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세월은 눈부신 스펙트럼입니다

형님! 당신의 푸르른 날의 이야기를 책으로 발간 하신다고요? 축하 드립니다. 어느 가수가 부른 ‘청춘’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 빈손 짓에 슬퍼지면 /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아~ 그렇습니다. 당신의 푸르른 청춘도 꽃잎처럼 세월을 따라 가버렸습니다. 더불어 새벽마다 당신 등에 업혀 잠들던 어린 막내동생의 청춘도 당신을 따라 흘러가버렸습니다.

고등학생이었던 당신은 신문배달을 하려고 새벽잠을 깨운 초등학생인 저를 업고, 겨울에는 당신의 바지 양쪽 주머니에 제 발까지 집어넣고, 사방이 어둠에 둘러싸인 새벽 길을 걸으면서 항상 노래를 불렀습니다.

당신의 등위에서 잠결에 듣던 노래들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니나여 고운 네 얼굴 달보다 더욱 맑다’라는 노래도 ‘성문 앞 샘물 곁에 서있는 보리수~’라는 슈베르트의 가곡도 기억납니다. 새벽 길을 걸어 보급소에 도착해 제가 배달할 신문을 받으면 워낙 몸뚱이가 작은 제 팔이 아플 것을 걱정해 새끼로 멜빵을 만들어 어깨에 메어주곤 했습니다. 어찌나 가뿐하던 지요.

저는 고등학교입학시험에 응시하는 족족 떨어졌습니다. 낙방하기는 했지만, 막상 합격을 해도 입학금도 없었습니다. 당신은 핑계 김에 저를 재수, 삼수를 시켰습니다. 제 코밑이 조금씩 검어지기 시작하자 어떻게든 고등학교라도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은 당신은, 가슴 병을 감추며 가정교사로 돈을 모아 제 입학금을 장만해 안주머니 깊숙이 넣고 다니면서 뿌듯해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1차 2차를 거푸 낙방했습니다. 당신은 그런 동생이 가슴 아파 주머니 속의 입학금을 만지면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울었습니다. 마지막인 3차 고등학교에 합격했을 때, 당신은 제 머리를 감싸 안으면서 눈물을 보였습니다. 가정교사로 돈을 벌어 수업료를 마련해준 당신이 아니었다면 저는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대학도 마치지 못했을 겁니다.

고등학생일 때 무릎 뼈가 부서져 엉뚱하게 붙어버린 제 무릎을 제자리에 돌려놓기 위해 가난한 당신은 사방에 도움을 수소문한 끝에 정형외과전문의를 소개받아 수술을 시켜줬습니다. 당신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팡이를 짚고 평생을 살아야 했을 겁니다. 그 수술 자국과 함께 저는 지금도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대학생일 때, 집단 패싸움 끝에 ‘깡패두목’으로 지목돼 ‘특수강도’라는 어마어마한 죄명으로 서대문감옥소 유치장에 구금되었을 때는 살을 에는 듯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그 추운 겨울 새벽에 몇 날 며칠을 제 사건 담당검사 집을 찾아가 대문 앞에서 몇 시간을 추위에 떨면서 기다리다 출근하는 검사를 붙잡고 “내 동생은 절대로 남을 폭행하고 물품을 강탈하는 강도가 아닙니다”라고 호소하면서 울먹였습니다. 저는 다시 조사를 받았습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저는 범죄자가 되었을 겁니다.

형, 동생 둘, 모두 다 장가보낸 후 마지막으로 장가가겠다던 당신은, 저를 결혼 시키고 단칸 셋방을 얻어주면서 눈가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그때 제 손을 꼭 잡으며 말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니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 잘 살아야 한다.” 그렇게 막내인 저까지 다 챙겨 보낸 후, 당신은 뒤늦게 비로소 당신의 보금자리를 꾸렸습니다.

저를 업고 차가운 세상을 온몸으로 마주하면서 어둠의 새벽 길을 걸어 해 떠오를 아침을 향해 희망의 노래를 부르던 당신은 저 때문에 그렇게 많이도 울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가버린 푸르른 청춘은 구슬픈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꽃잎 같은 세월은 온통 희생, 배려, 아낌, 사랑, 견딤, 맞섬, 그리고 끝끝내 놓지 않는 희망이었습니다. 하여, 당신 삶의 스펙트럼은 눈이 부시게 찬란했습니다. 당신이 살아온 당신의 이야기를 읽으면 저는 또 얼마나 많은 가슴앓이를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만, 분명히 당신의 세월은 끝날까지 황홀 하도록 찬란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언제나 편안하시길 소망합니다. 지금도 당신 등에 업혀있는 막내동생이 뉴질랜드에서 엎드려 올립니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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