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를 하는 이유?

그들은 애초부터 물고기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오자마자 접이식 테이블을 펼쳐놓고는 이런저런 것들을 주섬주섬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소형 가스버너에 불이 붙었고 고기판이 얹어졌습니다. 그리고는 삼겹살을 지글지글 굽기 시작했습니다.

30대쯤으로 보이는 남자 둘, 여자 하나로 구성된 그들은 중국인인 듯싶었는데 일단 삼겹살을 제대로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상추에 깻잎 그리고 쌈무에 김치, 쌈장까지…. 세 사람은 계속 중국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지만 어쩌면 그들 중 여자는 한국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도 아니면 그들은 분명 한국인들과의 교류가 잦은, 이른바 K-Food 매니어쯤은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먹자판(?)은 말 그대로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삼겹살이 익어가자 세 사람은 가볍게 맥주 한 병씩으로 입가심을 했고 이내 한국소주 여러 병이 등장했습니다. 엄청난 양의 삼겹살을 다 먹고 난 뒤에는 게맛살과 버섯 그리고 LA갈비, 닭갈비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소주병들 옆으로는 어느새 이름 모를 담금주까지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들이 제 바로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기에 저는 그들에게 실례(?)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들의 먹자판을 흘끔거릴(?) 수 있었습니다. 고기도, 술도 종류별로 열심히 즐기고 있는 그들은 술과 고기를 영접하기 전 커피, 그것도 그 자리에서 원두를 갈아서 내려 마시는 멋짐(?)까지 연출했습니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중국노래들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주위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볼륨이었습니다. ‘저렇게 술을 많이 마시면 운전은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도 됐지만 어쩌면 그들은 술이 깰 때까지 그 자리에서 밤을 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달 반쯤 전 아쿠나베이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따라 모든 사람들이 기다리던 갈치나 민어는 한 마리도 나오지 않고 반갑지 않은 옐로테일들만 끊임없이 들이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갈 때마다 꽝 치는 일 없이 최소 한 마리씩은 꼭 챙겨왔고 168센티미터짜리 대왕갈치와 77센티미터짜리 듬직한(?) 민어를 잡고 환호했던 기억이 새로운 곳입니다. 두 시간도 채 안돼 갈치 열 마리를 잇따라 낚아 올렸던 기분 좋음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물고기 잡기가 로또당첨 만큼이나 어렵다는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굳이 지구온난화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바다의 수온이 이상해진 탓이 큰 것 같습니다. 게다가 물고기들도 날이 갈수록 똑똑하고 영악해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낚싯대를 꼭 붙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도 귀신처럼 달라붙어 미끼만 속 빼먹는 기술은 대체 어디서 전수받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물고기를 잡겠다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다 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건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낚시 연륜이 더해갈수록 ‘꼭 잡겠다’는 마음은 점점 덜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저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로컬사람들이 한두 시간 낚싯대를 던지며 놀다가 미련 없이 돌아가곤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네의 그것과는 생각과 문화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많이 잡으세요’라는 인사를 주고 받지만 로컬사람들은 ‘Good Luck’ 혹은 ‘Enjoy’라고 인사를 건넵니다. ‘잡는 재미, 놓아주는 즐거움’까지는 아니더라도 물고기를 꼭 잡아야겠다는 욕심은 조금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크고 작은 낚시 사고들도 결국은 물고기 욕심을 내다가 생기는 것일 터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쿠나베이 낚시터 터줏대감 격인 70대 후반의 그 노 신사는 먼저 자리를 뜰 때면 다른 사람들을 향해 “재미있게 놀다 가세요”라는 인사를 건넵니다. 물고기를 많이 잡고 못 잡고는 결코 우리의 의지대로 되는 건 아닙니다. 낚시에도 ‘운칠기삼 (運七技三)이 적용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날그날의 어복 (魚福)이 충만해야 할 듯싶습니다. 던지면 물고 던지면 물고 해서 정신이 없었던 시절도 많았지만 일단 마음을 비우고 ‘바다 멍’을 즐기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낚싯대를 챙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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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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