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 속에서 바래고 삭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오래된 책 표지 같은 기억이 있다. 최종 면접을 보고 발표를 기다리던 을지로2가 맥주 골목. 면접장에서 마주친 역술인의 눈빛을 떨쳐낼 수 없었다. 마른 멸치, 김 몇 장과 함께 간절함을 안주 삼아 낮술에 취했다. 빌딩 로비 벽 높이 합격자 이름이 내걸렸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길게 이어 붙인 명단은 고등학교 복도 벽에 붙었던 성적표와 닮아 있었다. 제도교육의 올무에서 벗어난 80년대 중반, 밀려나듯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조직 내에서 생존만이 유일하고 지고한 가치임을 깨닫는 데 긴 시간은 필요치 않았다. 나는 더 안으로 향했고, 세상은 더 멀어져만 갔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직장 생활은 전쟁터 같았다. 그 한가운데 홀로 서 있었다. 100데시벨이 넘는 천둥 같은 기계 소리는 오히려 세상을 고요하게 했다. 물속 깊이 침잠한 듯했다. 소음 속에서 평화로웠다. 컨베이어를 따라 500℃가 넘는 유리 덩어리들이 끝없이 흘러갔다. 방열 마스크 너머 불덩어리를 보면 시골길과 들꽃이 떠올랐다. 낯설고 황망했다. 불현듯 목이 메고 눈가가 흐려지면 어찌할 바를 몰라 전전긍긍했다.
서해 앞바다 너머로 시뻘건 태양이 떨어지면 세상도 유리 공장도 검붉은 노을로 물들었다. 줄지어 식당으로 들어가는 말 없는 근로자들 무리에 섞여 있었다. 한 치 앞도 허락하지 않는 눈보라는 거친 바닷바람에 실려 지친 어깨를 짓눌렀다. 작업복 외투 깃을 세우고 땅만 바라보았다. “……오래된 책 표지 같은 군산, 거기/어두운 도선장 부근……”으로 시작되는 시를 기억해 내려고 바동거렸던 나를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며 산다.
IMF 구조조정을 버텨낸 90년대 후반, 중간 관리자로 살아가던 시절엔 내일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술을 마셨다. 몸이 버티지 못하면 화장실에 가서 게워 내고 속을 비운 후 다시 마셨다. 새벽 두세 시까지 2차, 3차 몰려다녔다. 쓰러질 듯 흔들리며 좀비처럼 헤맸다. 술과의 사투 끝에 물에 젖은 빨래처럼 축 늘어진 몸을 택시에 구겨 넣으면 하루 업무가 끝났다. 아무도 그날 술자리를 기억하지 못했다. 하루살이처럼 덧없는 나날이 같은 듯 다르게 지나갔다.
냉혹했던 기억들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변신하여 내 앞에 ‘짜잔’ 하고 나타나길 늘 소망하며 살았다. 그러나 잘 알고 있었다. 담담히 버텨온 그보다 더 긴 시간을 떠나보내고 싶었던 시간 속에서 겨우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의 저편은 언제든 불쑥 찾아오기에 불안하지만 쉽게 잊히기도 하기에 다행이었다.
안동환 (문학동인 캥거루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