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한 할머니

우리집에서 바라다 보이는 앞집의 뒤뜰에는 큰 트럼풀린이 있다. 왁자지껄 트럼풀린에서 뛰고 넘어지고 노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유난히도 소음에 예민한 내가 아이들의 노는 소리가 싫지 않는 이유는 그 아이들이 바로 나의 손주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들 넷을 기르고 있는 큰딸은 나의 이웃이다. 손주들도 내가 층계를 올라 집 앞에 서면 “할머니!” 하며 손을 흔든다. 내가 말없이 손으로 키스하는 흉내를 내면 저희들도 할머니를 따라 펄쩍펄쩍 뛰며 할머니가 하는 모습을 해 보낸다.

딸의 가족 여섯 명은 셋째 민서를 ‘할머니 걸’이라고 한다. 그래서인가 유난히 나도 그 아이에게 정이 간다. 이제 4학년이 되는 민서는 늘 “할머니 보고 싶다. 우리 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이쁘다. 영원히 할머니 사랑할 거다” 등등 듣기 좋은 소리는 다 한다. 저도 할머니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 보다

작은딸도 한 아파트를 사이에 두고 살고 있다. 그러니까 엄마를 중심으로 양 옆에 살고 있는 셈이다. 저녁을 일찍 먹고 동네를 걷는 것은 나의 규칙적인 일상인데 걷다가 작은딸 아파트 베란다가 보이는 곳을 지나칠 때면 그들 가정의 평안을 빈다. 내 집 문을 열고 들어서기 전 옆으로 눈을 돌려 큰딸 집을 둘러보며 아이들끼리 있을 때가 많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보호자가 되어주실 것을 빈다.

어두워져 깜깜한데 어디 외출을 했는지 딸 집에 불이 다 꺼져 있으면 왠지 허전하다. 화장실 창에 불이 들어온다. 큰 손자 방에 불이 켜진다. 딸 방에도 불이 켜진다. 아, 이제 모두들 들어왔구나. 지나가다 차가 있으면 집에 있구나. 밤 늦도록 인기척 없이 어둠이 적막하면 아이들 데리고 피곤할 텐데 어디를 다니는지…. 온갖 쓸데없는 걱정을 하곤 한다.

큰딸도 작은딸도 풀타임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한참 아이들 키우느라 고생하는 딸들이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렇다고 딸들이 아이들만 키우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다행이도 둘 다 씩씩하게 잘 살아가고 있어 고마울 따름이다. 딸들도 일하고 나 또한 일을 하고 있으므로 서로가 시간을 내어 함께 할 시간은 넉넉하지 않다.

홀로 있는 나로서는 가족이 그리워 문득문득 딸들과의 오붓한 시간을 갈망한다. 그러나 지금의 시간표는 서로가 주어진 책임과 임무를 다하는데 충실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위로 할 뿐이다.

큰딸과는 금요일 아침마다 커피타임으로 함께 하자고 약속을 했다. 단, 딸이 집에서 일하는 날이라는 전제가 붙긴 하지만 엄마의 강력한 요구에 동의한 셈이다. 큰딸과의 시간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딸은 나의 든든한 친구와도 같다.

우리는 모든 것을 나눈다. 엄마와 시간을 갖는 그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 딸에게도 소중한 시간이라 나는 믿는다. 먼 훗날 엄마에 대해 기억할 때 따뜻한 엄마와의 소소한 이야기 속에서 얻어지는 지혜가 자신의 삶에 방향의 지표가 되었다고 말한다면 이보다 소중한 시간이 어디 있겠나!

어떤 이벤트나 저들에게 필요한 경제적 도움이 되어주지 못한다 해도 말이다.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함께한 시간들, 나도 모르게 행복한 미소가 내 가슴과 얼굴에 번진다. 소중한 나의 딸들과 나의 손주들, 이렇게 이웃으로 오순도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 나는 행복한 할머니인 것이 분명하다.

 

 

글 / 클라라 김 (글벗세움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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