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입니다.’ 이 말을 나는 자주 인용합니다. 오래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갔을 때 선물의 집에서 조그마한 책갈피 하나를 샀는데, 그 안에 적혀있는 바로 이 글귀가 마음에 들어서였습니다. ‘Today is the first day of the rest of your life.’ (오늘은 그대의 남은 생애의 첫날입니다.) 그 순간 이 글이 내 마음에 어찌나 큰 울림을 주었는지!
삶에 대한 희망과 용기 위로를 주는 멋진 메시지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오늘이 마지막인 듯 살게 하소서!” 하던 기도를 “오늘이 내 남은 생애의 첫날임을 기억하며 살게 하소서!”라고 바꿔서 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왠지 슬픔을 느끼게 하지만 ‘첫날’이라는 말에는 설렘과 기쁨을 주는 생명성과 긍정적인 뜻이 담겨있어 좋습니다.” – 이해인 수녀 <내 남은 날의 첫 날> 중에서.
나는 늘 나의 남은 생애의 첫날처럼 살고 싶다. 활기차고 보람찬 하루를 만들기 위해 치열한 삶의 장터에서 주눅들지 않고 좌판이라도 벌리고 싶다.
비록 몸뚱이는 세월을 거부하지 못하고 윤기를 잃고 주름살투성이지만, 마음만은 초록빛 햇살처럼 아직도 눈부시다. 질주하는 막차를 기다리는 쓸쓸함이 아니라 바쁜 듯 힘차게 다가오는 첫차를 기다리고 싶다.
그렇지만 인생버스정류장에 서서 세월을 먹어버린 많은 사람들은 투명한 유리창 햇살 가득한 첫차는 벌써 오래 전에 멀어져갔다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빠르게 달려올 막차만 남아있다면서 오히려 편안한 마음이 여유롭다.
사람들은 세월을 먹어도 결코 놓지 않는 꿈과 희망의 삶이 활기차고 보람차다지만, 나는 세월이 흐르면 놓을 걸 놓고, 보낼 걸 보내고, 버릴 걸 버리는 것도 아름다운 삶이라고 생각한다. 첫날은 날개를 힘차게 퍼덕이는 꿈이고 용기이고 희망이지만, 끝날은 지친 날개를 접고 평온을 위한 닫음이다. 삶의 의미를 담담하게 비워줄 의자에 담고 싶다.
나는 심장이 멈추는 순간까지도 세상의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 무언가 움켜쥐려는 삶이 생명성이고 긍정적이라는 주장에 공감한다. 그러나 때가 되면 – 때는 자신이 결정하는 거다 –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별들이 불 밝히는 하늘을 우러러 움켜쥔 주먹을 펴고 손바닥을 들어 보이는 삶도 존중 받을 생명성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슬픔이라고 하지만, 나는 평온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그것은 욕심을 놓아버린 마무리다. 나는 마지막이라는 말에서 차라리 평온과 안식을 느낀다. 마지막은 모든걸 놓아버리는 비움의 마음이니까.
인생은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지만 조심할 필요도 있다. 바라는 것이 허황되면 희망이 아닌 탐욕이 될 수도 있는 거다. 이카루스의 날개는 파멸을 부르는 거다.
첫날이든 마지막이든, 삶을 사랑해야 한다. 허리가 펴지지 않는 힘겨운 삶일지라도 보듬어야 한다. 버거울지라도 무지개 빛 꿈을 간직하고 사랑과 아낌을 잃지 말아야 한다. 살아 있음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거다. 보잘것없고, 자랑할 것 없고, 이름없는 초라한 인생일지라도, 살아 있음은 그 자체로 기쁨이며 축복이며 감사함이다. 힘들고 외롭고 서러운 삶일지라도,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 어부 ‘산티아고’는 84일동안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 85일째 되는날 노인은 이틀 낮 밤을 밀고 당기는 사투 끝에 자신의 배 길이보다 더 큰 청새치를 잡는다. 노인은 손바닥이 찢어지는 고통을 견디며 청새치와 밀고 당기면서 내 의지, 내 지혜에 맞서 모든 것을 걸고 나와 싸우는 저놈이 되고 싶다고 한다.
노인은 사투를 벌리면서 청새치에게 말한다. “고기야, 네놈이 지금 나와 겨루는구나. 그래 네게도 그럴 권리는 있지. 한데 형제야, 난 지금껏 너보다 크고, 너보다 아름답고, 또 너보다 침착하고 고결한 놈은 보지 못했구나. 그래, 나와 한판 해보자!”
노인은 있는 힘을 다해 지친 청새치를 작살로 찔러 잡는다. 잡은 청새치를 배 옆구리에 매달고 물고기를 팔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부풀어 항구로 향한다.
그러나 노인은 온몸을 던져 잡은 청새치를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든 상어 떼에게 모두 뜯기고 만다. 노인은 치열한 싸움 끝에 상어 떼를 물리쳤지만, 앙상한 뼈만 남은 청새치를 매달고 지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노인은 깊고 평안한 잠에 빠져든다. 노인은 잠을 자면서 젊을 적 아프리카 해변에서 보았던 사자의 꿈을 꾼다.
삶은 각자의 짐을 지고 걸어가는 것이다.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는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 삶의 무게가 가볍든 무겁든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 때가 되면 삶의 짐을 내려놓고 쓰다듬고 어루만져줄 줄도 알아야 한다. 삶은 투쟁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임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숨이 멎기 전까지 희망, 꿈, 용기를 놓지 말라고 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그 희망과 꿈과 용기가 얼만큼 귀중 한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런 것들이 오직 움켜쥐고 쌓아 놓기 위한 몸부림이라면 나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나는 새벽에 고요히 깨나면 오늘 하루를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처럼 바람처럼 살자고 다짐하곤 한다. 새처럼 바람처럼, 집착, 후회, 기대, 바램, 욕망같은 것들에 얽매이지 않으려 한다.
분명한 것은 오늘은 내 남은 날의 첫날이다. 소리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 가슴 설레는 첫날처럼 푸르른 마음 간직한 채 살아가고 싶다. 세상이 눈물 나도록 눈부시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