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밖에서 우지끈하며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나가보니 집 앞에 세워둔 내 차가 뒤통수를 심하게 얻어맞아 형편없이 부서져 있었다. 이게 웬 날벼락이냐, 어느 우라질 인간이 내 차를 들이박고 달아나버렸다고 추측하면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는데, 젊고 덩치 큰 백인 청년이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그 청년 뒤로는 중년의 백인남녀가 빠른 걸음으로 뒤따라오고 있었다.
알고 보니 18세된 이 젊은 청년이 등교 길에 주차해둔 내 차의 뒤꽁무니를 사정없이 박아버린 것이다. 그는 정면으로 떠오르는 태양 때문에 눈이 부셔 주차돼 있는 차를 보지 못하고 추돌사고를 냈다고 했다.
사고를 낸 직후 너무 놀라서 제 차를 그대로 둔 채 집으로 달려가 부모와 함께 달려온 것이라는 거였다. 대형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지만, 추측컨대 추돌사고는 녀석의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으로 보아 눈부신 태양과 함께, 운전 중에 스마트폰에 한눈을 판 것이 거의 틀림없어 보였다.
하여간에 뒤따라온 청년 부모는 거듭거듭 고개 숙여 사과하면서 아들의 과오를 시인했고 청년도 연신 미안하다면서 우왕좌왕 좌불안석이었다. 그는 운전하고 나서 처음 겪는 사고라고 했다. 나는 내심 사고 내고 뺑소니치지 않은 것이 고마워서 만면에 웃음을 짓고 그 청년의 넓적한 등허리를 토닥거리며 녀석의 귀에다 대고 소곤소곤 위로했다.
“나도 너처럼 젊었을 때 운전하면서 사고 많이 냈었다. 지금 나는 늙었는데도 가끔 사고 쳐서 내 아내랑 아들이 골치 아파한다. 크게 신경 쓸 것 없다. 사고는 늘 나는 거다.”
이 말을 들은 녀석이 나를 쳐다보면서 빙그레 웃더니 한결 풀어진 표정으로 내 손을 잡아 흔들며 탱큐를 연발했다. 부서진 자동차를 정비업소에 맡기고 대차를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어쩌겠는가. 서로가 보험에 가입돼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없음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사고는 마무리됐고 우리는 웃으면서 악수하고 헤어졌다.
그러고 사흘이 지난 저녁때,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고 보니 추돌사고를 낸 그 젊은 청년이 손에 작은 상자를 들고 서있었다. 청년의 너 댓 발작 뒤에는 그의 어머니가 웃음 띤 얼굴로 서있었다. 청년은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상자를 내게 건네주면서 지난 사고에 대한 당신의 후의에 감사한다고 했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생각지도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늦도록 살아오면서 전혀 겪어보지 못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잠시 동안 머릿속은 하얘졌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생각이 떠오르질 않았다. 머뭇머뭇하면서 기껏 한다는 대답이 “아니, 뭐, 신경 쓰지 마라”였다.
작은 상자 속에는 하나하나 예쁘게 포장된 초콜릿과 함께 카드가 들어있었다. 카드에는 ‘나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사과하며, 당신을 불편하게 해 진심으로 미안하다’면서 ‘더불어 그날 당신이 해준 위로의 말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쓰여 있었다.
그 글을 읽고 나는 한동안 멍한 상태로 앉아있었다. 세상에 아직도 이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사고가 나면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고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는 사람들로 남아지는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내 주위에 있다니… 그 모자가 내게 보여준 세상은 꿈결같은 세상이었다.
천국도 지옥도 사람들이 만드는 거다. 청년을 그렇게 살아가도록 훈육한 그 어머니의 얼굴은 따뜻한 미소와 평온함이 가득했다. 그들은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고 있었다. 청년 뒤에 서서 흐뭇한 표정을 짓던 그 청년 어머니의 잔영이 오랫동안 나를 붙들고 놓아주질 않았다.
우리 주위에는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모르는 천치들이 많다. 아무리 고마운 일을 당해도, 부끄럽고 잘못하고 실수를 해도 절대로 감사하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을 할 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이야 말로 지옥인 거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은 ‘감사해요, 미안해요, 사랑해요’라는 말이라고 했다. 이런 말들이 넘쳐나는 세상이야 말로 꿈결같은 세상이며 천국인 거다. 꿈결같은 세상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나에게 가르쳐준 그 모자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