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

아무리 꽃샘추위라고는 하지만 이건 좀 심한 것 같습니다. 봄도 이젠 계절의 한가운데로 들어서려 하고 있는데 웬 바람이 그리도 쌩쌩 부는지…. 특히 지난주에는 한겨울을 연상케 하는 칼바람(?)이 계속 불어 창고에 넣어뒀던 가스히터를 슬그머니 다시 꺼내야 했습니다.

더웠다, 추웠다, 널뛰기를 계속하는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 막판 감기에 대한 긴장의 끈도 늦출 수 없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조짐이 있다 싶으면 잽싸게 화이투벤에 쌍화탕을 긴급투하, 감기 원천봉쇄를 시도하곤 했습니다.

끔찍했던 산불에 이어 세계의 짐, 코로나19까지 합세해 1년 내내 흉흉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데 계절을 역주행하는 듯한 요즘 날씨는 정말 밉습니다. 바람만 아니면 참 예쁜 날씨…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을 벗삼아 뒷마당 의자에 길게 누워 높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 말 그대로 평온입니다.

날씨야 변덕을 부리든 말든, 바람이야 불든 말든, 우리 집 과일나무들은 한껏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저녁시간, 텃밭과 정원에 물을 주다 보면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올해 우리 집 비파는 개수가 적어진 대신 크기는 아주 실합니다. 갓 따낸 비파를 한입 베어 물면 시큼한 맛에 저도 모르게 눈이 찡그려지지만 감사한 마음 또한 가득합니다.

귤과 오렌지가 합쳐진, 당도가 아주 높은 우리 집 퓨전(?) 귤나무에도 예쁜 열매들이 무수히 달리기 시작했고 싱싱한 무화과도 자리다툼이 한창입니다. 앞마당 레몬나무에도 여기저기 쪼끄만 녀석들이 앙증맞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사과나무도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고마운 건 뒷마당 블루베리 두 그루에 열매들이 무수히 달려 야금야금 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두 에이든과 에밀리의 몫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디선가 씨가 날아들어 자라기 시작한 방울토마토에 엄청나게 많은 열매들이 달려 에밀리의 입을 즐겁게 해줬습니다.

하나 둘씩 새 순이 돋아나오던 감나무는 어느새 잎이 무성해졌고 올해 처음 만나는 블랙베리도 하얀 꽃을 무수히 쏟아내며 개중 몇몇은 벌써 결실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온 세상을 보랏빛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벌거숭이가 되는 우리 집 뒷마당 자카란다가 앙상해진 걸 보면 12학년생들의 HSC도 멀지 않은 듯싶습니다. 아내는 요즘 텃밭 한쪽을 징그러울 정도로 뒤덮고 있는 수백 개의 깻잎모종들을 지인들과 나눔 하느라 바쁩니다.

이렇듯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상황에서 아직도 천방지축 질퍽대고 있는 꽃샘추위도 어느 순간 소리 없이 사라져버릴 겁니다. 최근 들어 조금 주춤해지긴 했지만 징하게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코로나19도 얼른 멀리멀리 떠나가줬으면 좋겠습니다.

어제가 우리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었습니다. 물론, 이곳에서는 모국에서처럼 정겨운 추석을 보내지는 못하지만 송편 한 조각이라도 나눠먹는 따뜻한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처럼 여러 가지로 힘든 우리네 상황이 얼른얼른 나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며칠 전에는 아내와 둘이 의기투합, 뜬금 없이 봄 맞이 집 안팎 대청소를 했습니다. 솔직히 별로 지저분하지도 않은데 우리는 가끔 그런 짓을 하곤 합니다. 이번에는 내친 김에 가구들도 자리를 좀 옮기고 우리 방 침대의 위치도 새롭게 돌려놔봤는데 희한하게도 색다른 기분, 좋은 느낌이 듭니다.

건강히 잘 자라라고 정성으로 가꾸는 잔디보다 더 씩씩하게(?) 번져나가는 아무개 풀을 비롯한 각종 잡초들, 국회의원이라는 단어가 부끄러운 사람들, 무늬만 검사, 판사, 기자인 사람들… 그들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기미는 전혀 안 보이지만, 어쩌면 그런 존재들은 평생을 그렇게 살 터이지만,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라도 정말 사람답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 요즘입니다. 아마도 다음 주쯤에는 심술첨지 칼바람도 완전히 쫓겨나고 햇살 가득한 봄날이 활짝 웃으며 우리를 포근히 안아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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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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