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봄비처럼 달콤한
쳇 베이커의 목소리
쌀 향과 포도 향이 섞인 봄비가
목울대를 타고 내려앉는다
알코올에 절은 채 살아온 인생
촉촉한 목소리 아래
미처 지지 못한 가시꽃
목소리와 사람이 어긋나도
베이커는 베이커니까
뭘 잘못해도
그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2
소년 같은 얼굴의 피아니스트 백건우,
그날의 곡은 ‘사랑의 꿈’
꿈이 멈추고
소리만 남았다
소리로만 남는 마음도 있다
3
박경리, 박완서,
그 이름들 사이를 지나왔다
빛과 꽃의 가장자리
목구멍에 걸린 말들
단단하고 매끄러워
혀로는 깨물 수 없는
스스로 가라앉아
깊은 곳에서 오래 울린 말들
4
머지의 붉은 언덕
노을 속에서 ‘아웃 오브 아프리카’가 들려왔다
푸른 눈동자로 대지의 숨결을 가르던
당신, 어쩌다 이 먼 곳까지 와
태양을 닮은 붉은 꽃으로 피어 있나
5
꽃이 피었지만
함께 할 수 없었고
꽃이 져도
함께 슬퍼하지 못했다
붉던 잎들은
풀잎의 서늘함으로 변해
어두운 뿌리 쪽으로 스며들었다
6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다는 걸,
당신에게서는 아직
울지 못해 갇힌 꽃의 냄새가 난다
그 냄새를 나는 잊을 수 없다
꽃이 지는 날에도
우리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향기는 끝내 사랑 안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윤희경 (캥거루문학회 회원·시집: 대티를 솔티라고 불렀다·전자시집: 빨간 일기예보·2022년 재외동포문학상, 제10회 경북일보문학대전, 제9회 동주해외작가상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