던 예쁜 핸드백을 생일선물로 내놨습니다. 명품을 탐하지 않는 지 엄마 성품 탓에 큰 무리는 안 갔겠지만 선물도 사고 음식도 준비하고 생일케익까지 들고 오느라 적지 않은 돈을 썼을 듯싶습니다. 이렇게 사는 게 행복인 것 같습니다. 둘이서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다가 가끔씩은 좋은 사람들과 왁자지껄하게 어울려 지내는 것…. 물론, 더 큰 행복도 있긴 하겠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게 우리의 변함없는 생각입니다.

 

*********************************************************************

 

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Previous article엄마도 영어 공부 할 거야! 118강 나는 (아직까지) 잘 못 잤어 ②
Next article엄마의 위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