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줄 돈은 없다’

3개월 전쯤, 한 외국인운영 법률사무소에서 뜬금없는 이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지금 한인 아무개가 파산 (bankrupt) 절차를 밟고 있는데 당신도 이 자(者)한테 받아야 할 채권이 있으면 기한 내에 신청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허탈하고 씁쓸한 웃음과 함께 “그렇게 뺀질거리더니 결국 이 사달을 내는군…” 하며 혼잣말을 한번 내뱉고는 이메일을 그대로 휴지통에 버렸습니다.

3주 후 그곳에서 다시 이메일이 왔습니다. ‘채권 신청기한이 3일 남았으니 서둘러 자료들을 보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미친….” 저는 비웃음이 가득 담긴 ‘썩소’와 함께 다시 혼잣말을 했고 그 이메일은 쓰레기통으로 처박혔습니다. 그들 말대로 해 봤자 결과는 뻔한 일이었습니다. ‘이런저런 것들을 모두 들여다봤지만 당신에게 줄 돈은 없다’로 답은 이미 정해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이 같은 내용을 처음 받은 건 18년 전이었습니다. 한 광고주가 파산신청을 하면서 우리도 4000불 가까운 돈을 떼일 상황이 돼서 순진하게도, 몇 푼이라도 받아보겠다고, 충실하게 자료들을 챙겨 법률사무소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당신에게 줄 돈은 없다’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또 다른 광고주가 파산신청을 하면서 비슷한 내용의 우편물을 한번 더 받았고 이번에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준비했지만 돌아온 답은 똑같았습니다. ‘당신에게 줄 돈은 없다.’

짜고 치는 고스톱?! 답은 이미 나와있음에도 그럴싸한 요식행위를 거치며 안 그래도 스트레스가 많을 채권자들에게 피곤함만 더해주는 ‘몹쓸 과정’인 겁니다. 저에게 이번 건은 5만불을 넘나드는 큰 돈이었지만 앞서 두 번의 예방주사(?)를 맞았던 탓에 더 이상의 ‘쓸데 없는’ 시간낭비, 정력낭비는 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교민들이 많이 보는 한 온라인커뮤니티에 그에게서 돈을 떼인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그에 대한 폭로를 하는 장문의 글이 올라왔지만 며칠 후 그 글은 슬그머니 사라져버렸습니다. 모르긴 해도 그 당사자가 명예훼손 운운하며 해당사이트에 압력을 가했을 것입니다.

파산결정 후3년 동안은 은행거래도 못하고 사업체운영도 못한다지만 그런 자들은 또 법에는 ‘빠꼼이’라서 자신의 이름이 아닌 가족, 친척, 사돈의 팔촌까지를 동원해 또 다른 사업체를 운영하며 버젓이 잘 먹고 잘 살 것입니다. 이런저런 기관이나 단체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활동도 하고 각종 SNS 활동에도 거침이 없을 것이 분명합니다.

반면에 이런 분들도 있습니다. 21년 전, 제가 한 교민매체에 몸담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피어몬트에서 일식당을 운영하다가 불가피하게 문을 닫게 된 그곳 사장님이 벨모어에 있는 우리 사무실을 찾아왔습니다. 그분은 “김 국장님이 저를 믿고 많이 도와주셨는데 결국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며 저에게 500불짜리 개인수표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다 드려야 하는데 이게 저의 최선이니 이걸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사장님께 잘 말씀 드려주십시오.” 그렇게 밀린 광고비의 절반쯤을 해결한 그분은 이후 길에서 만나면 반갑게 저를 맞곤 했습니다. 사업체를 접고 청소를 하며 지낸다던 그분의 사람 좋은 미소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23년 전, 우리가족이 거의 빈털터리로 시드니 행을 단행했을 때 신종철 사장은 우리에게 갚아야 할 돈 3000만원 중 700만원을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한 푼이 소중했던 우리는 그 돈을 받기 위해 아내와 가족들이 저보다 50일 늦게 한국을 떠나게 됐는데 신 사장은 그야말로 50일만 더 버텼으면 우리 돈을 확실하게 떼먹을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의 양심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천성이 찌질한 저는 한국에서도 호주에서도 크고 작은 돈들을 제법 많이 떼였습니다. 저는 제 돈을 떼어먹은 자들을 향해 아주 소심하게 저주(?)의 혼잣말을 내뱉곤 합니다. “그 돈, 당신 죽을 때 조위금으로 지금 미리 주는 거다. 하지만 언젠가는 당신이 떼어먹은 내 돈의 100배만큼만 꼭 손해 봐라.” 참 찌질하기 짝이 없는 앙갚음(?)이지만 남의 돈 떼먹기를 밥 먹듯 하면서도 죄책감 같은 건 전혀 갖지 않는 뻔뻔한 자들은 꼭, 한국 SBS에서 방송된 ‘지옥에서 온 판사’ 같은 ‘참 판결’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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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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