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놈, 무능한 놈, 비겁한 놈

그렇게 아홉 시간 동안 계속됐던 우리 군끼리의 말도 안 되는 전투는 결국 나쁜 놈들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그들에게 빌붙었던 무능한 놈들, 비겁한 놈들도 나쁜 놈들과 함께 쿠데타의 성공에 환호합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그들에 맞서다가 충직한 부하들의 억울한 죽음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을 내린 그 장군도 스스로 총을 내려놓습니다.

공교롭게도 영화 ‘서울의 봄’을 본 날이 그들이 군사반란을 일으킨 12월 12일이었고 시간 또한 그들이 한참 미쳐 날뛰던 그 시간대였습니다. 이미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고 뻔한 결과였지만 두 시간이 넘는 동안 저는 스크린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나쁜 놈들이야 애초부터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쿠데타를 일으킨 거였지만 무능한 놈들, 비겁한 놈들만 정의롭게 행동했더라면 그들을 진압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한참 피 끓던 나이… 10.26으로 태동된 서울의 봄이 나쁜 놈들의 12.12쿠데타로 처참히 짓밟히는 것을 보면서, 5개월 남짓 후 ‘광주’가 그 나쁜 놈들에 의해 피로 물드는 것을 보면서 참 많이 격분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7년 후인 1987년, 6.10민주항쟁을 통해 다시 한번 찾아왔던 서울의 봄은 욕심 많은 노(老) 정치인들의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몹쓸 병 때문에 죽 쒀서 개 좋은 노릇을 하면서 또 한 차례 좌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을 불러모으면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 열기는 이곳 시드니에서도 다름 아니었습니다. 반란군에 끝까지 맞서 싸운 장태완 수경사령관, 정병주 특전사령관, 김진기 헌병감 그리고 특전사령관 비서실장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곁을 지킨 김오랑 소령 등이 보여준 ‘참 군인’의 모습은 새삼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무능함과 비겁함의 대명사격인 국방장관, 참모차장 등은 ‘어쩌면 인간이 저토록 무능하고 비겁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커다란 분노를 유발시켰습니다. 반면, 또 하나의 무능함의 표상으로 인식됐던 대통령이 반란군들의 정승화 계엄사령관 체포동의안 재가를 계속 거부하다가 모든 상황이 종료된 1979년 12월 13일 새벽 5시 10분에야 ‘사후재가’를 했다는 사실은 이번 영화를 통해 얻은 작은 위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울의 봄을 처절하게 짓밟았던 나쁜 놈들, 무능한 놈들, 비겁한 놈들의 상당수가 90을 훌쩍 넘은 나이까지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사실은 ‘왜, 좋은 사람들은 일찍 죽고 나쁜 놈들은 오래 살까?’라는 새삼스런 질문을 갖도록 만들기도 했습니다.

요즘 한국 정치판… 한 마디로 웃기지도 않습니다. 총선을 석 달 남짓 남겨둔 상황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나쁜 놈들, 무능한 놈들, 비겁한 놈들… 어중이떠중이 죄다 튀어나와 지들끼리 찧고 까불리고 난리도 아닙니다. 저마다 지가 잘났다며 비대위니 신당이니 연대니 입으로는 나라와 국민,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실상은 지들 밥그릇 챙기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나쁜 놈, 무능한 놈, 비겁한 놈들의 전성시대(?)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치판뿐만 아니라 교민사회에서도 온갖 나쁜 짓, 사기, 남의 돈 떼먹기 등을 밥 먹듯 하는 사람들이 이런 기관이나 저런 단체 임원 타이틀을 여러 개씩 가지고 봉사니 자유니 민주니 하는 명목의 행사에 버젓이 얼굴들을 내밀고 있습니다. 차라리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닫는 게 몸 건강, 마음 건강에 좋을 듯도 싶습니다.

지금 들고 계신 이번 호가 코리아타운 2023년 송년호입니다. 어쩌다 보니 나쁜 놈, 무능한 놈, 비겁한 놈들 이야기로 마지막 순간까지 열을 올리게 됐습니다. 올 한해 동안도 변함없는 사랑을 주신 코리아타운 애독자님들, 광고주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드리며 새해 2024년에도 늘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아울러 지난 호 제 글을 읽으신 많은 분들이 반가워하셨는데 한국 들어가실 때 호주여권을 갖고 계신 분들도 ‘외국인 여권’ 줄에 서지 마시고 ‘대한민국 여권’ 줄에 서서 빠른 입국심사를 받으시라고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이건 반칙이 아니고 2009년부터 한국정부가 시행해오고 있는 호주시민권자를 포함한 외국국적을 가진 모든 재외동포들의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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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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