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중의 한 가지입니다. 지네 집 뒷마당 데크에서 우리 거실 쪽을 바라보면서 할매할배를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며 아는 체를 하거나 아니면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고 아예 쳐들어오는(?) 겁니다. 두 녀석 다 고맙게도 할매할배를 향한 사랑이 여전해서 매일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게 첫 번째 루틴(?)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봄이는 우리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을 때는 할매할배가 잘 안 보이는 탓에 몸을 한껏 내밀고 손을 흔들며 우리와 눈 마주침을 합니다. 그리고는 몇 년 만에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며 과자며 사탕을 건네줍니다. 손이 쉽게 안 닿기 때문에 녀석은 배드민턴 라켓에 먹을 것들을 담아서 주기도 합니다.
그날은 녀석들이 두 번째 방법을 택했습니다. 초인종이 울리더니 곧바로 두 녀석이 할머니와 얼싸안고 반갑게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콩콩콩… 2층으로 올라오는 움직임이 느껴졌습니다. 우리 둘 중 한 사람이 안 보이면 늘 “할머니는? 할아버지는?” 하고 챙기는 녀석들이 서재에서 일하고 있는 할배를 만나기 위해 뛰어올라온 겁니다.
역시 아주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반갑게 허그를 한 녀석들은 이내 우리 집 뒷마당으로 나갔고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녀석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2층 창문을 통해 내려다 보니 두 녀석은 배드민턴 놀이에 열심이었습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잔디밭에 떨어진 셔틀콕 줍기에 바빴던 녀석들이었지만 지금은 제법 오랫동안 랠리를 이어갑니다. 그렇게 배드민턴을 치며 까르르 대는 두 녀석의 모습은 누가 뭐래도 세상에서 가장 예쁜 그림,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런 모습입니다.
옛말에도 ‘아이들이 있어야 집안에서 웃음소리가 난다’고 했는데 딱 그 말을 실감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잠시 쉬기도 할 겸 아래 층으로 내려갔더니 역시나 봄이가 할매할배 먹으라고 들고 온 비스킷과 사탕이 식탁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데크 위에서 지들을 바라보고 있는 할배를 발견한 훈이 녀석이 눈을 찡긋하며 특유의 살인미소를 날렸고 봄이도 크게 손을 한번 흔들고는 셔틀콕을 따라 전력질주를 합니다.
세상에서 모든 걸 다 갖고 완벽하게 행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우리도 지금의 모습을 얻기 위해 그 동안 크고 작은 것들을 많이 잃기는 했지만 아내와 제가 오랜 시간 꿈꿔왔던 지금의 모습은 아무리 되짚어봐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녀석들도 답답한 아파트 생활보다는 지금의 전원생활이 좋은지 뒷마당 잔디밭에서 노는 걸 참 많이 좋아합니다.
때마침 붉은 노을이 저만치 걸릴 무렵 딸아이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훈아, 봄아, 밥 먹자!” 두 녀석은 얼른 할매할배와의 짧은 포옹을 마치고 바로 옆 지네 집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내일 또 만나요!” 고사리 같은 손을 흔들며 안으로 들어간 녀석들이 뭐라 재잘대며 엄마아빠와 함께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그려집니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계속되는 사업실패로 어머니와 저는 동네 부잣집 한쪽에 작게 달아낸, 당시에는 ‘하꼬방’이라 불리는 작은 판잣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때 가장 부러웠던 것이 주인집 다섯 식구가 거실에 둘러 앉아 갈비를 구워먹는 모습이었습니다. 창희, 연희, 웅희 3남매가 각기 자기 방을 갖고 사는 것도 참 많이 부러웠습니다. 행여 그들 눈에 띌 새라 정원 한 켠에서 몰래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부러워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아내와 제가 결혼 후 ‘우리 아이들이 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꼭 집을 사야 한다’고 억척을 부렸던 것도 어쩌면 어린 시절의 그 같은 부러움에서 시작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제, 딸아이가 결혼을 하고 사위가 생기고 훈이와 봄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소중한 두 녀석이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내와 저는 무한한 기쁨과 감사를 느낍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예기치 않게 여기저기가 아프고 몸도 마음도 약해지는 속상함이 생기긴 했지만 그리고 금전적인 여유도 살짝 아쉬워지기는 했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이래저래 따져 보면, 이런 표현이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꽤 ‘괜찮은 장사(?), 남는 장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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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생. 한국 여성지 <여원> <신부> <직장인> <젊은엄마> 기자 및 편집부장, 호주 시드니 <코리아타운>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일함.


김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