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리 집 뒷마당에는 우리가 하얀 앵무새라 부르는 코카투 (Cockatoo)를 비롯해 초록색, 분홍색, 빨간색 등 각양각색의 앵무새 수십 마리가 마실(?)을 오곤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코카투 이 녀석들은 우리가 과자를 높이 들고 있으면 그걸 손으로 받아 들고는 우리 집 자카란다 나무 위나 별채지붕 위에 앉아 맛있게 먹곤 했습니다.
덩치가 작은 다른 앵무새들은 뒷마당 정원 한 켠에 마련된 모이통에 앉아 만찬을 즐겼습니다. 녀석들은 사이 좋게 먹다가도 갑자기 쫓고 쫓기는 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우리 집 뒷마당은 늘 그렇게 녀석들로 북적대고 있었습니다. 특히 스무 마리도 넘는 코카투가 우리 손에서 자연스럽게 과자를 받아 일렬로 앉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본 서울촌놈 후배기자는 깜짝 놀라며 신기해했습니다.
코카투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하얀 털에 노란색 볏을 매력포인트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털이 듬성듬성 빠지고 노란 볏도 거의 안 보이는, 한눈에 봐도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코카투 한 녀석이 무리에서 비껴나 한쪽에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야, 너는 그 멋졌던 모습은 다 어디로 가고 이토록 꾀죄죄한 몰골이 됐니?” 하며 녀석에게 과자를 따로 챙겨줬습니다. 나이가 들면 누구든 다 그렇게 될 텐데도 싸가지(?) 없는 젊은 코카투들이 녀석을 못살게 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그토록 머리 숱이 많이 없어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까치가 둥지를 틀어도 될 만큼 풍성한 머리털을 가졌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생활을 하면서 점점 머리 숱이 적어지는 걸 느끼긴 했는데 그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딸아이 결혼식 참가를 위해 한국에서 날아온 절친 김진혁 씨가 모나베일에서 아내와 저의 사진을 찍어줬는데 그때 장난스럽게 아내한테 뽀뽀를 하던 제 머리에서 가히 ‘대머리 급’의 머리털 상실을 발견하고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머리는 머리털이 빠진 부위에 따라 ‘주변머리가 없다’ 혹은 ‘속알머리’가 없다는 놀림을 받습니다. 여자들도 더러 있긴 하지만 남자들은 나이가 들어가며 머리털을 잃어버리고 대머리가 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GYM에서도, 거리에서도 나이든 남자들은 대부분 머리털을 도둑 맞은 상태입니다. 그들도 한창 젊었을 때는 남부럽지 않게 무성한 머리털을 가졌었을 텐데 말입니다. “할아버지, 왜 대머리야?” 새롭게 제 껌딱지(?)가 된 봄이가 가끔 안쓰러운 표정으로 저한테 묻는 말입니다. 녀석은 제가 머리털이 풍성했던 사진을 보여주면 “이거, 할아버지 아니야” 합니다.
대머리를 가리기 위해서 가발을 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도 한때는 가발에 대한 욕심을 낸 적이 있었지만 ‘그냥… 생긴 대로 살자’는 쪽으로 일찌감치 방향전환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왠지 숭숭 빠진 제 머리털이 편안하지는 않아 얼마 전부터 까맣고 납작한 모자를 즐겨 쓰고 있습니다. 지난해 유럽여행 때 장만한 건데 스위스 알프스 융프라우요흐 정상에서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의 거친 눈보라 때문에 잃어버릴 뻔했던 걸 간신히 건져 올린 이후로 녀석과는 더욱 애틋한 사이가 됐습니다.
얼마 전에는 신경치료가 필요하다 해서 치과에서 하염없이(?) 입을 벌리고 누워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돌도 씹어먹을 만큼 강한 치아를 가졌던 저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 없이 머리털 도난과 함께 치아상실의 아픔까지 겪고 있는 겁니다. “그래도 아버님은 양호하신 편이에요. 그리고… 오랫동안 쓰셨잖아요.” 신경치료니, 잇몸치료니, 더 나아가 임플란트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나이가 드니 여기저기 성한 데가 없네요…” 하며 제가 푸념 섞인 소리를 하자 치과의사가 웃으면서 건넨 이야기입니다.
듣고 보니 100퍼센트 맞는 이야기입니다. 이도 그렇고 눈도 그렇고 70년 가까이를 사용해왔으니 꾸준한 관리와 보수가 필요한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머리털도 많이 도둑 맞았지만 고개를 숙이지 않고 적당히 치켜(?)들고 있으면 아주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는 면에서 ‘그래도 이게 어디야?’ 싶은 마음으로 오늘도 내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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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