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매드랜드 (디지털유목민) 영화를 보다

영화를 좋아하는 남편 덕에 많은 영화를 본다. 딸들이 결혼하기 전에는 자주 밤새워 가며 영화를 즐기곤 했다. 마구 부풀어 하얀 속살을 내민 팝콘을 입안 가득 넣고 톡톡 튀어 오르는 시원한 콜라를 마시면서 릴레이식 영화를 보았었다. 조잘조잘 떠들어대며 밤새도록 프로젝트를 혹사시켰다.

근래 심각해진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외부와의 단절로 외로운 섬들이 생겨나고 있다. 안타깝고 두려운 뉴스로 가족, 친지들과의 교류도 외출도 금지된 고독한 이들의 슬픈 눈물이 묻어나는 공간이 느껴진다. 무료함에 기지개를 켜던 남편에게서 2020년 다큐 형식의 영화 ‘노메드랜드’로 초대를 받았다.

아이오와주 네바다의 엠파이어라는 동네에 주민들의 생명줄인 석고회사가 2008년 이후 세계 금융위기로 파산했다. 직장과 남편을 잃은 상실감에 미망인 펀이 더 이상 우편번호를 쓰지 않게 되고 폐허 된 마을을 떠나 낡은 밴을 몰며 방랑을 시작한다.

전에 보조교사로 일하며 시를 가르쳤던 아이를 만났을 때 선생님은 홈리스냐고 묻자 하우스리스라고 말한다. 경제적으로 내몰린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며 스스로 선택한 길 위의 삶을 끌어안는 자존감을 보았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과 현실에 굴복하는 것은 다르다. 유목민으로 살아가며 타깃, 아마존 물류센터와 농장 등에서 날씨와 때에 따르는 계절노동으로 돈을 벌어 생활한다.

같은 처지의 린다 메이 (배우)가 권한 RTR (Rubber Tramp Rendezvous, 고무바퀴 유랑자모임, 초보유목민들을 위한 신병훈련소)에 나가서 각자의 사연으로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며 그들의 삶도 잠깐씩 들여다본다. 유튜버이며 노매드랜드의 실제 주인공인 밥과의 만남도 인상적이다.

아들을 잃은 상실감에 노매드로 살아가면서 모임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밥과의 진지한 대화는 가슴 깊이 가라앉아 되새김질된다. 깊은 슬픔이 그를 철학자로 빚은 것 같다. 과거에 얽매인 그녀를 앞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생활로 초대하는 데이브 (배우)와의 만남도 특별하다. 군더더기가 없는 진정 가벼운 사람들, 그러나 엄청난 무게의 노매드들. 펀은 방랑을 통해 만난 사람들의 자주적이고 자유로운 삶으로부터 새로운 교훈을 얻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 사택으로 돌아와서 가구를 팔아 정리하고 다시 떠나기 전에 정들었던 집 앞의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대지를 바라보는 것으로 영화가 끝난다.

실업과 남편의 죽음으로 시작된 방랑이 그녀에겐 상실이자 새로운 삶으로의 초대가 된다. 몸과 마음을 홀가분하게 재정비한 후 노매드로 거듭나는 한 여인의 홀로서기를 보여주는 서정적인 수필 같은 영화였다. 배우이자 제작자인 프랜시스 맥도맨드가 2017년 출간된 저널리스트 제시카 부르더의 논픽션인 노매드랜드: 미국에서 살아남기 (Nomadland: surviving America in twenty-century)의 저작권을 사서 클로이 자오 감독과 만들어낸 영화이다. 자오 감독은 펀이라는 여자를 등장시켜 그녀의 시선으로 본 노매드랜드를 각색했다.

자오 감독은 중국은 거짓말이 도처에 널려있다는 발언으로 중국의 자존심에서 적으로 외면당한 중국계 미국인 여 감독이다. 영화배우 프랜시스는 평소에 남편인 조엘 코엔 감독에게 65세가 되면 펀이라는 이름의 유랑민으로 살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Fern은 고사리과 양치식물이다. 그녀가 제2의 삶에 그 이름을 택한 것도 특이하다.

노매드랜드는 2021년 4월 26일 아카데미상의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성공적인 영화다. 영화배우는 프랜시스 맥도맨드와 데이브 역의 데이비드 스트라탄 외에 소수이고 나머지는 실제 인물들이다. 촬영이 끝날 때까지 프랜시스가 배우라는 것과 자신들이 영화를 찍었다는 것도 몰랐다는 사실이 놀랍다. 펀을 진솔하게 대해주고 함께 아파해주는 밥에게만 양심의 가책으로 이 과정이 영화임을 고백했다고 한다.

프랜시스가 2021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소감 발표 당시 늑대 울음소리를 낸 것은 시상식 한 달 전에 우울증으로 자살한 사운드 믹서인 잘생긴 35세 마이클 울프에 대한 추모였다. “Wolf recorded our heartbeats. Our every breath. FOR me, he is Nomadland.” 울프의 내면을 공감하고 늑대 울음소리로 그에게 신호를 보낸 재치 있는 프랜시스에게 박수를 보내며 마이클 울프의 고독한 마지막에 애도를 표한다. 보는 이에게 순간순간 다르게 다가오고 느껴질 영화의 내용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겠다. 그들과 함께하며 이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영화음악도 무척 인상적이다.

안락함에 젖어 사는 내겐 인간적인 나약함과 질병과 사고에 대한 불안이 영화의 잔잔한 여운을 흐리게 한다. 우리 부부는 일 년에 두 번 긴 여정의 캠핑을 한다. 이 영화를 보고 그 동안 다녔던 캠핑이 부분적인 노매드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이 진정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며 캠핑에서 만났던 낯선 이들과의 교류와 소통을 통한 소소한 일들을 소중하게 접어 간직한다. 가는 공간에 의미를 부여했을 때 더 특별한 장소로 남겨지던 곳들도 차곡차곡 쟁여 둔다. 코로나19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면 다시 길을 나설 것이다. 오늘 밤 꿈에 밴을 몰고 달리고 싶다. 펀과 많은 노매드들을 만나기를 소망한다. See you down the road.

 

 

글 / 장옥희 브랜디나 (글무늬문학사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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