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도둑(?)에 보내는 응원

‘나중에 뭐해 먹고 살지?’ 기자 5년차에 문득 들었던 생각입니다. 당장이야 기자명함 들고 여기저기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지만 훗날 나이가 들어 은퇴를 하고 나면 뭘 하며 지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생겼던 겁니다. 원래 저의 꿈은 대기자 (大記者)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나이 들어서까지 아무런 보직도 없이 오로지 취재하고 기사 쓰는 일에만 집중하고 싶었는데 현실은 남들보다 일찍 원치 않는 장(長) 타이틀을 다는 입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진기자들은 은퇴 후 자기이름을 건 사진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었고, 편집 혹은 광고 디자이너들도 나이가 들어서는 자신의 디자인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저 같은 취재기자들은 상황이 좀 달랐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유명한 소설가로 변신해 베스트셀러작가 반열에 오른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신문이나 잡지 또는 사보 등에 기고를 해서 쥐꼬리만한(?) 원고료를 받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잠시 잠깐의 고민 끝에 ‘훗날 나이가 들면 여행전문가가 되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취재하고 글 쓰는 일이야 이미 천직이 됐고 여행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세계였습니다. 게다가 사진 찍는 걸 좋아했던 저는 가끔씩은 사진기자보다 더 좋은 사진을 만들어내 원성(?)을 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여행전문가는 이래저래 저에게는 딱 맞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동료나 후배들에게 멀티플레이어가 될 것을 꾸준히 주문하곤 했습니다. 기자라 해서 글만 쓸 게 아니라 사진도 잘 찍고 편집이나 광고 디자인도 직접 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안목은 지니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진만 찍는 것보다는 웬 만큼의 글도 함께 쓸 수 있는 사진기자라면, 사진기술과 글 쓰는 재주까지 갖춘 디자이너라면 훗날 어디서든 스스로의 몸값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시드니에 와서 <코리아타운>이 탄탄대로에 올라섰다고 판단된 10년 전쯤부터 제가 ‘은퇴’를 입에 달고 살았던 것은 아내와 함께 호주전국을 누비는, 가끔은 세계의 명소를 찾는 여행전문가가 되고 싶었던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일찌감치 우리의 여행기를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으로도 남기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와 저런 핑계로 저의 그 같은 꿈은 아직까지도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함께 가까운 곳을 여행하는 극히 일부 실현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여긴 접근이 좀 어렵다. 일단 Nathan River Ranger Station에 들러 비번을 받고 (무인), 초입 Gate에서 출입자정보를 기록한 후 비번을 사용해 자물쇠를 열고 진입한다. 좁고 험한 길을 28km 진행하는데 정말 아슬아슬하고 마주 오는 차량과 조우하면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전혀 개발이 되지 않아 탐방로는 아예 없고 잘 준비된 4WD 차량만 진입해 길고 거대한 암석군을 따라 수백 미터를 진행하다 되돌려 나와야 한다. 내부나 반대편 상황은 전혀 알 수 없고 산맥처럼 이어지는 기묘한 암석군의 일부만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경관은 Southern Lost City보다 더 훌륭하다 할 수 있다. 다만 진입이 어려워 열정 없이는 방문하기 어렵다. 최고 성수기인 요즈음, 내 짐작으로는 Southern Lost City는 하루 50명 정도, Western Lost City는 10명 정도의 여행객이 다녀가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정해본다.’

본인들의 표현대로 ‘집, 세간 살이, 생업 모두를 정리하고’ 6월 22일 시드니를 떠난 저의 영원한 ‘여행멘토’ 김용규 김혜진 부부가 지난주 금요일 노던 테리토리 Western Lost City에 도착해 본인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입니다. 7월 15일, 시드니에서 4900km 떨어진 호주대륙 최북단 Cape York를 정복한(?) 그들 부부는 지금 퀸즈랜드 케언즈에서 노던 테리토리를 관통해 서호주 브룸 (Broome)까지 이어지는 The Savannah Way의 3700km 루트를 넘나들며 그 지역들을 샅샅이 훑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오랜 오프로드 친구 닛산패트롤 4WD 한 대에 넘치는 열정과 사랑만을 싣고 6개월 일정으로 호주 북부를 돌고 있습니다. 이후 얼마나 어떻게 더 커질지 모를 그들의 꿈이 참 많이 부럽습니다. 우유부단, 찌질한 제가 오래 전부터 간직해오던 여행전문가의 꿈을 도둑맞고도(?) 두 사람의 과감한 결단과 용기와 도전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진정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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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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