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은 쓸모가 없어. 알도 못 낳고 맛도 없어. 그래서 버려지는 거야. 버려지지 않으려면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지?” – 영화 ‘미나리’에서 제이콥이 아들 데이비드에게 하는 대사 일부
최근 호주에서는 크리스천 포터 전 법무장관 (현 과학기술장관)이 1988년 자신이 10대였을 때 16세 소녀를 성폭행한 혐의에 휘말렸다. 그는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으나 피해자는 자살했다. 한편, 미국의 재력가 제프리 엡스타인과 돈독한 우정을 과시해온,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는 엡스타인이 미성년자 성 매수 및 성 폭행 유죄 판결을 받자 자신은 그 범죄 혐의와 무관함을 주장했었다. 그러나 엡스타인의 성범죄 고발자 버지니아 주프레는 앤드루가 미성년자였던 그녀를 세 번 성폭행했다고 폭로함으로써 현재 뉴욕에서 민사 소송 중에 있다.
그리고 나는 위에서 말한 사건들과 별 상관없을 것 같은, 다음과 같은 BBC 뉴스가 떠올랐다. 영국에서 작년 8월 제이크 데이비슨 (22살) 이라는 청년이 총을 난사해 여성 3명과 남성 2명, 어린이 1명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와, 데이비슨은 평소에 여성 혐오적인 ‘인셀 (incel) 커뮤니티’에서 활동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인셀’이란 여성과 성관계를 해보지 못한 ‘비자발적인 독신주의자 (involuntary celibate)’를 합친 신조어로 주로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인셀들은 자신의 성적 실패를 여성에 대한 분노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젊은 시절 나는 성적 욕구와 충동이 강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도대체 무엇이 나로 하여금 여자의 젖가슴과 엉덩이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가?”에 대하여 고심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생물정보학 (生物情報學, Bioinformatics) 이라는 학문을 접하게 되면서 인간은 유전적, 진화 심리학적으로 프로그래밍이 된 존재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진 인간의 문제는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복잡하다. 그런데 오늘날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유전자 이론에 인간의 성(性)을 접목해 이해하고자 한다면 어떤 문제들은 한층 더 설명하기 쉬워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시드니 타운 홀 인근 광장에는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는 사람들이 빵 부스러기를 던져주어서 인지 유난히 비둘기 떼가 많다. 관심을 갖고 비둘기들을 보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목격했다. 수컷 비둘기는 날개를 한껏 펴 부풀린 다음 으스대며 걸으며 구구~구 소리와 함께 암컷을 유혹한다. 그러다 암컷이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수컷의 과시 행위는 싱겁게 끝난다. 그런데 암컷이 돌아오면 다시 조금 전에 하던 행동을 반복한다. 너무 노골적이고 속 보이는 행위이기도 했지만 그런 수컷의 행위를 보고 참 놀랐다. 다윈은 이런 현상들에 대해서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보통 성 선택 (性 選擇, Sexual selection)에서 유능한 행위자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이성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인지되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남자는 이론상 1년에 365명 이상의 자기 자녀를 남길 수 있지만, 여자는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1년에 1명 정도만 자신의 자녀를 남길 수 있다. 따라서 동물 세계에서 대부분의 수컷은 자신의 유전자를 될 수 있으면 널리 퍼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는데 반하여, 암컷은 건강한 새끼를 낳기 위해 최상의 수컷을 고르는 데 집중한다. 즉, 성 선택에서 중요한 것은 조금이라도 더 생존에 유리한 유전자를 가진 짝을 찾는 일이다. 성 선택의 이런 특성 때문에 인간을 포함, 대부분의 동물은 섹스에서 차별주의자가 된다. 즉, 어떤 구혼자는 받아들여지고 어떤 구혼자는 거부당하는 것이다. 특히, 암컷 입장에서 짝짓기 대상의 수컷들을 평등하게 대하지 않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항상 정당하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사는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이런 생물학적 정당성은 부메랑으로 되돌아와 ‘남성 소외’뿐만 아니라 ‘여성 소외’라는 문제를 만들어낸다. 왜냐하면 배우자로서 선호되는 조건 (잘생기고, 돈 많고, 성격 좋고, 건강하고, 유능한)을 갖춘 남자들의 수는 이들을 선호하는 여자들의 수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기 때문에 여성 소외가 발생한다. 그렇다고 소외된 여성이 조건이 결핍된 남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소외된 남성의 분노는 언제든지 데이비슨 같이 여자 혐오로 표출될 수 있다.
다윈은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 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이라는 책에서 “동물의 성 선택이 종의 진화를 이끈다. 사람들이 자신의 미적 취향에 따라 인위적 교배를 통해 애완용 새의 자태와 외모를 단기간에 바꿀 수 있다면, 암컷 새들이 자신들의 미적 기준에 따라 수천 세대에 걸쳐 가장 노래를 잘하는 수컷 혹은 가장 잘 생기고 화려한 수컷을 선택함으로써 그에 필적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라고 말한다.
여자가 배우자를 선택하는 마음과 암컷 공작새가 수컷 공작새 꼬리에 반하는 것은 서로 비슷한 생물학적 기능이며, 공작 암컷이 크고 화려한 꼬리를 지닌 수컷을 좋아했기 때문에, 수컷이 암컷의 눈높이에 맞춰 꼬리를 진화시켰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남자의 권력에 대한 탐닉도 여자의 눈높이에 맞춘 진화적 결과일까? 라고 상상해 본다.
엘크 (Elk)나 사슴과 같은 일부다처제 동물에서는 모든 암컷이 더 이상 경쟁 상대가 없는 강한 뿔을 가진 지배적인 수컷만 선호하기 때문에, 속한 집단의 새끼들의 아버지는 강한 수컷 하나이며, 한 번도 짝짓기하지 못하고 비자발적인 독신주의자가 된 대부분의 잉여 수컷들은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다. 인간의 경우, 소수의 남성에 집중된 권력이 여성의 억압과 착취라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온 것이라면, 이런 진화의 끝은 어떤 결말이 될까 궁금해진다.
“여자는 배우자의 육체적 외도보다는 그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에 분개하지만, 남자는 배우자의 정신적 외도 보다는 육체적 외도에 더욱 분개한다”라고 진화 심리학자들은 주장한다. 왜냐하면, 여성은 직접 아이를 낳기 때문에 자기 자식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없지만, 남자는 아내가 낳은 자식이 자기 자식이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편, 배우자가 다른 여자와 단순히 육체적 관계를 갖는 것보다 사랑에 빠진 것을 더 위험하다고 여자가 생각하는 이유는, 자식을 양육하는데 필요한 남편의 정신적, 물질적 지원이 줄어들 가능성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의 이런 차이는 농경 문화가 도입되기 훨씬 이전 수렵 채집을 하던 인류의 조상으로부터 유래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허니문 기간이 끝나자마자 본격적인 부부 싸움을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남자와 여자는 참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같은 말인데도 남자나 여자이기 때문에 전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일부일처제, 일처다부제, 일부다처제 다부다처제 등 다양한 짝짓기 방식이 있다. 이들 중 일부일처제의 가장 큰 장점은 암수가 협력해 새끼를 건강하게 양육할 수 있다는 점이며, 특히 인간처럼 양육 기간이 긴 경우 일부일처제는 자손의 생존에 매우 유리한 제도임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번식기에만 함께 살다 각자 집단생활로 돌아가는 동물들과 달리 유독 인간만이 번식을 마치고도 한 쌍의 이성이 오랜 세월 동거해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그리워하고 협조하면서도 부딪칠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결혼’이 내포하는 ‘평생’이라는 의미는 그렇게 녹록한 것은 아니다.
양지연 (캥거루문학회 회원·호주국립대 분자생물학 석사·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 생물정보학 박사·한국 카톨릭의대 연구전임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