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음에 대하여

세상을 살면서 가장 힘든 것은 인간관계라고 한다. 인생의 70%가 사람과 사람의 부딪힘이라는 거다. 부딪힘이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선의의 부딪힘이라면 부딪힘은 그다지 나쁘진 않을 거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 부딪힘은 대부분의 경우가 깊고 아픈 상처를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렇게 남겨진 상처는 단단한 옹이로 굳어져 잊고 싶고 지우고 싶은 불쾌한 기억으로 남는다.

지워지지 않는 아픈 상처가 남긴 불쾌한 흉터의 원인은 다양하다. 거짓, 가식, 증오, 시기, 허세, 교만이 쓰라린 상처의 흔적을 남겨주는 주범들이다. 그 상처를 가져오는 주범들의 뿌리가 지독한 이기심과 탐욕이라고 한다. 모든 것을 끝도 없이 움켜쥐려고 움츠리고 경계하며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짐승처럼 모질고 악착같은 마음이다.

물질만능주의 세상은 인간다움을 지워버리고 잔인한 먹이사슬의 세상이 돼버렸다. 이타적이라는 말이 부자연스럽고 껄끄럽고 짐승들의 언어처럼 생소하다.

목가적이어야 할 사랑마저 화폐가치로 셈하려는 천민적 사고는 모든 것을 손익으로 재단하는 척박한 세상을 만들었다. 존중 받고 대접받는 인간들은 열심히 살지 않아도 배부른 자들과 부를 만들어줄 수 있다고 으스대는 부패한 권력자들이다. 아프고 슬프지만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작금의 실제 모습이다.

‘할메는 꽃신 신고 사랑노래 부르다가’라는 시(詩)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시인이 있다. 그는 은둔의 시인, 자연의 시인, 지리산 시인으로 불리는 예순 여섯 살 된 박남준 시인이다. 시인은 경남 하동군 악양면 동매마을 맨 꼭대기 집에 홀로 산다.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밀쳐지고 차이고 미움 받아 상처투성이가 된 시인을 가슴 아프고 안타깝게 여긴 지인이 마련해준 산골 집이다.

시인은 험한 세상살이를 등지고 지리산에 들어와 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 솔솔 거리는 바람소리, 사박사박 나뭇잎 두드리는 빗소리, 새벽을 깨우는 새소리를 들으면서 시를 쓴다.

동터오는 새벽 창문을 열고 밤사이 사락사락 내려 장독대에 수북이 쌓인 하얀 눈을 쓰다듬고 밤하늘 총총한 은하수를 올려다보면서 세월을 잊은 듯 살아간다.

시인은 상처받고 지쳐 찾아온 지인을 곁에 앉히고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그러 모아둔 나무로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이 나무 좀 봐라. 옹이가 졌지. 옹이가 뭐냐. 나무에 생긴 흉터 아니냐. 상처가 났을 때 나무가 얼마나 아팠겠냐. 그런데 말이다 옹이진 나무가 더 오래 탄다. 제일 마지막까지 탄다.”

그는 매월 시 두 편을 써서 원고료 30만원을 받는다. 그 중에서 15만원이 한달 생활비다. 남은 15만원은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사회봉사단체에 기부한다. 그의 통장엔 200만원 안팎의 돈이 있다. 그가 말하는 ‘관 값’이다. 살다가 갑자기 일을 당해도 다른 사람에게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아 이 정도는 남겨둔다.

시인은 어느 날 문학상 두 개를 잇따라 받게 됐다. 하나는 상금 2000만원 ‘조태일 문학상’이고 다른 하나는 상금 1000만원 ‘임화 문학상’이다. 한달 생활비 30만원도 남는 그에게 덜컥 3000만원이 입금된 거다. 이러니 고민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시인은 지인에게 하소연했다. “걱정이다. 이렇게 갑자기 목돈이 생기면 어떡하냐? 입금된 날부터 난 잠도 못 자. 이 많은 돈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평생 이렇게 큰돈을 본적이 없는 시인은 잠을 못 자고 어떡하나를 되풀이하다가 물난리 때 떠내려갔던 뒷마당 메우고 마당에 차 덖는 방 들이는 공사에 우선 돈을 썼다. 한꺼번에 그렇게 큰돈을 쓴 것이 처음이었다. 나머지는 기부했다.

시인은 통장 잔고가 원래대로 돌아온 그제서야 편안하게 숨쉬면서 발 뻗고 잠잤다. 시인은 돈이 없으면 안 쓰면 되고 상처가 나면 아물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고 했다. 시인은 모두 내려놓았기에 평온하다.

세상이 온통 탐욕투성이다. 부족함을 견디지 못한다. 풍족하지 못함을 한탄하고 원망하며 가정을 깨부수고 어린 자녀를 동반해 자살을 한다. 보험금을 노리고 악마와 손잡고 살인을 한다. 더 갖겠다고 거짓말하고 눈치보고 감추고 다투고 저주한다. 살아가는 온갖 것들에 계산하고 잔머리 굴리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상처받는다.

기독교스승의 가르침에 따르면 가장 핵심적이고 궁극적인 악은 욕심과 교만이라고 한다. 악마는 욕심과 교만 때문에 악마가 되었다고 한다. 탐욕의 동반자가 교만이다.

악마의 화신을 지우는 길은 내려놓음이라고 했다. 내려놓음은 욕심 허세 교만을 버리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거다. 평화로움이다. 사람들은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향기 나는 세상이라고 한다. 그대가 살아가는 세상은 향기가 나는가?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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