넝쿨 한 줄기

삐져나온 넝쿨 아이비 한 줄기처럼

혼자 도망쳐 본 적 있다

 

거뭇해지려 할 때

얽히고설킨 줄기들이 서로 진저리를 낼 때

모두 잠에 덮여 있을 때

 

저금통 탈탈 털어 편도 고속버스 티켓 끊어

산길을 자박자박 걸어 올라가 본 적 있다

절벽 끝에서 떨어본 적 있다

 

문 열린 4층 건물 옥상 난간에 매달려

밤을 새워본 적 있다

까마득한 밤에 갇혀본 적 있다

 

치렁치렁 머리 풀고 들어간 미성년자 관람 불가

취객의 집적거리는 손에 잡혀 본 적 있다

줄행랑 쳐본 적 있다

 

여름은 끈끈한 척 치근덕거렸다

아득하고 아슴푸레했다

 

한참을 도망가다 뒤돌아보니

멀리 아버지가 그림자를 길게 늘이고 있었다

 

내 등까지 줄 하나 이어져 있었다

 

 

민명숙 (문학동인 캥거루 회원·2017년, 2023년 재외동포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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