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사이는 아니었기에 책을 소개받은 일은 전혀 뜻밖이었다. 아마 내가 예전에 무슨 책을 어떤 성향의 사람들에게 권했던 모습을 보고 상대방 1 도 덩달아 마음의 문을 살짝 연 듯하다.
사실 누군가에게 책을 권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감명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지를 확신할 때에야 가능한 일이다. 어느날 문득 그 책이 생각나 도서관에 들러 문의를 해보았다.
오래된 책이라 창고에 따로 보관되어 있다며 직원 한 사람이 어렵사리 책을 찾아주었는데 그 정성스러움이 괜히 고마웠다. 처음 책을 마주했을 땐 솔직히 조금 주저했다.
천 페이지가 넘는 두께에 압도당했고 80년대 후반에 출간된 탓인지 세월에 바래고 풍화되어 책은 눅눅하고 칙칙한 인상을 주었다.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책 겉표지며 쪽마다 온통 병균이 도사리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내 머뭇거림을 눈치라도 챘는지 직원이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두 권으로 묶여 있지만 첫번째 권만 읽어도 충분하다고. 그 말이 왠지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브라이스 커트니 (Bryce Courtenay)의 『The Power of One』 2는 뜻밖에도 내가 평생 읽은 책들 가운데 단연코 최고라 말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2025년 매서운 겨울의 몇 개월 새벽마다 그 책은 집안 곳곳에 배어 있던 냉기를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녹여주었다. 건조한 실내에 함초롬히 피어난 꽃이었다. 그리고 그 여운을 따라 내친 김에 두 번째 권도 마저 읽었다. 만약 그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평생 후회하며 살았을 것이다.
이 책은 20세기 중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체제인 아파테이드 (Apartheid) 속에서 한 백인 소년 피케이 (Peekay)가 억압과 차별의 현실을 직면하며 ‘하나의 힘’을 깨달아가는 여정을 그린 성장소설이다.
첫번째권은 피케이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중심으로 감정적/정신적 성숙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두번째 권에서는 옥스포드 유학과 이후 인권변호사로서의 삶을 통해 개인적 각성과 더불어 사회적 책임을 지닌 인간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담아낸다.
이 작품은 단순히 한 소년의 자아형성 서사에 머물지 않는다. 억압적인 체제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존엄과 정의를 찾아가는지를 다층적인 은유와 상징 그리고 치밀한 서사 구조를 통해 풀어낸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쇠똥구리와 개미의 일화다.
쇠똥구리는 자신이 굴리는 똥덩이를 스스로의 노력과 성취의 결과라고 주장하지만, 개미들은 그것이 집단의 힘으로 쌓인 결과이며, 나눔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결국 개미들은 조직적인 협력을 통해 쇠똥구리를 물리치고, 질서를 바꾸려 한다.
이 장면은 아파테이드 체제 속에서 권력을 독점하며 기득권을 유지하던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그 체제에 눌려 살아가던 흑인 대중의 관계를 상징한다. 동시에, 이 구조는 산업화 이후 한국 사회가 겪어온 구조적 불평등과도 겹쳐진다.
경제 발전의 명목 아래 희생을 강요당했던 여성, 노동자, 청년, 장애인들의 현실은 쇠똥구리가 굴리는 똥덩이에 힘을 보탰지만 정작 목소리는 배제된 개미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예를 들어, 1970년대 청계천 평화시장에서는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많았다. 그 중 한 명인 전태일은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분신자살함으로써 한국 노동운동의 불씨를 지폈다.
그는 자신 혼자만의 권리가 아닌,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권리를 위해 싸웠고, ‘하나의 힘’이란 개인의 결단에서 출발해 집단적 변화를 이끄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2000년대에 들어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쇠똥구리가 정해 놓은 구조 속에서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매번 반복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대기업 공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로 희생된 노동자들, 그리고 여러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구조대원들의 이야기는 이 사회가 누구의 희생 위에 세워지고 유지되는가를 되묻게 한다. 이들은 개별적인 한 사람으로 불리지만, 그 뒤에는 수많은 ‘개미’들이 존재한다.
피케이의 성장은 단순히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과정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교육과 인간적 만남, 그리고 약자에 대한 공감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책임을 자각하게 된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반복되어온 민주주의의 실천 역사와도 닮아 있다.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은 총칼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고, 1987년 6월 항쟁에서도 평범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 독재 정권의 퇴진을 외쳤다. 2016년과 2025년에는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며 광장에 촛불을 들었던 수백만의 시민들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나’라는 개인의 분노에서 시작해, ‘우리’라는 공동체의 힘으로 변화를 이끌어냈다.
『The Power of One』은 그래서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 그리고 동시에 말해준다. “진정한 힘은 혼자가 아니라, 연대 속에 있다.”
이 소설이 보여주는 ‘하나의 힘’은 개인의 잠재력을 긍정하면서도, 그 힘이 사회적 맥락 속에서 발현될 때 진정한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여전히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청년 실업, 주거 불평등, 여성 혐오, 노인 빈곤, 이주민 차별 등은 쇠똥구리가 여전히 자신의 똥덩이를 성취라 말하며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개미들은 멈추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 장애인 이동권 투쟁,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의 확산, 그리고 기후위기에 맞선 청년들의 목소리는 모두 ‘하나의 힘’이 모여 사회를 움직일 수 있음을 증명한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구조적 불평등에 침묵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 그리고 그 목소리들이 연결될 수 있도록 서로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이다.
『The Power of One』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진정한 힘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있다.” 이 메시지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유효하며, 앞으로도 길잡이가 되어줄 문장이다.
1 서로 인사를 나눈지 채 오래지 않아 뜻밖의 이별을 맞이한 고 전인숙님께 이 글을 바친다. 그녀는 한때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따스한 빛을 나누던 교사였다.
2 브라이스 커트니 (Bryce Courtenay, 1933–2012)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젊은 시절에는 저널리즘과 정치에 관심이 많았고, 이후 런던에서 광고를 공부한 뒤 호주로 이주하여 광고 업계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다. 특히 호주의 대표적인 광고 회사 McCann Erickson에서 일하며 매우 성공적인 광고인이었고, 50대 중반에 들어서 첫 소설 『The Power of One』(1989)을 발표했다. 그의 자전적 경험 (남아공의 인종차별과 기숙학교 시절 등)을 바탕으로 한 『The Power of One』은 출간 이후 호주에서 큰 반향을 일으켜 한때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포함될 만큼 교육적·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글 / 박석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