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리 박아

“한마디로 말하자면 영국의 교회들은 이 시점에서 쇠퇴일로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의 교회들이 이슬람사원이 되고, 술집이 되고, 나이트클럽으로 까지 변신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교회들도 이런 영국교회들을 비난할 자격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두 나라 모두 물질적인 풍요를 유지하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기독교인들 마저도 점점 더 이 세상의 바람직하지 않은 풍조와 고도의 물질주의에 물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자본주의로 인해 파생되고 있는 물질주의는 편안함과 과학의 발달로 인한 종교에 대한 무용지론이 판을 치는 세상에 살면서, 초기 기독교신자들과 비슷한 정도의 신앙을 지켜나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현 상황이다.

그에 대한 공고한 답변을 해줄 수 있을 만큼 확고한 신앙을 보존하고 있는 신자들을 찾아보기가 힘든 것은 사실이다. 아니,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용감하게 밝히고 다니면서도,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나 다른 종교인들보다 더한 타락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니 이것이 문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정상적으로 신앙을 유지하며 양심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종교에 중독된 미치광이 취급을 받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하고 규모를 불려가는 목회자들이나 교회들이 부흥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과연 하나님이란 분이 존재하기나 한지 의문을 품는다.”

한국에 ‘전머시기 목사’가 있다. 그 이름을 입에 올리기도 역겨운 물건이다. 기독교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란다. 오래 전부터 정상적 신앙인들과 종교를 갖지 않은 순수한 사람들의 가슴에 염장 지른 인물이다.

사랑제일교회가 자리잡은 지역이 도시재개발지역으로 결정되자 해당지역민들은 국가에서 책정한 적절한 보상금을 수령하고 집터를 비웠다. 해당지역민들은 재개발이 되면 좀더 나은 환경에서 훨씬 더 좋아진 생활여건을 맞아 삶이 윤택해질 거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런데 가난한 자를 사랑하고 약한 자를 위해 봉사한다는 사랑제일교회는 교회 자리를 고수하면서 버텼다. 국가에서 적정선으로 책정한 보상금의 몇 십 배를 더 올려 달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재산을 축적하고 규모를 부풀리려고 했다. 지역민들의 희망은 안중에 없었다.

법원에서 철거하라는 판결을 받고 철거반이 들어가자, 담임목사 전머시기의 명령을 받은 비정상적인 ‘신도들’은 몽둥이와 화염병으로 무장하고 철거반원들을 공격했다.

내가 배운 기독교가 아니었다. 내가 바라는 기독교인 행동이 아니었다. 이건 누가 봐도 불법 이익집단이었다. 사랑 제일이라는 종교집단이 아니라 증오 제일 이익추구 폭력집단 이었다.

마침내 재개발단체에서는 전머시기교회만 남겨둔 채 재개발을 확정했다. 전머시기교회만 외딴 섬처럼 덩그렇게 남았다. 집단의 행태를 보면 성경에서 일컫는 마귀의 성이 연상된다. 전머시기는 정치판에도 발을 디뎠다. 신도들이라는 인간들을 모아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어대며 세를 과시했다.

이른바 극도로 우매한 극우세력을 형성했다. 정치권력추종자들은 전머시기를 찾아가 고개 숙이고 존경을 표했다. 전머시기는 세례 요한이 세례 주듯이 권력추종자들 머리 위에 손을 얹고 “대통령 될 거다”고 했다. 코미디라고 하기엔 어이가 없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비정상적인자의 해프닝이다.

한국정치의 부정적 폐해다. 전머시기는 자기들끼리 만든 ‘자유마을대회’를 열었다. 그런데 참여한 인원이 계획된 인원보다 턱없이 적었다. 전머시기는 각 지역 모집책임자를 단상으로 불러 모집책임인원을 달성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얼차려를 주었다.

조직폭력배 두목처럼 명령했다. “대가리 박아! 실시!” 명령을 받은 책임자들은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두 손을 허리 뒤로하고 우르르 대가리 박기를 실시했다. 옛날 독재시대에나 볼 수 있었던 인격 말살 군대 문화였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한국 기독교 전체를 재앙으로 끌고 가는 전머시기에게 쓴 소리나 바른 소리를 하는 목회자도 기독교인도 없다. 이러니 기독교인들이 타락했다는 거다. 이러니 기독교인들이 미치광이 취급을 받는 것일 터다. 이러니 종교는 죽었다는 거다.

기독교인이라 자처하는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대체 기독교가 추구하는 궁극적 은혜가 무엇인가? 기독교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내 가족은 나만 빼고 모두 기독교인이다. 아내는 한국인들 다니는 교회 권사다. 거의 날마다 성경필사한다.

큰손녀와 백인인 손녀사위는 영국인이 설립한 교회 ‘Life Church’ 봉사팀에서 만나 짝을 이뤘다. 막내 손녀는 Life Church 어린이반 교실을 맡아 일요일이 바쁘다. 무료 봉사가 아니다.

교회에서 적지 않은 보수도 받는다. 나는 아들 내외를 따라 Life Church에 몇 차례 가봤다. 헌금바구니가 없었다. 십일조봉투도 없었다. 불우이웃돕기봉투도 없었다. 공산당나라돕기봉투도 없었다. 헌금하고 싶으면 교회 홀에 자리한 헌금함에 가서 하면 된다.

목회자의 정치적 발언도, 대가리 박아도 들어보지 못했다. 목회자는 힘들고 괴로운 성도가 있으면 단상 앞으로 나오라고 하여 그들의 고통을 듣고, 손을 잡고, 평안과 안녕을 사랑으로 기도하는 걸 나는 봤다.

영어를 빠르게 알아듣지 못하는 나에게는 그 모습만으로도 가슴 저렸다. 신실한 목회자와 신앙인들을 찾는다는 것이 연목구어(緣木求魚)가 아님을 나는 Life Church에서 봤다. 이름 모를 그 목회자에게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한다.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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